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 양강(G2)인 미국과 중국의 무역갈등이 전면전으로 번지고 있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18일(현지시간) 연간 2000억달러 규모의 중국산 제품에 10%의 추가 관세를 물리겠다고 경고하면서다.

무역 당사국 사이의 충돌을 흔히 무역전쟁이라고 하지만 전문가들은 이를 신중하게 가려 쓴다. 갈등 수위가 한계점에 이르기 전에는 가능한 한 피하려 하는 게 보통이다. 갈등과 전쟁은 차원이 다르다는 게 이유다. 

트럼프 대통령의 이날 경고는 이같은 무역전쟁 신중론을 무색하게 만들었다. 그의 발언은 사실상 전면전을 선포한 것이나 다름없다는 분석에 힘이 실렸다. 미국 보수 성향 싱크탱크인 미국기업연구소(AEI)의 드렉 시저스 연구원은 CNBC방송에 무역전쟁은 일부 부문이 아닌, 관련국 경제 전체에 영향을 줄 수 있는 행동이어야 한다고 설명했다. 트럼프 대통령의 추가 폭탄관세 경고가 실현되면 무역전쟁 전면전으로 봐도 무방하다는 뜻이다. 데보라 엘름스 아시안트레이드센터 설립자는 미국과 중국의 무역갈등이 유례가 없는 수준이라며 무역전쟁은 이미 시작됐다고 진단했다.

미국은 세계 최대 무역적자국이다. 지난해 중국에서 떠안은 무역적자만 3750억달러에 이른다. 중국에 1300억달러어치를 수출하고, 이보다 4배나 많은 5060억달러어치를 수입했다. 트럼프 행정부는 이미 연간 500억달러 규모의 중국산 제품에 25%의 추가 관세를 물리기로 했다. 2000억달러어치에 추가 관세를 매기면 중국에서 수입하는 물량 절반이 폭탄관세 표적이 된다. 시저스 연구원의 말대로 경제 전체에 영향이 불가피하다.

무게감은 덜 하지만 신중론도 남아 있다. 신중론자들은 미국과 중국이 공식 발표한 폭탄관세 조치가 아직 선별적이라고 지적한다. 다만 신중론자 중에도 전면전은 시간문제라고 보는 이들이 많다. 현재로서는 양국 모두 물러설 조짐을 보이지 않고 있어서다.

미국과 중국의 무역갈등을 놓고 무역전쟁이냐, 아니냐를 둘러싼 논란이 벌어진 건 무역전쟁에 대한 공포를 방증한다. 무역전쟁은 세계 경제에 재앙이 된다는 게 역사가 주는 교훈이다. 미국이 1930년 제정한 '스무트-홀리법'이 촉발한 세계 무역전쟁이 대표적이다. 당시 미국의 허버트 후버 행정부는 불황에서 벗어나기 위해 스무트-홀리법을 통해 일방적으로 수입 관세를 높였다. 이 법은 원래 농업을 보호하기 위한 조치였지만 의회에서 각 지역구 이해관계가 반영돼 관세품목이 2만여개로 늘었다. 1921~25년 평균 26%였던 관세율이 1932년 59%까지 뛰었다. 무역 상대국들도 관세인상, 수입제한, 환율통제 등으로 맞불을 놨다. 

이 결과, 글로벌 무역과 함께 세계 경제가 급격히 위축됐다. 세계 무역 규모는 1929~34년 66% 줄고 글로벌 국내총생산(GDP)은 1929~32년 15% 쪼그라들었다. 미국 경제사학계에서는 스무트-홀리법이 당시 세계 경제를 벼랑 끝으로 몰고 간 대공황을 악화시켰다고 보는 게 일반적이다.

노벨경제학상 수상자인 폴 크루그먼 미국 뉴욕시립대 교수는 최근 뉴욕타임스(NYT)에 쓴 칼럼에서 "무역전쟁은 결코 좋을 게 없다"며 "보복의 악순환이 세계 무역을 위축시켜 모두를 더 가난하게 만들 것"이라고 경고했다. 

2차 세계대전 이후 마련된 자유무역질서 아래 세계 경제의 무역 의존도는 1930년대와 비교할 수 없을 정도가 됐다. 기술이 진보하고 무역장벽이 낮아지면서 추세가 더 빨라졌다. 전 세계 GDP에서 무역이 차지하는 비중은 1960년 24%에서 최근 60%에 근접했다. 전문가들은 글로벌 무역전쟁이 재발하면 스무트-홀리법 시절보다 훨씬 큰 충격을 감수해야 할 것이라고 경고한다.

유엔무역개발회의(UNCTAD)는 최신 보고서에서 글로벌 무역전쟁이 관세율을 근래에 유례없는 수준으로 끌어올릴 것으로 전망했다. 미국과 유럽연합(EU), 중국이 생산한 제품에 대한 평균 관세는 현재 무시해도 좋은 수준이지만 무역전쟁이 일어나면 세율이 최고 30%, 35%, 40%까지 높아질 수 있다는 것이다.

UNCTAD는 무차별적인 폭탄관세 조치가 무역전쟁과 무관한 개발도상국과 신흥국에도 직격탄을 날릴 것으로 봤다. 이들이 생산하는 제품에 대한 평균 관세가 3%에서 37%로 급등할 것이라는 전망이다. UNCTAD는 특히 극빈국들도 심각한 타격으로 2020년까지 이들의 전 세계 수출 비중을 2배로 높인다는 '지속가능한 발전목표'(SDGs)가 흔들릴 수 있다고 경고했다. 빈곤의 악순환을 끊기 어려워진다는 말이다.

무키사 키투이 UNCTAD 사무총장은 이날 프로젝트신디케이트에 쓴 글에서 보고서 내용을 소개하며 "무역전쟁에서 이길 수 있는 가장 쉬운 방법은 다 함께 이를 피하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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