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월 금융권 채용비리와 관련해 KB국민은행 여의도동 본점에 대한 압수수색이 실시될 당시 본점 로비./사진:연합뉴스

 

"고객을 위해". 금융권에서 무슨 일을 하든 가장 앞세우는 말입니다. 최고경영자(CEO)를 비롯한 임원은 물론이고 직원들까지 언제나 모든 일은 고객을 위한 것이라고 강조합니다.

하지만 대다수 고객은 이런 말을 전혀 체감하지 못합니다. 어찌 보면 당연합니다. 금융권이 위한다는 고객은 대출이자나 수수료 같은 푼돈을 보태주는 다수의 고객이 아니라 큼지막한 목돈을 안겨주는 소수의 고객처럼 보이기 때문입니다.

최근 금융당국이 내놓은 퇴직연금 관련 조사 결과도 이런 사실을 방증합니다.

금융감독원은 지난달 은행과 증권사, 보험사 등 국내 17개 금융사를 무더기 징계했습니다. 지난해 금융권 전반에 대해 벌인 퇴직연금 부담금 미납내역 통지 여부 등에 대한 전수조사에 따른 조치입니다.

징계를 받은 금융회사들은 회사가 근로자의 퇴직연금을 미납했는데도 근로자에게 알리지 않았습니다. 현행법에는 1개월 이상 미납될 경우 근로자에게 통보하도록 하고 있습니다.

회사가 퇴직연금을 제때 납부하지 않으면 근로자들은 손해를 볼 가능성이 큽니다. 금융회사가 굴릴 퇴직연금이 줄어드니 그만큼 운용수익도 적어질 수밖에 없어서입니다.

금융회사는 이런 사실을 알면서도 근로자에게 일부러 알리지 않았습니다. 기업이 퇴직연금을 다른 회사로 옮길 수 있다는 우려 때문입니다.

근로자의 노후자금이 어떻게 되든 상관없고 법을 어기더라도 내 월급만 잘 챙기면 된다는 생각을 분명하게 드러낸 것입니다.

회사 관계자들에게 값비싼 선물을 하고 골프 접대를 하기도 했습니다. 여기에 쓴 돈에는 근로자의 퇴직연금에서 나온 것도 당연히 포함될 수밖에 없습니다.

이런 행태에 대해 한 금융투자업계 관계자는 눈앞의 이익만 쫓다 보니 퇴직연금 상품을 차별화하고 제대로 굴릴 수 있는 전문가 대신 영업 꾼들만 배치해놨기 때문이라고 지적했습니다.

영업하는 임직원을 탓한 것은 아닙니다. 퇴직연금이 장기적으로 운용·관리해야 하는 상품임에도 오랜 기간 관련 분야에서 경력을 쌓고 제대로 관리를 해 줄 전문가에게 일을 맡기지 않고 수수료 전쟁을 벌여서라도 당장 이익만 챙기려는 경영진의 판단에 대한 비판입니다.

금융산업이란 독과점 시장에서 편안하게 돈을 벌면서 자신들의 잇속만 챙긴다는 윤종원 청와대 경제수석의 말과도 일맥상통합니다.

윤종원 수석은 최근 언론 인터뷰에서 "우리 금융산업은 독과점 내수산업이다. 외부 진입을 막고 경쟁이 제약되면서 안주하려는 경향이 있다. 진입 장벽이 (금융사 임직원) 월급 많이 가져가라고 둔 것은 아니다."라고 강조했습니다.

금융사들이 스스로 경쟁력을 높이는 노력을 얼마나 했는지 국가 경제가 필요한 서비스를 얼마나 잘했는지도 살펴볼 것이라고도 밝혔습니다.

금융 분야에 대한 대대적인 혁신을 예고한 것이자 권력자로 군림하려는 금융권에 보내는 경고 메시지입니다. 스스로 변화에 앞장설 수 있는 마지막 기회를 주는 것이기도 합니다.

기득권과 안정된 삶을 유지하려는 것은 사람의 본성이고 그런 사람으로 이뤄진 집단의 당연한 속성이니 백번, 아니 백만 번 양보해서 이미 커다란 권력 집단이 돼 버린 금융권이 그동안 자발적인 변화에 나서지 못한 것은 이해합니다.

그러나 외부의 자극이 충분한 상황에서도 변화하지 않는다면 아무리 이해하려 해도 이해가 될 수 없습니다.

정부의 핵심 관계자가 나서서 대변하고 있는 사회적 요구에 금융권이 더는 뒷짐을 지고 있지 않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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