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잉737맥스<사진=신화/연합뉴스>

 

전 세계 하늘길에서 미국 보잉의 최신 베스트셀러 여객기 '737 맥스'가 퇴출됐다. 미국이 사실상 마지막으로 이 기종의 운항금지 행렬에 동참하면서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지난 13일(현지시간) 행정명령을 통해 보잉 737 맥스를 멈춰 세웠다. 에티오피아에서 같은 기종에 탔던 157명 전원이 사망하는 추락사고가 난 지 사흘 만의 일이다. 미국 연방항공청(FAA)은 하루 전만 해도 사고 기종 성능에는 문제가 없다고 주장했다.

다른 나라들은 미국과 달리 신속하게 대응했다. 같은 기종 여객기가 지난해 10월에 이어 5개월 만에 또 추락한 게 심상치 않다는 판단에서였다. 지난해 10월 인도네시아 자바해에 추락해 탑승자 189명 전원이 숨진 라이언에어 참사 조사 과정에서 이미 기술적인 문제가 제기되기도 했다. 

중국을 선두로 유럽연합(EU) 등 세계 각국이 잇따라 사고 기종의 운항 또는 영공통과 금지 조치를 내렸다. 미국과 함께 버티던 캐나다마저 이 행렬에 동참하면서 미국은 철저히 고립됐다. 전 세계가 미국에 등을 돌린 셈이다.

파이낸셜타임스(FT)는 미국이 홀로 날지 못한 이유는 자명하다며 '블랙박스'를 조사할 필요도 없다고 지적했다. 미국에 대한 불신이 가장 큰 요인으로 작용했다는 것이다. 트럼프 대통령이 밀어붙이고 있는 미국 우선주의 기조의 다른 정책들도 국제사회의 불신을 사고 있긴 마찬가지라고 신문은 꼬집었다.

당장 이번 보잉 사태에서 FAA는 힘을 쓰지 못했다. 세계적인 항공사고가 일어날 때마다 목소리를 높였던 FAA지만, 이번에는 오히려 늑장대응으로 비판받았다. 전문가들은 트럼프 행정부의 압력이 작용한 FAA를 무력화했다고 본다. 안 그래도 트럼프 대통령은 최근 발표한 새 예산안에서 FAA 몫을 삭감했다. FAA가 다른 주요국의 비슷한 기관보다 뒤떨어진 항공통제시스템을 갖고 있다는 평가에도 트럼프 행정부는 꿈쩍하지 않았다.

FAA는 수장 자리마저 공석이다. 트럼프는 대통령 전용기(에어포스원)도 아닌 자신의 개인 비행기를 몰던 존 던킨을 FAA 청장으로 지명했지만, 상원이 자격미달을 이유로 받아들이지 않은 탓이다. 이 결과 FAA는 1년여 동안 조종사 없이 위험천만한 비행을 해왔다. 보잉 737 맥스가 안전하다는 FAA의 주장은 설득력을 잃을 수밖에 없었다.

국제사회의 불신을 사긴 트럼프 행정부의 외교정책도 다를 바 없다. 트럼프 대통령은 첫 임기의 절반 이상을 지내면서도 외국 공관 대사 자리 7개 중 1개를 채우지 못했다. 미국 외교정책을 주도하는 국무부 핵심부에도 빈 자리가 많다. 

윌리엄 번스 전 미국 국무부 부장관은 최근 FT에 트럼프 행정부의 국무부에 이렇게 공석이 많은 건 "일방적인 외교 군비축소"라고 일갈했다. 트럼프 대통령이 관계를 중시하는 외교보다 일방통행을 선호한다는 방증이다. 그는 새 예산안에서 국무부 몫을 23% 더 줄이기도 했다. 

이란 핵협정과 파리 기후변화협약 탈퇴, 시리아 철군을 비롯한 트럼프 행정부의 일방적 외교정책이 동맹국들의 지지를 받지 못하는 것도 결국 불신과 반발 탓이라고 볼 수 있다.

통상정책도 마찬가지다. 트럼프 행정부는 중국과 무역전쟁을 치르며 세계적인 통신장비업체인 중국 화웨이를 집중 표적으로 삼았다. 차세대 이동통신기술(5G) 선점 경쟁에서 중국을 밀어내기 위한 포석으로 읽힌다. 트럼프 행정부는 동맹국들이 화웨이 장비를 쓰지 못하게 압력을 가했지만, 영국과 독일 등 상당수가 저항하고 나섰다. 

그 사이 트럼프 대통령은 스스로 자국 사법 시스템의 정치적 독립성을 부정하며 통상정책 전반에 대한 불신을 자초했다. 중국이 무역협상에서 양보하면 미국의 대이란 제재 위반 등의 혐의로 캐나다에서 체포된 멍완저우 화웨이 부회장에 대한 신병인도 요구를 물릴 수 있음을 시사하면서다.

이번 보잉 사태에서 더 눈여겨 볼 건 세계 경제 현실에 트럼프 대통령이 끝내 굴복했다는 점이다. 중국과 EU가 보잉 737 맥스의 운항을 금지하면서 일방적인 비행을 꿈꿨던 미국은 날개를 접을 수밖에 없었다. 중국과 EU가 공유하는 항공안전 기준에 저항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중국과 EU가 세계 경제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40%지만, 미국 비중은 20%에 불과하다. 

미국은 여전히 세계 패권국이다. 그럼에도 일방통행은 통하지 않는다는 게 이번 보잉 사태가 트럼프 대통령에게 주는 교훈이다. FT는 혼자 날 수 있다고 생각하는 트럼프 대통령에게 조언했다. 다른 나라들이 그에게 영공을 내주지 않더라도 놀라지 말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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