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적연금 강화국민행동 소속 회원들이 지난 17일 오후 서울 중구 대한상공회의소에서 열린 2018년 국민연금 재정계산 결과를 바탕으로 한 국민연금 제도 개선 방향에 관한 공청회에서 침묵시위를 마친 뒤 회의장을 나서고 있다./사진:연합뉴스

국민연금 제도개편에 대한 논란이 뜨겁습니다. 정확히 말하자면 비난의 목소리가 높다고 해야 할 것 같습니다. 청와대 국민청원 게시판에는 국민연금을 폐지하자는 얘기까지 올라오고 있습니다.

가뜩이나 생활도 어려운데 돈은 더 많이 더 오랫동안 내고 더 늦게 받으라니 불만이 터져 나오는 것이 당연해 보이기도 합니다.

이런 인식은 세금처럼 매달 월급에서 떼어가는 돈은 현실인데 내 주머니로 돌아올 날은 수십년 뒤의 먼 미래다 보니 국민연금을 통해 얻을 수 있는 이익을 체감하기 어렵다는 점과 국민연금이 고갈되면 돈을 내기만 하고 받지 못할 수 있다는 불안감 또는 오해 등이 복잡하게 얽히면서 만들어진 것입니다.

최근 국민연금 제도개편안이 발표됐습니다. 두 가지 안이 나왔는데 크게는 소득대체율을 유지 또는 인상하느냐와 보험료율을 현재보다 얼마나 올릴 것이냐가 다릅니다.

소득대체율은 평생 월평균 소득 중 얼만큼의 비중을 연금으로 받을 수 있는지를 말하고 보험료율은 가입자가 월급에서 내야 하는 돈입니다.

정부안이 확정되고 국회를 거쳐야 얼마를 더 내고 덜 받을지 결정되는데 개편안에 들어 있는 숫자는 크게 중요하지 않습니다.

핵심은 보험료를 더 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인상폭이 가입자의 생활에 충격을 줄 수준은 결코 아니고 지금보다 얼마를 더 내든 무조건 이익이란 점입니다.

현재 국민연금 가입자는 소득의 9%를 보험료로 내고 있습니다. 직장인은 이 중 절반을 사업주가 부담합니다. 소득대체율은 45%인데 단계적으로 낮아져 2028년 40%가 됩니다. 올해 국민연금 가입자의 월평균 소득 218만원을 기준으로 30년간 보험료를 낸다면 68만원 정도의 연금을 받을 수 있습니다.

지금 한달에 9만8000원(본인 부담 보험료)을 내면 연금으로 7배가량 많은 돈을 받는 것입니다. 개편안에 제시된 가장 낮은 소득대체율(40%)과 가장 높은 보험료율(13.5%)을 적용하면 한 달에 5만원을 더 내고 같은 돈을 받게 됩니다.

개인차는 있을 수 있지만 현행 기준으로 20년을 가입하고 20년 연금을 수령하면 낸 보험료의 두 배가량의 돈을 받습니다. 보험료 총액과 연금총액을 비교할 때 수익비란 말을 쓰는데 국민연금은 수익비가 2배가 된다는 것입니다. 민간보험상품 중에서 수익비가 1배를 넘는 것은 없습니다.

국민연금은 고갈되더라도 국가가 망하지 않는 이상 받을 수 있습니다. 이번 개편이 아니라도 고갈 전에 국가가 보전한다는 내용이 법으로 만들어질 것이기 때문입니다.

국가가 보전하지 않더라도 지금처럼 큰 주머니에 돈을 모았다가 연금을 주는 방식에서 필요한 만큼 걷어 바로 지급하는 방식으로 연금제도가 바뀌면 문제가 없습니다. 연금제도가 우리보다 먼저 시작된 유럽에서는 이미 대부분 이런 방식으로 연금제도가 운용되고 있습니다.

