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용범 증권선물위원회 위원장./사진:연합뉴스

"이게 무슨 얘기지?" 삼성바이오로직스 분식회계에 대한 증권선물위원회의 결론을 처음 접했을 때 자본시장 관계자들의 반응입니다.

전혀 예상치 못한 결론이기도 했고 발표를 한 김용범 증선위원장(금융위원회 부위원장)이 설명한 증선위의 판단과 조치의 맥락이 상당히 어긋나 있어 단번에 뚜렷하게 이해하기 어려웠기 때문입니다. 증선위는 지난 12일 긴급브리핑을 열고 삼성바이오로직스 분식회계에 대한 심의 결과를 발표했습니다.

갑작스레 예정에 없던 발표를 한다는 소식이 전해지면서 자본시장 안팎에서는 증선위가 삼성바이오로직스의 회계처리 위반이 있었다는 결론을 내렸고 검찰 고발이 이뤄질 것이란 관측이 나왔습니다.

한국거래소는 증선위의 결론을 토대로 삼성바이오로직스의 상장폐지 여부를 판단하는 절차에 들어갈 것이란 예상도 나왔습니다. 삼성바이오로직스가 분식회계를 했다고 판단하면 상장 적격성 심사 대상이 되기 때문입니다. 거래소 규정상 회계처리 위반 규모가 자기자본의 2.5%를 초과하고 검찰 고발이 이뤄진다는 두 가지 요건을 충족하면 상장폐지 여부를 검토하게 돼 있습니다.

이런 전망은 반만 맞았습니다. 검찰에 고발하기로 했지만 분식회계에 관해서는 판단을 유보하면서 거래소의 상장 적격성 심사 대상이 되지 않아서입니다.

삼성바이오로직스 분식회계 의혹의 쟁점은 크게 ▲2015년 삼성바이오로직스 자회사 삼성바이오에피스의 회계 처리기준 변경 ▲삼성물산-제일모직 합병과의 관련성 ▲미국 바이오젠의 콜옵션 보유 공시 위반 세 가지입니다.

증선위는 이 중 마지막 공시 누락에 대해서만 결론을 내렸고 검찰 고발도 이 부분에 한정했습니다. 회계 처리 기준 변경에 대해서는 금감원에 재조사를 명령했고 삼성물산-제일모직 합병 관련성에 대한 판단은 보류했습니다. 핵심은 빼고 내놓은 반쪽짜리 아니 반의 반쪽짜리 결론입니다.

한가지 사안을 쪼개서 결론을 발표할 것이란 생각을 못 했으니 시장 관계자들의 예상은 빗나갈 수밖에 없었습니다. 증선위가 금감원에 재감리를 요청한 것도 처음 있는 사례니 더더욱 그렇습니다.

"삼성바이오로직스가 명백한 회계기준을 중대하게 위반했다"란 김용범 증선위원장의 말은 증선위의 결론을 이해하기 더 어렵게 만들었습니다. 이 말과 증선위의 조치는 큰 잘못을 했으니 가벼운 처벌을 내린다는 앞뒤가 맞지 않는 얘기이기 때문입니다.

자본시장 관계자들은 증선위의 이번 결론에 대해 '묘수'라는 평가를 합니다. 삼성 측을 최악의 상황에서 벗어나게 함과 동시에 자신들도 면피하는 방법을 택했다는 뜻입니다.

삼성 측은 이번 건이 그룹의 승계 작업까지 확대될 수 있다는 점에서 검찰로 넘어가는 것을 피하고 싶어 했다고 알려져 있습니다. 하지만 증선위는 자신들에게 쏟아질 비난의 화살을 피하기 위해 검찰 고발을 하지 않을 수 없는 상황입니다.

검찰 고발은 하되 불이 크게 번지지 않게 하려고 공시 위반으로 범위를 최소화했다는 게 자본시장 관계자들의 해석입니다.

물론 삼성바이오로직스가 분식회계를 했다는 결론을 내놓고 접근하는 것은 부적절합니다. 그렇지만 여러 정황상 분식회계 가능성이 그렇지 않을 가능성보다 높다는 게 제게 의견을 준 전문가들의 생각입니다. 그 숫자는 많지 않지만 의견은 만장일치였습니다. 학자와 회계사를 포함한 수십 명 중 대부분은 '말하기 곤란하다', '내가 얘기할 수 있는 사안이 아니다' 등의 말로 피했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증선위의 결론을 보니 실망스러울 수밖에 없습니다. 단지 제 생각과 달라서만은 아닙니다.

경제학 박사이기도 한 김용범 증선위원장을 비롯해 경제·회계 분야에서 내로라하는 분들이 모여 한 달 넘게 머리를 맞대고 고민하게 꼼수를 짜내는 것이었나란 생각 때문입니다. 무슨 이유로 결론은 못 내리고 책임만 피하려 하나란 의문도 듭니다.

사실은 항상 분명하고 명쾌합니다. 거짓은 복잡하고 어지럽습니다. 이번에 내놓은 삼성바이오로직스에 대한 결론은 분명하고 명쾌하지는 않은 것 같습니다.

김용범 증선위원장님께 묻고 싶습니다. 이번에 내놓은 게 앞서 말씀하셨던 "이해 관계자 모두가 납득할 수 있는 균형된 결론"이 맞는지. 박사학위를 받으면서 쌓은 전문지식과 경제관료로 지내며 축적한 경험을 갖고도 분식회계에 대한 판단을 내리지 못하는 자신의 실력이 그리고 어쩌면 자신의 생각을 밖으로 드러내지 못해 교묘하게 상황을 피해 가는 당신을 바라보는 수많은 후배들에게 부끄럽지 않은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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