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외교술의 특징은 먼저 큰 방향성을 설정한 뒤 상황 변화에 맞춰 미세 조정을 한다는 것이다. 

미세 조정의 주기는 상당히 길다. 방향성을 훼손할 만한 변수가 등장하지 않는 한 쉽게 움직이지 않는다. 중국 외교 당국자들이 녹음기를 틀어놓은 듯 똑같은 얘기만 주구장창 반복하는 이유다. 

중국 외교술은 버드나무 가지처럼 유연하기도 해서 때리려고 하면 힘이 들어가지 않는다. 또 의뭉스럽기가 이를 데 없어 직설적인 스타일의 서방 국가들은 중국 측과 마주앉을 때마다 답답함을 호소한다.

북핵 문제와 관련해 중국이 설정한 방향성은 확실하다. 북한의 핵 보유는 용인할 수 없지만, 그렇다고 북한 체제가 무너지는 것도 안 된다는 것이다. 이 가이드라인 내에서는 얼마든지 융통성을 발휘할 수 있다는 게 중국의 입장이다. 그래서 나온 게 '대화와 타협을 통한 해결'이다. 

중국은 북핵 문제의 당사자는 북한과 미국이라고 선을 긋고 미국이 대북 압박을 강화하면 슬쩍 북한 편을 들었다가, 북한이 핵 개발을 가속화하면 일정 기간 차갑게 대하는 식으로 대응해 왔다.

이같은 행태는 김정은 집권 이후에도 지속됐다. 2013~2017년 북한이 핵과 더불어 ICBM 개발에 박차를 가하고, 이를 경계한 중국이 미국이 대북 제제안에 동의하면서 북·중 관계가 완전히 얼어붙었다.

하지만 중국은 언제든지 마음만 먹으면 얼음을 녹일 수 있다고 자신했다. 북한 경제의 중국 의존도가 워낙 높아 함부로 등을 돌릴 수 없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지난해 북핵 이슈에 대한 중국의 외교적 방향성을 뒤흔들 만한 사건이 발생했다. 미국의 무역전쟁 도발이다. 그것도 미국과 북한의 비핵화 협상과 맞물려 터졌다.

무역전쟁의 여파는 상당했다. 지난해 중국의 경제성장률은 28년 만에 최저 수준으로 떨어졌다. 경제 악화가 오롯이 무역전쟁 때문은 아니겠지만 부담감은 엄청나다. 경제는 심리인 탓이다.

북·미 사이의 중재자를 자처하기도, 대북 지렛대로 미국을 압박하기도 힘든 게 최근 중국의 상황이다. 

이 시점에 베트남 하노이에서 2차 북·미정상회담이 열린다. 중국은 표면적으로 회담 개최를 환영하며 성과를 내기를 바란다고 말하지만, 속내는 복잡하다.

비핵화 협상과 무역 협상은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가장 중요하게 여기는 핵심 외교 사안이다. 

이번 하노이 핵 담판에서 진전을 이룬다면 재선에 도전하기 전까지 중국과의 무역 협상에 전력을 기울일 수 있다. 

중국에 대한 부정적 여론을 의식해 공세를 강화할 지, 미국 내 경제적 파장을 최소화하기 위해 부분적 합의 또는 봉합에 나설 지 현재로서는 가늠하기 어렵다.

그렇다고 핵 담판이 결렬되기를 바랄 수도 없다. 예의 '중국 책임론'이 다시 등장할 게 뻔하기 때문이다. 

트럼트 대통령은 비핵화 협상이 교착 상태에 빠진 책임을 중국에 전가하며 거세게 몰아 부칠 가능성이 높다. 

여기에 중국이 강하게 맞불을 놓기가 쉽지 않다. 관세 폭탄을 피하기 위해 간신히 이어 나가고 있는 무역 협상 테이블이 엎어질 수 있다. 

트럼프 대통령과 김정은 위원장 간의 '세기의 담판'이 어떤 결말로 이어질 지 복지부동한 채 지켜봐야 하는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의 입맛이 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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