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월 이후 정유4사 재고평가손실 1조 웃돌아

 

연초 이후 배럴당 두바이유 가격 변동 추이

 국제유가가 급락하면서 지난 10월 이후 국내 정유업계 전체의 재고평가손실이 1조원을 넘어선 것으로 추산된다. 앞서 정유사들이 사들인 재고 기름의 평가가치가 떨어지면서 회계장부상 손실이 발생한 것이다.

 우리나라가 주로 수입하는 두바이유가 배럴당 5달러 하락할 때마다 국내 정유4사가 떠안는 손실액의 합계액은 2450억원에 달한다. 두바이유는 10월 이후 현재까지 이미 20달러 가량 떨어진 상황이다.

 ■국내 정유4사 장부상 손실 1조…4년 만에 악몽 재현

 23일 한국석유공사에 따르면 두바이유 국제유가는 22일 기준 62.44달러다. 이는 지난달 1일(82.82달러) 대비 24.61% 떨어진 가격이다. 미국 정부가 이란산 원유 수입을 막겠다고 했을 때만 해도 유가가 오를 것이라고 봤지만, 예외국가를 허용한데다 석유수출국기구(OPEC)이 내년 수요를 하향 조정한데다 미국 원유재고량 증가 등이 유가하락을 부추기고 있다. 

 업계에선 두바이유가 배럴당 5달러 떨어지면 SK이노베이션, GS칼텍스, 에쓰오일, 현대오일뱅크 드의 평균 재고손실이 각 1000억원, 700억원, 600억원, 250억원 가량 확대되는 것으로 추산하고 있다. 통상 정유사들이 중동에서 원유를 매입해 배에 실어 가지고 오는데 걸리는 시간은 3주다. 미리 사들여 저장탱크에 쌓아둔 재고도 만만찮다. 정유사마다 비축해 둔 원유 재고는 1000~2000만 배럴 정도로 파악된다.

 하루에 정제할 수 있는 양이 가장 많은 SK이노베이션의 재고가 가장 많고, GS칼텍스, 에쓰오일, 현대오일뱅크 순이다. 두바이유가 이미 10월 이후 20달러 가량 떨어졌다는 것을 감안해 단순히 추산하면 이들은 각각 4000억원, 2800억원, 2400억원, 1000억원 가량의 재고손실을 보고 있다. 이 기간 국내 정유4사가 떠안은 평가손실만 1조200억원이다. 

 국내 정유사들이 국제유가 급락으로 대규모 재고평가손실을 본 것은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2014년 4분기 두바이유 가격이 배럴당 92.97달러에서 60.11달러로 32.86달러(35.3%) 폭락하면서 정유사 전체 손실규모가 1조5000억원로 불어난 바 있다. 당시 재고물량이 상대적으로 작은 현대오일뱅크를 제외한 SK이노베이션, GS칼텍스, 에쓰오일은 4630억원, 4523억원, 2132억원 규모의 영업손실을 기록했다.

■NCC로 만회할 수 있을까 

 문제는 정유업계가 앞서 이런 국제유가 변동성에 따른 리스크를 줄이기 위해 투자를 아끼지 않았던 석유화학부문 역시 상황이 녹록치 않다는 점이다. 지난 2014년까지만 해도 정유사들이 모두 적자를 내던 당시 LG화학 등 화학회사들은 약 1조9000억원의 영업이익을 기록했다. 국제유가 변동성의 직격탄을 피할 수 있는 산업구조인데다 부가가치가 높아 정유사가 한 자릿수의 영업이익률을 기록하는데 반해 석유화학업은 두 자릿수 이익률을 내기 때문이다.

 때문에 국내 정유사들은 '조 단위'의 투자금을 들여 앞다퉈 나프타분해시설(NCC)를 지었다. SK이노베이션은 2011년부터 화학사업에 4조6683억원을 투자했다. 정유업계 2위 GS칼텍스는 전남 여수 제2공장 인근에 2조6000억원을 투자해 MFC를 짓는다. 에쓰오일은 최근엔 4조8000억원을 투자한 잔사유고도화시설(RUC)·올레핀다운스트림시설(ODC) 시운전에 들어간 상태다. 현대오일뱅크도 지난 5월 현대케미칼을 통해 2조7000억원 규모를 투자했다.

 그러나 최근엔 화학산업의 '쌀'이라고 불리는 에틸렌 가격조차 녹록치 않다. 지난 2017년 7월(879달러) 이후 처음으로 1000달러 아래로 추락한 후 좀처럼 반등을 모색하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전기차 시장 확대에 따라 국내 정유사 뿐 아니라 글로벌 정유업체들까지 NCC 증설에 나서면서 향후 가격 전망도 그리 밝지 못한 상황이다. 당장 미국 다우 케미칼이 이미 지난해 4월, 쉐브론 필립스는 올해 3월, 엑손 모빌이 7월 각각 연 150만t의 설비를 완공했다.

 중국에서도 2020년에만 크고 작은 9개의 에틸렌 프로젝트가 완료돼 연간 총 900만t의 설비가 가동을 시작할 것으로 예정돼 있다. 중국은 오는 2025년까지 15개 이상의 대규모 에틸렌 설비 증설계획을 발표하고 자국 내 부족한 에틸렌 설비 확보(중국 내재화 비율 2017년 기준 58%)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세계 에틸렌 수요는 매년 연간 400만t 초반 수준으로 증가하지만, 신규설비 가동에 따른 공급 증가분은 매년 수요 증가분을 큰 폭 상회할 수 밖에 없는 상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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