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종규 KB금융지주 회장./사진:연합뉴스

 

사상 최대, 역대급, 씽씽, 활짝. 곡소리, 폐업, 삼중고, 최저임금의 늪, 빚더미, 벼랑 끝.

명암이 뚜렷하게 대비되는 상반된 이 말들이 한 사회에서 동시에 나오고 있습니다. 바로 여기 대한민국에서.

금융지주와 은행 등 금융권은 하나같이 화려한 수식어가 따라붙는 호실적을 내면서 잔칫집 분위기입니다. 반면 자영업자로 대표되는 서민들의 생활은 초상집과 다르지 않습니다.

KB금융과 신한금융, 하나금융, 우리은행 등 4대 금융그룹의 올해 상반기 당기순이익은 총 6조3200억원으로 지난해보다 7% 이상 늘었습니다. 증가율은 비이자이익이 이자 이익보다 두 배가량 높습니다. 하지만 규모로 보면 순이익의 80% 정도는 이자로 벌었습니다.

국민은행과 신한은행, 하나은행, 우리은행 등 4개 은행의 상반기 순이자 이익은 11조원가량으로 사상 최대치를 기록했습니다. 지난해보다 10% 넘게 늘어난 수치입니다.

작년보다 예금과 대출 금리 차가 벌어진 게 이익 증가에 크게 기여했습니다. 올해 1분기 예대금리차는 1.88%로 작년 같은 기간보다 0.1%포인트 상승했습니다. 대출금 규모가 830조원 정도라는 점을 고려하면 1년에 8300억원은 더 벌 수 있다는 얘기입니다.

가만히 앉아있어도 많은 돈을 버는 금융권과 달리 자영업자의 삶은 팍팍하기만 합니다. 지난해 폐업한 사업자는 90만8000명으로 2년 연속 90만명을 넘었습니다. 이 중 90% 이상이 자영업자입니다. 연 매출 4800만원 미만의 간이 사업자 폐업도 증가했습니다.

어쩌다 자영업자가 됐지만 버티지 못하고 돈만 까먹은 채 문을 닫은 것입니다. 최근에는 최저임금 인상으로 생계에 큰 타격을 입을 수 있다며 폭염에도 거리로 뛰쳐나오려는 채비를 하고 있습니다.

자식 같은 아이들 아르바이트비 깎겠다는 게 마음이 아프지만 진짜 내 자식 먹일 돈이 없을까 봐 그런다는 게 자영업자들 얘기입니다.

인건비와 물가, 임대료, 저성장 등 이들의 팍팍한 삶은 복잡다단한 요인이 만들어낸 결과물이라 누구 하나의 책임이라고 할 수 없습니다. 그렇지만 금융권은 책임에서 벗어날 수 없습니다.

금융권이 실적 잔치를 벌이는 데 이들로부터 받은 이자도 상당 부분 포함돼 있으니 말입니다. 금융권은 돈을 빌려주고 정당하게 받은 이자를 두고 왜 억지를 부리느냐고 할 수도 있습니다.

미안하게도 깜깜이 대출금리 산정도 부족해 대출금리 조작까지 있었으니 정당하고 적절한 수준의 이자를 받았다고 믿을 수 없는 게 현실이니 달리 생각할 도리가 없습니다.

이자 놀음하느라 서민들의 어깨에 짐 하나를 더 얹는다는 따가운 시선을 피하고 싶다면 이제라도 진정성 있는 행보에 나서면 됩니다.

수천억짜리 사회공헌 사업을 하겠다거나 고용을 크게 확대하겠다는 식이 아닌 다른 방식 말입니다. 아쉽게도 금융권은 이런 방식을 아직 벗어날 생각이 없어 보이기는 합니다.

김태영 은행연합회장이 얼마 전 공익재단을 설립하는 등 은행권 공동으로 앞으로 3년간 7000억원 규모의 사회공헌을 하겠다고 밝혔습니다. 7000억원으로 재단을 만들고 하는 것보다는 그만큼 이자를 깎아주는 게 훨씬 더 피부에 와닿는 사회공헌입니다. 대출금리를 산정할 때 은행이 가져갈 이익을 조금만 줄이면 되니 어려울 것도 없습니다. 어쩌면 대출금리 조작만 안 해도 될 수 있습니다.

하반기 채용을 지난해보다 50% 이상 확대하겠다고 하는 것도 마찬가지입니다. 청년실업이 심각하니 당장 일자리를 늘리는 것은 중요합니다. 그러나 회사의 경영 계획이나 인력 수급에 대한 제대로 된 검토가 이뤄지지 않은 채용 확대는 오히려 독입니다.

얼마 지나지 않아 대규모 명예퇴직의 칼바람을 불러올 가능성이 있기 때문입니다. 불과 몇 년 전만 해도 금융권에서는 사람을 내보내기 바빴습니다. 그렇게 최근 3년 새 금융권에서 일하는 인원이 1만명이나 줄었습니다. 모든 일을 손으로 하던 예전만큼 많은 사람이 필요하지 않다는 게 주요 이유 중 하나였습니다. 최근 금융업 환경이 정반대로 변한 게 아니란 점을 고려하면 갑작스러운 채용확대 발표는 자연스럽지 못합니다. 채용 비리로 뽑았던 사람들의 자리가 비어 여유가 생긴 것인지는 모르겠습니다.

지난 얘기지만 금융권 입사지원자의 아버지일 수 있는 명예 퇴직자들을 매몰차게 내보내지 않았다면 어쩌다 자영업자로 만들지 않았다면 어땠을까요. 아마도 취업난 속에서도 입사지원자와 그들의 가족 모두 숨통이 조금은 덜 막혔을 것입니다.

서민·자영업자와 보조를 맞춘다고 금융권이 일부러 여유 없고 힘겨운 길을 선택할 이유는 없습니다. 하지만 금융업이란 특권을 부여받았고 그를 통해 많은 돈을 벌고 있다는 점에서 서민·자영업자도 함께 잔칫집 분위기를 누릴 수 있도록 노력해야 할 의무는 있습니다.

불필요한 채용과 그에 따른 대규모 명예퇴직보다 정정당당하게 들어가 안정적으로 지낼 수 있는 일자리. 어쩌다 한 두 번 인심 쓰듯 쥐여주는 지원금이 아닌 낮은 이자 부담. 그에 따른 서민 경제 활성화와 고용 창출. 이런 게 금융의 쓸모를 더 키우는 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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