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열발전 용량, 원전 0.001% 그쳐

지난 2017년 11월, 경북 포항시 북구 대성아파트에서 지진 피해를 입은 일부 주민이 이사하고 있다. / 사진제공=연합뉴스

포항지진은 자연 지진이 아닌 인재였다. MB정부 시절 신재생에너지 명분으로 추진됐던 지열발전의 결과는 참혹했다.

지난 2017년 11월 포항에서 발생한 규모 5.4의 지진이 인근 지열발전소에 의해 촉발됐다는 정부 조사연구단의 공식 발표가 나왔다.

22일 국내조사단과 해외조사위원회로 구성된 정부조사연구단에 따르면, 지열 발전을 위해 4km 땅속에 구멍을 뚫고 고압의 물을 주입하는 과정에서 기존에 알려지지 않았던 단층대가 활성화해 지진이 발생했다.

그러나 원인을 제공했더라도 5.4 강진은 지열발전만으로 가능한 범위를 훨씬 벗어났다고 연구단은 부연했다.

발표를 기다리던 포항시민들은 “원인이 규명돼 그나마 다행”이라는 반응을 보였다. 많은 포항시민은 지열발전소를 건립하고 운영한 정부의 책임론을 제기했다.

이미 포항지진범시민대책본부는 국가를 상대로 지진유발 손해배상 청구 소송을 낸 상태다. 관련 단체를 중심으로 포항에서는 손해배상을 요구하는 집회나 소송 참여자들이 늘어나고 있다.

이번 사건으로 신재생에너지 중 가장 친환경적이라는 평가를 받는 지열발전이 환경성과 안전성면에서 심각한 문제가 있음이 나타났다.

태양열과 풍력은 날씨나 기후에 영향을 받아 가동시간이 제한된다. 그에 반해 지열에너지는 언제나 땅속에서 끌어올 수 있다. 지열에너지는 땅속 깊은 곳까지 시추해야 해서 초기 투자비용이 크다. 하지만 발전설비만 갖추면 다른 재생에너지처럼 간헐적이지 않아서 안전한 에너지 공급 확보가 가능하다.

고효섭 기자

국내에서는 지열발전이 흔하지 않다. 발전소를 세울 수 있는 곳이 제한적인 탓이다. 지구에서 10% 미만인 열전지각에서만 지열발전소를 건설할 수 있다.

지열발전소를 세우기에 가장 좋은 곳은 화산지대이다. 고온의 지하수가 있는 온천지대에서 땅 밑 180도씨 이상 뜨거운 증기를 뽑아 올려 터빈을 돌릴 수 있다. 현재 전세계 지열발전소는 90% 이상이 화산지대에 집중됐다.

화산지대에서는 구멍을 얕게 파도 지열 확보가 가능하다. 우리나라의 경우 땅을 깊게 파는 심부지열발전(EGS) 유형을 택해야 열을 확보할 수 있다. 이 과정에서 단층대를 자극해, 앞서 포항에서도 지진이 발생한 것이다.

포항 지진 촉발 원인인 지열발전소는 2010년 MB정부 시절 국책사업으로 추진됐다. 신재생에너지 개발사업의 일환으로 만들어졌다. 2010년 10월 공모를 통해 넥스지오가 사업자로 선정됐다.

지열발전소 최초 예산은 351억 원으로 책정됐다. 이 중 정부예산은 185억 원이고 나머지는 넥스지오가 담당했다. 적지 않은 예산으로 세운 지열발전소는 2017년 포항에 최대 9조원 정도의 피해를 끼쳤다.

앞서 스위스 바젤 지열발전소는 2006년 시추 직후, 규모 3.4 지진을 일으켜 3년 뒤 폐쇄된 바 있다. 포항 지열발전소 사업이 추진된 건 바젤 발전소가 문을 닫은 바로 다음해인 2010년이다.

포항 지열발전소 사업을 추진한 국내 업체들도 지열발전소로 인한 지진 위험성을 잘 알고 있었다. 그럼에도 지진을 일으켰던 발전소의 기술진과 개발 업체를 투입하며 사업을 강행했다. 편의성과 경제성을 우선시하며 위험성을 과소평가한 지열발전은, 과연 인재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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