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중구 대한항공 사옥./사진:연합뉴스

 

한진그룹의 주력 계열사인 대한항공이 최근 '깜짝 실적' 발표를 했습니다. 통상적으로 쓰는 의미와는 다른 깜짝 실적이었습니다.

보통 깜짝 실적은 어닝 서프라이즈를 우리말로 옮겨 쓴 표현으로 시장의 예상을 크게 웃도는 실적으로 시장을 놀라게 했다는 뜻인데 대한항공은 예상치 못한 시점에 실적을 내놓으면서 시장을 놀라게 했습니다.

대한항공은 지난달 29일 지난해 잠정 실적을 공개했습니다. 통상 발표 시점인 2월 중순보다 2주가량 앞당겨진 것입니다. 대한항공 측은 이에 대해 별다른 설명이 없었습니다.

대한항공의 이번 실적 발표에 대해 애널리스트들은 예년보다 빠를 수 있다는 말이 돌았지만 예상보다 더 빨랐다고 얘기합니다. 발표 당일 알았다는 경우도 있습니다.

상장사의 실적 발표 일정이 항상 같은 것은 아니지만 보통 비슷한 시기에 내놓습니다. 변화가 있으면 증권사 애널리스트 등 시장과의 소통을 통해 어느 정도는 시점을 예상할 수 있도록 하는 게 일반적입니다.

애널리스트들은 수시로 기업과 미팅 등을 통해 시장·경영 상황을 점검하고 실적 추정치와 기업에 대한 분석을 내놓습니다. 특히 실적 발표 시점이 근접했을 때의 소통은 투자자에게 제공하는 실적의 정확성을 높이기 위해 상당히 중요합니다.

실적 발표 시점을 애널리스트도 정확히 몰랐다는 것은 기업이 그만큼 외부와의 소통을 소홀히 했다는 의미입니다.

대주주 외에는 관심 밖이란 말과도 같습니다. 대한항공의 이번 실적 발표는 국민연금의 행보를 의식한 것이란 해석이 지배적입니다.

대한항공의 실적 발표 이틀 뒤 국민연금 기금운용위원회 회의가 예정돼 있었는 데 양호한 성적표를 보여줘 국민연금의 적극적 공세의 명분을 약화 시키려 했다는 것입니다.

대한항공은 지난해 창립 이래 최대 매출을 달성했습니다. 영업이익은 시장 기대치를 밑돌았지만 유류비가 크게 증가했다는 점을 고려하면 선방했다는 평가가 나옵니다.

대한항공이 충격적인 '어닝 쇼크'를 낸 것도 아니고 양호한 성과를 며칠 빨리 발표한 게 무슨 문제냐고 할 수도 있습니다. 틀린 말은 아닙니다.

그렇지만 이번 실적 발표가 대한항공을 포함한 한진그룹의 인식을 그대로 보여준다는 점에서 외부자극에 의한 변화가 필요하다는 것은 분명합니다.

조양호 회장의 지배력이 약화할 것을 우려해 일반 주주와 시장은 고려하지 않고 예상 밖의 일방적인 행동을 했다는 점에서 그렇습니다.  특히 '돈 잘 버니까 그냥 놔둬라'는 식의 행태는 한진그룹이 가진 문제의 심각성을 여실히 드러내는 것입니다.

대한항공이 창사 이래 최대 매출은 경영진의 탁월한 능력보다는 여행 수요가 증가한 영향이 훨씬 큽니다. 업황이 좋은데 경영 능력까지 더해졌다면 오히려 더 좋은 실적을 내놨을 수도 있습니다. 회사의 자원을 조 회장 일가의 이익이 아니라 기업의 가치를 높이는 데 집중했다면 더 말할 나위가 없었을 것입니다.

행동주의 펀드 KCGI와 국민연금이 한진그룹에 지배구조 개선 등을 강하게 요구하는 것은 총수 일가에 초점이 맞춰진 경영으로 기업 가치가 훼손되고 있기 때문입니다.

KCGI가 한진그룹에 제안한 기업 가치 제고 방안에 대해 전문가들은 합리적이고 충분한 효과가 있을 것이라고 분석합니다. 그러나 한진그룹이란 특수성을 고려하면 얼마나 받아들여질지는 의문이라고 얘기합니다. 조 회장 일가의 강한 지배력이 작용하고 이를 유지하기 위해 합리적인 판단을 하지 않을 수 있다는 뜻입니다.

그래도 대한항공을 포함한 한진그룹의 회사들이 늘 80점 안팎의 무난한 성적을 내니 별문제 없다는 생각을 하는 사람도 있을 것입니다. 하지만 90점, 100점도 충분한데 늘 80점을 받는 것은 괜찮은 게 아닙니다. 분명한 문제가 있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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