수많은 전문가는 한마디로 이렇게 요약합니다. "우리나라에서 국민연금처럼 안전하고 수익률이 높은 금융상품은 없다." 그리고 최대 약점은 가입자에게 너무 유리하게 만들어졌다는 것이라고 설명합니다.

근래 이런 점이 많이 알려지면서 국민연금에 대한 오해는 조금씩 사라지고 있는 듯합니다. 저출산에 따른 인구구조 변화로 보험료를 올릴 수밖에 없는 상황이란 점에 공감하는 사람도 적지 않습니다.

그런데도 국민연금 제도개선에 대한 불편한 마음이 표출되고 폐지해야 한다는 목소리까지 나오는 데는 여러 가지 이유가 있습니다. 앞서 말한 것처럼 보험료가 세금처럼 나간다는 점입니다. 단언컨대 세금을 더 내는 것을 좋아할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 국민연금이 신뢰를 얻지 못하고 있다는 것도 불편함을 키우는 요인입니다. 국민연금은 그동안 밀실에 이해하기 어려운 결정을 반복하면서 불신을 자초했습니다. 믿지 못하는 사람에게 돈을 오랫동안 맡겨두면서 편안할 수 없는 게 당연합니다.

장기적 관점에서 국민의 노후에 대한 걱정보다 눈앞에 놓인 자신의 자리 욕심에 국민연금에 대해 정확히 알리고 제도를 개선하려고 노력하기보다 오해를 부추긴 정치지도자들의 행태도 문제입니다. 여기에 부화뇌동한 일부 전문가와 언론의 책임도 있습니다. 보험료를 올려 국가가 국민의 주머니를 더 털어간다는 식의 보도가 대표적입니다.

정부를 공격할 때 국민연금만큼 좋은 재료는 없습니다. 사실상 모든 국민이 대상자고 모두가 부정적으로 생각하는 세금 인상과 같은 프레임을 씌우기에 적합하기 때문입니다. 짧고 자극적인 말로 세대갈등을 조장하고 공분을 이끌어내기도 쉽습니다. 반대로 방어를 위해서는 여러 수치를 들어 복잡한 설명을 해야 합니다.

테러범이 공항에 폭탄이 든 가방 하나를 슬쩍 흘리고 가면 혼란을 수습하면서 수많은 시민을 대피시키고 제거반 여럿이 붙어 진땀을 빼면서 해체해야 하는 것과 같은 이치입니다.

국민연금은 정치인이 아니라도 정부에 반감이 있는 사람 누구나 불만을 드러내는 데 활용하기 좋은 소재기도 합니다. 국민연금 제도 개선에 대해 비판의 목소리를 내는 것이 잘못됐다는 얘기는 아닙니다. 정치에 대한 견해차든 정책에 관한 불만이든 자유롭게 얘기해야 하고 할 수 있는 게 당연합니다.

그러나 오해를 만들고 불안감을 키우는 방식으로 흘러가서는 안 됩니다. 막무가내식 비난을 쏟아내고 정부가 곤란해하는 모습을 보면서 쾌감을 느낄 수도 있습니다. 한 달에 수십만원 내지 1백만원 안팎의 돈이 없어도 그만이라 국민연금을 없애자면서 마음에 들지 않는 정부를 실컷 욕먹게 하는 게 더 낫다는 생각을 할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당신의 작은 기쁨이 다른 사람의 노후에는 재앙입니다. 상당수는 한 달에 수십만원의 돈이 소중합니다. 제게도 그렇습니다.

저의 노후 자금을 운용하는 국민연금과 제도 발전의 열쇠를 쥔 정치권, 정부를 곱지 않게 바라보면서 비난을 퍼붓고 싶은 일부의 사람들에게 부탁합니다. 제 연금은 흥미가 있을 때 가지고 놀다 버려도 그만인 장난감이 아닙니다. 그러니 당장은 어렵고 마음에 들지 않더라도 사회구성원의 조금 더 편안한 노후를 위해 고통을 감내하면서 더 나은 제도를 만들어 정착시키기 위해 함께 노력해주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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