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SJ "미 금리·달러 상승에 金 투자 매력도 떨어져"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중국, 유럽과 벌이는 무역전쟁부터 유가 상승까지 글로벌 경제를 위협하는 요인들이 산적했다. 위험 속에서 투자자들은 안전자산을 선호하기 마련이다. 특히 금은 역사적으로 경제 뿐 아니라 정치 위기 속에 투자자들이 가장 선호하는 대표적 안전자산으로 꼽힌다. 하지만 이상하게도 이번 위기 속에서 과거 빛나던 금이 투자시장에서 철저히 외면당하고 있다. 

전 세계로 무역 전쟁이 확산될 것이라는 우려가 현실화했지만 금은 올 들어 거의 4% 가까이 떨어졌다. 글로벌 금융정보업체 팩트세트에 따르면 세계 5대 금 상장지수펀드(ETF)에서 지난달 21억달러 넘는 자본이 빠져 나갔다. 

결국 금이 더 이상 과거와 같은 안전자산의 위상을 갖지 못하고 있다는 애널리스트들의 평가가 재확인된 셈이라고 월스트리트저널(WSJ)는 전했다. 실제 최근 몇 년 동안 금값은 미국의 금리와 달러에 주로 영향을 받았다. 미 금리와 달러가 동시에 오르면서 금의 매력이 떨어진 것이다. 게다가 그동안 금값을 지지하던 중국과 인도의 현물 수요도 줄어 들었다고 WSJ는 분석했다. 

캐롤라인 베인 캐피털이코노믹스 수석원자재 이코노미스트는 "전 세계에서 높아지는 무역 긴장이 금값을 끌어 올릴 것이라는 견해가 있을 수 있다. 하지만 금값 상승은 없었고, 솔직히 이는 다소 놀라운 일이다"고 말했다. 미국과 중국이 서로를 향한 첫 관세전쟁의 포탄을 쏘아 올린 지난 금요일(6일) 금 선물은 런던거래에서 6개월 만에 최저로 밀렸다. 

이러한 현상은 과거와 비교하면 상전벽해다. 소비에트연합(소련)이 아프가니스탄을 침공하고 이란이 이슬람혁명으로 왕정에서 공화정 혹은 민주사회로 변화했던 1980년대 금값은 급등했다. 또, 2008년부터 2011년까지 미국의 서브프라임 모기지 사태로 인한 글로벌 침체 기간 동안 금값은 150% 뛰었다. 

하지만 이제 미국의 금리와 이에 따른 달러 강세가 금의 매력도를 현저히 끌어 내리고 있다고 WSJ는 진단했다. 금은 달러로 표시되기 때문에 달러가 오르면 다른 통화를 갖고 있는 투자자들에게 금은 더욱 비싸진다. 주요 16개국 통화 대비 달러의 가치를 나타내는 WSJ 달러인덱스는 지난 3개월 동안 4% 올랐다. 

또, 미국의 금리 인상으로 이자가 없는 금은 이자를 주는 미 국채에 비해서도 그 매력도가 훨씬 떨어졌다. 올리버 누젠트 ING 원자재 전략가는 "지난 한 달 동안 달러 추세는 놀라웠다"며 "올해 금이 누리지 못한 모든 것을 달러가 흡수했다"고 말했다. 

엄밀히 말하면 현재의 불확실성과 이에 따른 주식 변동성이 기존의 전통적 안전자산에 똑같은 상승 효과를 준 것은 아니다. 그러나 미 국채와 달러를 계속해서 부양하는 변수가 되고 있는 것은 분명하다고 WSJ는 평가했다. 

최근 금의 안전자산 위상이 다소 줄어든 경향도 있다. 러시아가 크림반도를 병합하고 시리아의 내전이 격화했을 때도 금값은 큰 변동이 없었다. 또, 북한의 핵위협과 브렉시트(영국의 유럽연합 탈퇴) 결정의 금값 상승효과는 순간에 불과했다. 

WSJ가 인용한 최근 금관련 연구에 따르면 극단적으로 부정적인 충격 이후 금을 15거래일 동안 보유한 투자자들은 금투자로 손해를 본 것으로 나타났다. 해당 연구 보고서는 "장기적 관점에서 금은 안전처가 아니다"고 결론냈다. 하지만 최근 금값 하락이 세계 2대 금소비국인 인도와 러시아의 저가 매수를 촉발할 수는 있다고 WSJ는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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