중국의 지성과 양심이 또 한 번 상처를 입었다.

중국 내 대표적인 개혁파 학자인 쉬장룬 칭화대 법학대학원 교수가 직무정지 처분을 받은 것이다. 자리에서 물러난 것도 모자라 관계 당국의 조사를 받고 있다는 풍문도 들린다.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에 대한 날선 비판이 해임 사유로 거론된다. 지난해 초 중국이 개헌을 통해 시 주석의 연임 제한을 없애고 장기 집권의 길을 열어주자 쉬 교수는 이를 비판하는 논문을 인터넷에 게재해 논란을 일으켰다.

그는 '우리가 당면한 우려와 기대'라는 제목의 논문에서 "공산당의 신(神) 만들기가 극에 달한 모습"이라며 "집권자의 국가운영 방식이 최저선을 넘어 시대의 흐름에 역행하고 있다"고 직격탄을 날렸다.

쉬 교수는 지난 1월에도 한 홍콩 매체에 기고한 글을 통해 "중국은 초대형 전체주의 국가가 됐다"며 "공산당은 아름답게 물러나고 정권을 국민에게 돌려줘야 한다"고 주장했다.

'중국 10대 걸출 법학자'로 선정되기도 한 그는 이번 조치로 학자로서의 경력이 사실상 끝났다.

결기를 보인 지식인이 쉬 교수 한 명만 있는 건 아니다. 앞서 언급한 개헌안이 통과된 직후 베이징대 소속 연구소의 원장급 교수 3명이 시 주석의 장기 집권 추진에 항의해 사표를 낸 바 있다.

3명의 교수 중 맏형 격인 리천젠은 '척추를 꼿꼿이 세우고, 개 같은 선비가 되기를 거부하자'는 제목의 성명을 발표하기도 했다.

안타까운 건 중국이 사상과 표현의 자유를 '저항'으로 인식하는 폐쇄된 사회라는 점이다.

시 주석을 향해 쓴소리를 쏟아내던 쑨원광 전 산둥대 교수는 지난해 8월 외신과의 전화 인터뷰 도중 집안에 들이닥친 공안에 끌려갔다.

"나는 표현의 자유가 있다"는 외침을 끝으로 그의 종적은 묘연해졌다. 쑨 전 교수는 시진핑 체제의 핵심 정책 어젠다인 '일대일로'를 시종일관 비판했다.

그는 "중국에 빈곤 인구가 차고 넘치는데 구태여 외국에 가서 돈을 뿌릴 필요가 있느냐"고 지적했다.

전직 고위 관료에게도 '비판의 자유'는 언감생심이다. 중국의 첨단산업 육성 전략인 '중국제조 2025'를 비판한 러우지웨이 전 재정부 부장(장관)은 최근 전국사회보장기금 이사장직에서 쫓겨났다.

이달 열린 중국 양회에 참석한 러우 전 장관은 "중국제조 2025는 말만 요란했지 실제로 이룬 게 없다"며 세금 낭비라고 일갈했다.

조선 10대 국왕인 연산군은 재위 기간 중 신하들에게 '신언패(愼言牌)'를 목에 걸고 다니게 했다.

신언패에는 네 구절이 쓰여 있는데, 내용이 살벌하다. 입은 화를 부르는 문이요(口是禍之門), 혀는 몸을 자르는 칼이니(舌是斬身刀), 입을 닫아 혀를 깊이 감추면(閉口深藏舌), 가는 곳마다 몸이 편안하리라(安身處處牢).

이후 조정에서 '아니되옵니다'를 외치는 신하들은 사라지고 '지당하옵니다'를 외치는 간신들만 득실거리게 됐다. 스스로 귀를 닫고 신하와 백성들의 입을 막은 대가는 폐위였다.

공산주의의 이론적 토대 중 하나인 변증법은 진리(正) 속에 내재된 모순이 겉으로 드러나면 격렬한 반작용(反)을 거쳐 새로운 단계(合)로 나아간다고 설명한다.

시 주석 등 중국 집권층은 주머니 속 신언패를 만지작거릴 게 아니라 머릿속으로 변증법의 원리를 다시 한 번 되뇔 필요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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