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중국 공업화신식화부가 공개한 '2018년 제10차 신에너지차 보급 응용 추천 모델 목록'엔 순수전기차 100개사 194개 모델, 플러그인 하이브리드차 5개사 6개 모델, 수소연료전지차 5개사 11개 모델이 포함됐다.

LG화학·삼성SDI·SK이노베이션 등 국내 배터리업체 3사의 배터리를 장착한 전기차는 이번에도 없었다. 1년 10개월째다. SK이노베이션 배터리를 장착한 메르세데스-벤츠 전기차는 지난 5월 방한한 먀오웨이 중국 공업신식화부장(장관)이 우리 측과 만난 자리에서 보조금 지급 전 단계에 해당하는 형식 승인을 통과한 사실을 공식화해 기대를 모았지만 마찬가지였다.

업계 전문가들은 중국 정부가 자국 기업과 국내 업체와의 기술 격차를 좁힐 수 있는 시간을 벌어주는 것이라고 설명하고 있다.

중국 정부가 이렇게 나오는 것은 현재 글로벌 자동차 시장의 패러다임이 빠른 속도로 변하고 있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현재 글로벌 자동차시장은 독일, 미국, 일본 그리고 한국 등이 시장을 선점하고 있다. 

하지만 이 시장의 '판'이 뒤집어지고 있다. 

지난해 전기차 판매량은 100만대 수준이지만 국제에너지기구(IEA)는 2020년이면 전세계 자동차의 3%에 해당하는 390만대가 전기차로 채워질 것이라고 전망하고 있다. 오는 2030년이면 2100만대(전체의 13%)까지 증가할 것이라고 본다.

IEA만의 전망이 아니다. 블룸버그통신 산하 IT 정보 제공업체인 BNEF는 한 술 더 떠 2030년이면 3000만대까지 늘어날 것이라고 예상한다. BNEF의 전망까진 아니더라도 2030년이면 전체의 자동차의 10%를 전기차가 차지할 것이라고 보는 게 보통이다.

중국 입장에선 자동차 산업에서 새로운 기회를 맞이한 셈이다.  중국 정부가 보조금이란 두터운 장벽을 쌓고 전기차의 핵심부품인 배터리 기업들을 집중 육성하는 것도 이 때문으로 풀이된다. 

시장조사기관 SNE리서치가 최근 발표한 올해 1~8월 전 세계 전기차 배터리 출하량 순위에서 중국 1위 배터리 업체인 CATL은 8644.0㎿h로, 일본 파나소닉(1만51.04㎿h)에 이어 2위에 올랐다. 이에 비해 한국 LG화학과 삼성SDI의 출하량은 각각 3755.0㎿h, 1809.0㎿로 성장률은 시장 평균을 밑돈다. 게다가 CATL은 최근 독일 등 유럽 현지에 공장 건설에 나서는 등 LG화학, 삼성SDI 등을 위협하고 있다. 

그나마 우리가 중국 업체들보다 앞서는 건 기술 뿐이다. 전기차가 오래 달리려면 니켈·코발트·망간 비율을 8:1:1로 맞춘 이른바 'NCM811' 배터리가 필요한데, 중국과 아직 기술격차가 존재한다.

중국 웨이라이의 전기 수퍼카 EP9.

하지만 이 격차도 점차 좁혀지고 있고, CATL이 이미 NCM811 개발에 성공했다는 이야기도 있다. 

만약 중국 배터리업체들이 기술을 확보하고 현재 kWh당 209달러 가량하는 배터리 팩 가격이 전기차에 적정한 단가라고 평가되는 100달러 수준으로 떨어지는 등 때가 도래한다면, 한국이 조선업을 중국에 내줘야 했듯이 자동차 역시 내줘야 할 지도 모른다. 

그리고 실제 징후는 이미 곳곳에서 포착되고 있다. 중국 정부는 올 6월부터 전기차 보조금 지원제도를 바꿔 주행거리가 짧은 차에 대해 보조금을 지급하지 않는 방식으로 자국 배터리 업체들의 구조조정을 시작했고, 지난 달 12일 미국에선 중국에서 창업한 지 4년 된 전기자동차 스타트업인 '웨이라이'가 뉴욕증시 상장 1호 중국 자동차 기업이 됐다.

문제는 우리 정부가 아무런 위기의식이 없다는 점이다.

상황이 이렇게 돌아가는데도 한국 정부는 '2020년까지 경승용 전기차를 20만대 판매하겠다'는 목표 이외에는 아무런 계획을 내놓지 않고 있다. 

정부 내 제대로 된 컨트롤타워가 없는 것은 당연하다. 실제 한국의 경우 전기차 배터리보조금 지급은 지방자치단체가, 전기차 정책 및 제도관리는 산업통상자원부가, 폐배터리 폐기는 환경부가 맡고 있다. 중구난방이다.

한 전문가는 "전기차에 대한 인프라 구축도 미흡하지만 더 큰 문제는 산업 패러다임 변화에 대한 준비를 하지 않고 있다는 것"이라며 "변화를 쫒아가지 못해 눈 뜨고 망하는 상황이 발생할 수 있다"고 경고했다.

그는 "현재 상황을 보면 정유회사들만 유일하게 투자를 통해 석유화학기업으로 변모를 꾀하고 있을 뿐 철강이나 내연기관에 맞춘 부품업체들은 아무런 준비조차 없다"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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