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연합뉴스>

 

미·중 무역협상이 잘 되려는 분위긴가 보다. 미국 월스트리트저널(WSJ)과 블룸버그가 3일(현지시간) 보도한 내용에 따르면 그렇다. 두 매체는 소식통을 인용해 양국 간 무역협상이 최종단계에 돌입했다고 전했다. 소식통들은 두 나라가 지난해 무역전쟁의 방아쇠를 당긴 폭탄관세를 서로 낮추거나 아예 없애는 쪽으로 가닥을 잡았다고 귀띔했다. 이달 말에 미국 플로리다주 마라라고 리조트에서 열릴 전망인 미·중 정상회담이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장담대로 '서명하는 정상회담'이 될 수 있다는 기대도 내비쳤다.

그러나 끝날 때까지는 끝난 게 아니다. WSJ도 미국과 중국이 무역협정을 맺기까지는 아직 장애물이 남아 있다고 지적했다. 당장 미국과 중국 내부의 정치적 저항이 거세다고 한다. 트럼프 대통령과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이 '우리만 너무 양보하는 게 아니냐'는 반발에 직면할 수 있다는 얘기다.

더 큰 문제는 미국이 이른바 '스냅백(snapback)' 조항을 고수하려 한다는 점이다. 중국이 합의를 어기고 약속을 이행하지 않으면 자동으로 폭탄관세를 되살리는 등 일방적인 조치를 취하겠다는 의미다. 이에 더해 미국은 무역협정에 서명한 뒤에 중국산 제품에 추가 관세를 부과해도 일부 사항에 대해서는 중국이 보복하지 않겠다는 합의를 하도록 압박하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전문가들 사이에서는 미국이 요구하는 스냅백, 보복 예외 인정 조항이 표적으로 삼은 게 위안화 환율 아니겠느냐는 얘기가 돈다. 미국은 이번 협상에서 중국에 위안화 환율 개입 금지를 요구하고 나섰다. 트럼프 대통령은 중국이 위안화 가치를 인위적으로 낮춰 수출 경쟁력을 높이고 있다고 비판해왔다. 새로운 얘기는 아니다. 미국에서는 이전 정부도, 의회도 같은 주장으로 중국을 압박했다. 중국과 무역경쟁을 벌이는 다른 나라들도 직간접적으로 중국의 환율 조작 혐의를 문제삼았다.

중국은 억울하다는 입장이다. 위안화는 2015년 국제통화기금(IMF) 준비통화인 특별인출권(SDR) 기반통화(바스켓)로 편입됐다. 위안화는 저평가되지 않았고, 적정수준에 도달했다는 게 IMF의 판단이었다. 위안화 국제화에 공들여온 중국도 환율 조작 혐의를 강하게 부인해왔다. 

하지만 미국의 위안화 환율 압박은 시장에서 이미 위안화 평가절상 기대감을 높이고 있다. 달러 대비 위안화 가치는 지난해 10월 말 10년 저점에서 반등해 올 들어서만 2.6% 올랐다. 

트럼프 행정부가 캐나다, 멕시코를 상대한 북미자유무역협정(NAFTA) 재협상에 이어 미·중 무역협상에서도 환율 문제를 거론하자, 조만간 미국과 무역협상 테이블에 앉아야 하는 일본도 바짝 긴장한 상태다.

니혼게이자이신문은 아베 신조 일본 총리와 구로다 하루히코 일본은행(BOJ) 총재가 지난해 6월부터 정례회동을 갖기 시작한 것도 미국의 환율 압박과 무관치 않다고 최근 보도했다.

정상적인 나라의 중앙은행이라면 정치적 독립성을 '금과옥조'로 여기는 게 보통이다. 경제의 향방을 좌우하는 통화정책에 정치적 입김이 작용할 여지가 없다고 보기 때문이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연방준비제도(연준·Fed)의 금리인상 정책을 비판해도 제롬 파월 연준 의장은 꿈쩍하지 않았다. '정치적 독립성은 연준의 DNA'라는 신념을 고수했을 뿐이다. 외신들은 당연하다는 반응과 함께 트럼프의 몰상식을 꼬집었다.

이런 분위기로 보면 아베와 구로다의 정례회동은 비정상이다. 구로다 총재는 지난달 22일 총리 관저에서 아베 총리와 1시간가량 만난 뒤 기자들에게 "정례적인 회동으로 아베 총리가 일본 경제와 세계 경제 동향을 설명했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통화정책에 대해서는 특별한 얘기가 없었다고 강조했다.

선뜻 이해하기 어려운 대목이다. 정치인인 총리가 중앙은행 총재보다 안팎의 경제 동향을 더 잘 알 리 없기 때문이다. 굳이 중앙은행 총재를 만난 자리에서 통화정책 얘기를 안 했다는 것도 그렇다.

니혼게이자이는 이처럼 의심스러운 회동이 시작된 지난해 6월이 미국 재무부가 반기 환율보고서를 발표한 직후라는 데 주목했다. 미국 재무부는 같은 해 4월에 낸 보고서에서 "엔화의 명목 실효환율이 2013년 상반기부터 평균보다 낮은 추세를 보였다"고 꼬집었다.

2013년 상반기는 갓 취임한 구로다 총재가 국채와 주식 등 다양한 시중 자산을 사들여 대거 돈을 푸는 2차원 금융완화와 마이너스 금리 등 유례없는 통화정책을 동원해 경기부양에 열을 올리기 시작한 때다. 이때부터 엔화 약세가 두드러졌다. 일련의 행보는 2012년 말 집권한 아베 총리의 '디플레이션 탈출' 공약을 실현하기 위한 것이었다. 구로다에게 중앙은행의 정치적 독립성은 처음부터 안중에도 없었던 셈이다.

시장에서는 무역협상과 맞물린 트럼프 행정부의 환율 압박이 환율전쟁으로 이어질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안 그래도 연준은 최근 금리인상 중단 신호를 강하게 내비쳤다. 달러 약세 재료다. 그럼에도 트럼프 대통령은 지난 2일 연준 때문에 달러가 강세라고 비판했고, 이 여파로 달러 약세가 더 두드러졌다. 사실상 구두 개입과 다를 바 없다.

한 나라가 일방적으로 자국 화폐 가치를 낮추면 상대국은 피해가 불가피하다. 일방적인 평가절하가 '이웃을 거지로 만드는 정책'이라고 비판 받는 이유다. 서로 피해를 보지 않겠다며 평가절하 경쟁에 나서는 게 바로 환율전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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