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석헌 금융감독원장이 9일 오전 서울 여의도 금융감독원 브리핑룸에서 금융감독혁신 과제 발표를 하고 있다./사진: 연합뉴스

"금융회사가 범죄 집단인가. 감독이 아니라 경영 간섭을 하겠다는 얘기다. 글로벌 시장에서 경쟁해야 하는 데 발목을 잡을 것이다. 규제 완화라는 세계적 트렌드에 역행하는 처사다. 금융소비자만 챙기다가 금융회사는 망한다." 

윤석헌 금융감독원장의 '금융감독 혁신 과제' 발표를 두고 금융권에서 불만의 목소리가 높습니다. 한마디로 종합검사 부활 등 금융감독을 강화하면서 금융회사의 경영이 위축될 수 있다는 것입니다. 

윤 원장이 전쟁도 불사하겠다는 강한 표현을 했으니 금융회사는 긴장하지 않을 수 없을 것 같습니다. 윤 원장의 말처럼 금융회사를 적으로 간주하고 진짜 전쟁을 하는 듯이 전방위적 공습과 폭격이 이뤄진다면 문제는 상당히 심각해질 수밖에 없습니다. 

그렇지만 이런 일이 벌어질 가능성은 크지 않습니다. 금융회사들이 대출금리를 조작해 소비자에게 덤터기를 씌우거나 제대로 된 정보를 제공하지 않는 불완전판매로 투자자가 손실을 보는 등의 상황을 앞으로 만들지 않는다면 말입니다. 

윤 원장이 말한 전쟁의 전제는 ▲단기 성과 중심의 경영문화 ▲폐쇄적인 지배구조 ▲부실한 내부 통제 ▲불건전 영업행위 등 부적절한 행태가 존재한다는 것입니다. 이를 바로 잡는 데 필요하다면 전쟁도 불사하겠다는 게 윤 원장의 얘기입니다. 반드시 전쟁을 하겠다고 하지 않았습니다. 무엇보다 감독 강화의 중심에는 그동안 금융회사들이 외면해 온 소비자 보호가 있습니다. 

윤 원장은 이런 사실을 누구나 깨달을 수 있을 정도로 분명하게 입장을 밝혔습니다. 

그런데도 볼멘소리를 쏟아내는 것은 윤 원장이 지적한 부적절한 행태가 없는 데 괜히 그런다는 의미인지 묻고 싶습니다. 그게 아니라면 잘못된 관행이나 행태를 바로 잡으면 될 일입니다. 

금융회사의 반감이 큰 종합검사 부활도 마찬가지입니다. 모든 금융사에 대해 하지 않고 문제가 있을 것으로 여겨지는 곳을 선별적으로 하더라도 부담은 있을 것입니다. 하지만 그 수준이 경영 성과 전반이나 사업 추진에 영향을 줄 만큼 금융회사는 작지 않습니다. 

게다가 종합검사를 되살린 가장 큰 공은 금융회사에 있습니다. 최근 금융당국은 물론이고 검찰 조사 등을 통해 채용 비리와 대출금리 조작 등의 부정한 사례가 계속 나오고 있지만 금융회사들은 사실상 아무런 대응도 하지 않았습니다. 회장과 행장 지키기 외에는 말입니다.

윤 원장이 평소 종합검사가 필요하다는 견해를 가지고 있었더라도 명분 없이는 부활시키지 못했을 것입니다.

학교에서 숙제를 안 해오는 학생이 많으면 선생님은 숙제 검사를 안 할 수 없습니다. 반대로 모두가 알아서 잘해온다면 숙제 검사는 필요 없습니다.

금융회사들은 윤 원장과 금융감독 당국에 불평·불만을 쏟아내기 전에 숙제를 제대로 하지 않은 자신을 부끄러워하고 문제는 없는지 돌아봐야 할 필요가 있습니다.

현재로선 '범죄자 취급하느냐. 규제 완화란 글로벌 트렌드에 역행한다. 금융소비자만 챙기다가 금융회사가 망한다'와 같은 얘기가 훈육을 하는 부모에게 "나 불편한 거 싫어. 그냥 마음대로 하게 놔둬"라며 떼쓰는 어린아이의 울음처럼 밖에 들리지 않으니 말입니다.

김기식 전 금융감독원장이 낙마하고 윤 원장이 온 뒤 금융권 안팎에서는 늑대를 피하려다 호랑이를 만났다는 얘기가 나왔습니다.

취임 후 두 달간 정중동 행보를 보이다 이제 막 색깔을 드러내기 시작한 윤 원장이 금융소비자 보호와 금융권의 부적절한 행태를 바로잡는 데 있어 세간의 평가처럼 호랑이와 같은 모습을 보여주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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