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남구 한국투자금융지주 부회장이 11일 서울 고려대학교에서 열린 '최고경영자(CEO)와 함께하는 한국투자증권 채용설명회'에서 대학생을 대상으로 강연하고 있다./사진:연합뉴스

 

금융권의 하반기 채용이 본격화하고 있습니다. 올해 하반기 금융권의 채용 규모는 지난해보다 늘어날 것으로 보이는 데 은행과 증권사를 합쳐 2700명 안팎을 뽑을 전망입니다.

이번에 눈에 띄는 것은 필기시험과 블라인드 채용 강화입니다. 은행권은 논술을 폐지하고 필기시험을 치르기로 했고 은행과 증권사 모두에서 블라인드 면접을 확대하고 있습니다. 지난해 은행권에서 불거진 채용 비리 등의 문제가 발생하지 않게 공정성을 강화한다는 취지입니다.

인재 선발에서 공정성은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중요한 가치입니다. 하지만 역량을 제대로 평가하지 못한다면 의미가 없습니다. 직원 채용은 그 자체가 목적이 아니고 회사의 발전을 위한 것이기 때문입니다.

은행의 필기시험 부활이 채용 비리에 따른 눈총을 피하기 위한 '언 발에 오줌 누기'라는 평가를 받은 것도 같은 이유입니다.

인재 선발은 기업이 가진 가장 큰 난제 중 하나입니다. 20~30년간 쌓아온 한 개인의 경험과 실력을 완벽히 객관화된 지표나 수치로 나타내거나 채용 진행 기간 내에 수천 명에 달하는 지원자를 밀도 있게 평가하기는 불가능합니다.

수개월간의 합숙을 통해 다수의 평가자가 실무 적합성이나 인성 등을 관찰하고 평가를 종합하는 것이 이상적이지만 비용 등을 고려하면 현실화 될 수 없습니다.

그래서 국내 대다수 기업이 학력과 자격증, 자기소개서 등으로 우선 한번 거른 뒤 면접을 보는 방식을 선택하고 있습니다. 기업 입장에서 가장 효율적이고 위험부담도 낮은 선택입니다.

이런 방식이 아직은 큰 무리 없이 효과적인 인재 선발을 가능하게 했을 수 있습니다. 하지만 한계는 멀지 않아 보입니다.

4차 산업혁명으로 대변되는 대변혁은 이미 시작됐고 금융업의 환경도 과거와 비교할 수 없을 만큼 빠르게 변화해야만 합니다. 이런 상황에서 이자놀이나 주식시장 활황에 기댄 성장 전략은 도태를 의미합니다. 생존을 위한 혁신과 차별화는 단순히 고스펙자의 집합으로는 만들 수 없습니다. 회사의 철학과 비전을 이해하고 남들과는 다른 고민으로 틀을 깨는 아이디어를 낼 수 있는 인재가 있어야만 합니다.

그런 의미에서 일부 증권사에서 보여주고 있는 인재선발 방식은 금융권에 시사하는 바가 적지 않습니다.

한국투자증권은 지점 영업직군에 한정하기는 했지만 이번 하반기 채용부터 '사전 인터뷰'를 도입하기로 했습니다.

 지원자가 아무런 사전 정보를 회사에 제공하지 않고 면접을 보고 통과하면 서류전형이 면제되는 방식입니다. 사전 신청 없이 정해진 장소로 오면 면접을 볼 수 있고 탈락하더라도 일반 서류 전형을 통해 입사 지원이 가능합니다.

자기소개서 작성이나 스펙만으로 영업 현장에 필요한 역량을 갖췄는지 판단하는 데 한계가 있다는 생각에서 만들어낸 방법입니다.

기존보다 채용 절차가 한 단계 더 생기면 투입해야 하는 비용과 자원은 늘어나지만 해당 업무에서 최대치의 역량을 발휘할 수 있는 인재를 뽑는다면 회사는 훨씬 더 큰 이익을 얻게 됩니다.

한국투자증권의 시도가 옳았는지 확인하려면 적어도 몇 년이 걸리겠지만 성공적이란 평가를 받게 될 가능성은 상당히 높아 보입니다. 그동안 보여준 인재 선발 철학이 이미 성공 사례로 자리 잡고 있다는 점에서 그렇습니다.

한국투자증권의 지주사인 한국금융지주 김남구 부회장은 15년 전부터 채용설명회에 직접 나서고 있습니다. 김 부회장은 여기서 회사의 방향성과 철학에 대해 설명하고 참석한 취업 준비생들과 가감 없는 대화를 나눕니다.

이런 과정에서 한국투자증권에서 일하기 원하는 사람들은 스스로 어떤 부분을 채우고 강점을 더 살릴지 인식하게 되고 거기에 맞는 노력을 기울일 것입니다. 한국투자증권이 추구하는 가치에 공감하지 못하는 사람들은 자연스럽게 걸러질 가능성이 큽니다. 회사의 철학과 비전을 공유할 수 있는 지원자들은 역량만 집중적으로 보면 되니 면접 등 채용과정에서의 평가 밀도도 높아질 수밖에 업습니다. 10년이 넘는 시간이 흐르면서 이런 효과는 점점 더 확대됐을 것입니다.

오랜 시간 회사의 철학과 비전을 공유할 수 있는 인재를 선발하려는 노력과 구성원들이 자신의 역량을 최대한 발휘할 수 있도록 믿고 지원하는 문화는 한국투자증권이 업계 선두로 올라서게 한 힘입니다.

얼마 전 상반기에만 20억의 보수를 받은 한국투자증권 직원이 나올 수 있었던 것도 개인의 뛰어난 능력과 이런 노력들이 결합한 결과입니다.

한국투자증권의 사례가 정답이라고 확언할 수는 없습니다. 그렇지만 일률적인 평가, 효율성만 추구하는 것보다는 많은 공을 들여 제대로 인재를 선발하는 게 기업에 더 나은 결과를 가져다준다는 사례로는 충분합니다.

모든 것을 한 번에 바꿀 수는 없지만 획기적인 변화는 필요한 시점입니다. '맨파워'가 무엇보다 중요한 금융권이 서류와 스펙의 늪에서 벗어나 사람 그 자체를 어떻게 볼 것인가에 대해 깊은 고민을 하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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