패러시스, 獨 업체에 140GWh 배터리 공급 확정..LG화학·삼성SDI 등 긴장

 4차 산업시대의 핵심부품이자 국내 제조사들의 차세대 성장동력인 전기차배터리 시장마저 중국에 '파이'를 빼앗기고 있다. 7일 국내 전기차배터리 업계를 긴장시키는 뉴스가 전해졌다. 패러시스(Farasis)가 독일 완성차 업체에 140GWh 규모의 대형 배터리 공급을 확정했다는 소식이다. 

 전기차배터리 제조업체 패러시스는 최근 한 발표회에서 지난 10월 독일의 한 완성차 업체와 2021년부터 2027년까지 총 140GWh의 배터리 공급을 확정했다고 발표했다. 1년에 20GWh씩 7년에 걸쳐 공급된다. 최근 SK이노베이션이 밝힌 미국 배터리 셀 신축공장의 1년 생산량(9.8GWh)의 2배 이상이다. 

 패러시스는 공식적으로는 미국 업체지만 중국 광저우에 본사를 둔 중국계 미국인 대표의 업체다. 주요 배터리 납품처가 북경자동차인 사실상 중국 업체다.  중국 정부가 지급하는 보조금 지급대상 업체에도 매번 포함됐다. SNE리서치가 집계하는 전세계 전기차배터리 출하량 상위 10개 업체이기도 하다. 

 문제는 이번 소식의 의미가 단순히 패러시스라는 개별 기업의 계약 한 건으로 그치는 게 아니라는 점이다. 전문가들은 이번 계약의 의미를 "지금까지 자국 정부가 쳐 둔 보호장벽 안에서 지급하는 보조금으로 안정적으로 성장해 온 중국 배터리 업체들이 둥지 밖으로 나오기 시작했다는 것"이라고 해석했다.

 실제 중국 전기차배터리 업체들은 자국 정부의 보조금 정책의 보호 속에서 성장했다. 중국은 자국 기업들의 기술 경쟁력을 높이기 위해 보조금 지급 기준을 지속적으로 상향하고 있다. 주행거리가 짧은 전기차에 대해선 주던 보조금을 끊고, 한 번 충전으로 더 멀리가는 전기차에 보조금을 늘리는 식이다.

 오는 2020년이면 중국 정부는 전기차 보조금을 끊는다. 그 이전까지 자국 배터리업체의 기술력을 키우기 위해 한국 업체가 생산한 배터리를 장착한 완성차 모델은 보조금 지급 모델에서 제외하는 방식으로 자국 배터리 업체들을 보호해왔다. 중국 배터리업체들은 둥지 속에서 먹이를 받아먹고 자란 셈이다. 

 반대로 한국 배터리업체들은 중국 정부의 이같은 자국 업체 보호정책으로 글로벌 전기차시장의 절반 가량을 차지하는 중국 시장엔 접근조차 하지 못했다. 중국을 제외한 유럽과 미국 등 전기차시장에서 시장을 확대해왔다. 이조차 일본의 파나소닉이 전기차 1위 업체 테슬라와 독점계약한 탓에 쉽지 않았다.  

 한국 LG화학이나 삼성SDI, SK이노베이션 등은 유럽의 폭스바겐, 르노, 미국의 포드, GM, 한국의 현대·기아차 등을 공략해왔다. 하지만 이번 패러시스가 독일 완성차 업체에 배터리 공급 계약을 확정하면서 해외시장에서조차 중국 업체들과 맞붙어야 하는 국면에 처했다. 시장이 더욱 좁아진 셈이다. 

 지금까지 중국 업체가 유럽의 완성차 업체에 배터리 공급계약을 체결한 것은 1위 업체 CATL이 유일했다. CATL은 국내 LG화학과 삼성SDI, SK이노베이션도 참여하고 있는 독일 폭스바겐의 MEB 사업에 참여하는 업체 중 하나다. 업계에선 패러시스의 이번 독일 계약 상대방을 다임러로 추정하고 있다.

 상황이 이렇게 흘러가면서 기술력은 우위에 있다고 자부해왔던 국내 배터리업계 내부에서조차 우려의 목소리가 나온다. SNE리서치에 따르면 올 들어 10월까지 중국 CATL의 배터리 총량은 13.1GWh로 한국 1, 2위 업체인 LG화학(5.1GWh)과 삼성SDI(2.3GWh)를 모두 합쳐도 따라가지 못한다. 

 시장점유율은 LG화학(8.0%)과 삼성SDI(3.6%)를 모두 합쳐도 중국 2위 업체인 BYD(12.4%)에도 못 미친다. 다만 국내에선 한번 충전으로 더 오래 달릴 수 있는 배터리를 만들어낼 수 있는 기술력에선 우위에 있다고 판단해왔다. 하지만 이젠 CATL이나 패러시스 등이 기술력조차 다 따라왔다는 의미다.

 우리 정부는 이제와서 뒷북 대응에 나섰다. 지난달 12일 산업통상자원부는 LG화학, 삼성SDI, SK이노베이션 등 국내 배터리업체 3사와 차세대배터리 원천기술(IP) 확보와 차세대배터리산업 생태계 조성을 위한 1000억원 규모의 '차세대배터리 펀드 출자 및 운영에 관한 협력 업무협약'을 체결했다.

 한 업계 관계자는 "차세대 차량의 동력에 대해 정부가 갈팡질팡 하고 있는 사이 국내 업체들이 우위를 점하고 있던 전기차배터리 시장마저 중국에 넘어가고 있다"며 "지금와서 경쟁관계에 있는 3개사가 공동으로 1000억원 규모의 펀드를 만든다고 한 들 그 어떤 성과가 나겠나"고 반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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