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용만 상의 회장 "직접적인 분배정책을 조금 과감하게 써도 효과는 마찬가지"

내년도 최저임금이 8350원으로 결정됐다. 과정이 순탄치 않았다. 최저임금위원회에 경영계(사용자위원)가 불참했다. 사용자위원이 모두 불참한 가운데 최저임금이 결정된 것은 지난 1991년 이후 27년 만이다. 최저임금이 확정된 이후의 후폭풍은 훨씬 거세다. 똑같이 어려운 이들끼리 갈등을 조장했다는 비판이 제기됐다.

대기업이야 어차피 최저임금 이상의 노임을 지급하고 있는 만큼 결국 피해자는 경영환경이 녹록치 않은 소상공인들만 더 힘들게 만들었다는 지적이 불거졌다. '을들의 싸움'을 조장했다는 비판이 이어지면서 문 대통령은 대선 공약이었던 2020년까지 최저임금을 1만원까지 올리겠다는 약속을 철회했다. 그럼에도 지방선거 직후 79%로 80%에 육박했던 문재인 대통령 지지율도 67%까지 빠졌다.

공약 철회 이후에도 문 대통령 지지율이 떨어지는 것은 경영계와 노동계 양쪽으로부터 미움을 샀기 때문은 아닐까. 경영계는 당장 내년도 최저임금 인상으로 인한 사용자의 부담을 정부 탓으로 돌리고 있다. 일각에선 대통령의 핵심 경제공약인 '소득주도성장' 자체가 허구였다고 목소리를 높인다. 최저임금을 올려 소비가 늘어나는 효과보다는 오히려 일자리가 감소하는 부작용만 발생할 것이라는 저주에 가까운 전망을 내놓기도 한다.

반면 노동계는 대통령이 대선 당시 약속했던 '소득 양극화' 해소 의지를 포기하는 것이냐고 몰아붙인다. 최저임금 인상에 머리띠를 둘러맨 편의점 점주들에 무리한 가맹비를 요구하는 본사엔 한 마디 말도 하지 못하면서 가난한 '알바생'들을 착취할 생각만 한다는 비판의 목소리도 들린다.

이 가운데 박용만 대한상공회의소 회장이 의미있는 말을 했다. 박 회장은 지난 18일 제주에서 열린 '대한상의 제주포럼'에서 기자들을 만나 "정부의 최저임금 인상 근거인 '소득 양극화'에 대한 문제의식엔 동의하지만 방법론에 있어선 다양했어야 했다"고 말했다. 박 회장이 언급한 방법론이란 '직접적인 분배 정책'이다.

그는 "다양한 정책 수단에 직접적인 분배정책을 조금 과감하게 써도 효과는 마찬가지"라며 그 예로 정부가 3조8000억원을 지급키로 한 근로장려세제를 언급한 것으로 알려졌다. 쉽게 말하면, 양극화를 해소하려면 기업에 인건비 부담만 지우지 말고 정부가 저소득층에 나랏돈을 직접 나눠주라는 의미다. 재계단체 회장이 제 위치에서 해야하고 할 수 있는 당연한 말이지만, 설득력이 떨어지는 것은 아니다.

우리 정부는 보다 확장적 재정정책을 펼 수 있는 여력이 충분하기 때문이다. 실제 한국의 국가채무비율은 38%대 수준을 유지하고 있다. 지난해 채무 증가 속도는 0.3%포인트로 2010년 이후 가장 낮다. 국내총생산(GDP) 대비 국가부채 비율은 국제 간 비교 기준인 일반정부 부채(D2)로 보면 2016년 기준 43.8%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평균 112.7%보다 낮다.

증가 속도로 보면 우리나라는 2011년 34.5%에서 2016년 43.8%로 9.3%포인트 증가한 데 비해 OECD 평균은 글로벌 금융위기때 급격히 늘어 2011년 101.3%에서 2016년 112.7%로 우리나라 증가 폭을 웃도는 11.4%포인트 늘었다. 한국 국가부채 증가 규모와 속도는 점차 낮아지는 추세다. 정부가 직접적인 분배정책에 나설 때, 재계가 한 입으로 다른 소리를 하지 않기를 바랄 뿐이다.

저작권자 © 비즈니스플러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