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슈끄지 사태로 궁지 몰린 무함마드 사우디 왕세자

무함마드 빈 살만 사우디아라비아 왕세자<사진=AP·연합뉴스>

"리콴유냐, 사담 후세인이냐."

파이낸셜타임스(FT) 칼럼니스트인 기드온 라흐만은 지난주에 쓴 글에서 무함마드 빈 살만(MbS) 사우디아라비아 왕세자를 둘러싼 논란을 이렇게 정리했다. 무함마드 왕세자가 개발독재라는 비판 속에 그나마 비전을 갖고 싱가포르 번영의 주춧돌을 놓은 리콴유 같은 인물인지, 사담 후세인과 다를 바 없는 독재자인지를 놓고 논란이 분분하다는 지적이었다.

논란은 이미 일단락된 분위기다. 미국 대중지 USA투데이가 한 논객의 말을 빌려 무함마드 왕세자를 '페르시아만의 김정은'에 빚댔을 정도다. 이 논객은 무함마드 왕세자가 돈이 많고, 현재로서는 뚜렷한 핵야욕이 없는 것만 빼면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과 다름 없는 독재자라고 비판했다.

불과 2년 전 만해도 무함마드 왕세자에 대한 평가는 대척점에 있었다. 부왕세자 시절인 2016년 4월 발표한 '비전2030'이 주효했다. 석유 의존도를 낮추는 '탈석유 경제개혁'을 추진한다는 게 골자였다. 무함마드는 이듬해 왕위계승서열 1위인 왕세자가 됐고, 전 세계는 '개혁군주'가 될 그에게 '록스타'에 버금가는 환호를 보냈다. 같은 해 취임한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사우디를 첫 해외 방문지로 선택했을 정도다.

올해 33세에 불과한 왕세자의 결단으로 사우디는 여성이 차를 몰고, 누구나 극장에서 미국 할리우드의 영화를 볼 수 있는 나라가 됐다. 얼마 전만 해도 상상할 수 없던 일이다. 이미 실권을 장악한 무함마드 왕세자의 치세가 수십년 이어질 것이라는 관측은 전 세계에서 뭉칫돈을 끌어모았다.

지난해 처음 열린 '미래투자이니셔티브'(FII)가 사우디의 자금조달 통로가 됐다. FII는 '사막의 다보스포럼'이라 불리며 세계적인 정치·경제 거물과 투자 큰손을 끌어모았다. 물론 FII의 호스트는 무함마드 왕세자다.

사우디 출신 반체제 언론인 자말 카슈끄지 피살 사건은 오는 23일 개막하는 FII에 찬물을 끼얹었다. 주요 거물들이 잇따라 불참선언을 하면서다. 카슈끄지 사태에 대한 사우디의 불투명한 대응이 자초한 일이다.

카슈끄지는 지난 2일 터키 이스탄불 주재 사우디 총영사관에 들어간 뒤 실종됐다. 터키 당국은 살해설을 제기했지만, 사우디 정부는 그가 온전히 총영사관을 떠났다고 주장했다. 사우디 정부는 20일이 돼서야 말을 바꿔 카슈끄지가 총영사관에서 우발적인 싸움 중에 숨졌다고 발표했다. 용의자 18명을 체포했다고도 했다. 그러면서도 카슈끄지의 시신 행방은 언급하지 않았다. '시신 없는 사망'이다.

터키는 중동 패권을 다퉈온 상대인 사우디를 압박하고 나섰다. 터키 당국은 직접, 또는 현지 매체를 통해 그동안 카슈끄지가 참혹한 고문을 받다가 참수됐다는 내용의 수사 정보를 흘렸다. 사우디의 실세인 무함마드 왕세자가 이를 모를 리 없다는 관측이 뒤따랐다.

레제프 타이이프 에르도안 대통령은 급기야 오는 23일 카슈끄지 사태의 전말을 밝히겠다고 나섰다. 그는 21일 집권당 연설에서 '정의'를 강조하며 카슈끄지의 죽음과 관련한 의문을 해소할 수 있는 적나라한 진실을 23일 폭로하겠다고 예고했다. 23일은 FII가 개막하는 날이다.

라흐만은 예멘 내전 개입, 카타르 경제 봉쇄, 레바논 총리 일시 구속, 반부패 숙청을 명분으로 삼은 왕족과 기업인 등의 구속 등 최근 사우디에서 비롯된 잇딴 파문을 계기로 무함마드 왕세자가 '위험한 인물'로부상했지만, 미국을 비롯한 서방 국가들이 젊은 왕세자에 대한 기대를 꺾지 못했다고 꼬집었다.

문제는 사우디의 경제·전력적 중요성이 여전해 사우디를 정점으로 한 미국의 중동정책이 바뀌기 어렵다는 점이다. 트럼프 대통령이 카슈끄지 사태에 대한 사우디 정부의 해명에 불만을 나타냈지만, 사우디와 앙숙인 이란에 대한 제재를 재개하고 중동지역에 대한 러시아의 영향력 확대를 견제하고 있는 상황에서 사우디는 등지기 어려운 카드이기 때문이다.

전문가들은 다만 미국이 무함마드 왕세자를 중심으로 한 중동전략에는 변화를 줄 공산이 크다고 봤다. 라흐만은 "왕자는 믿지 말라'는 건 언제나 괜찮은 조언이었다고 꼬집었다. 왕자가 흔한 사우디에서 왕세자는 바꾸면 그만이라는 지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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