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정태 하나금융 회장(오른쪽)과 함영주 하나은행장./사진:KEB하나은행 블로그.

"주영아 태정이 형님이 안계시면 조직이 많이 흔들릴 수밖에 없으니 네가 대신 들어가서 고생 좀 해줘라. 오래 안 걸릴 거야. 어떻게든 손써서 금방 나오게 해줄게. 가족들 걱정은 하지 말고. 별 볼일 없던 촌놈을 이 자리까지 오게 해주신 형님 은혜를 생각해서라도 너무 억울해하지 말고."

조폭 영화에서 수없이 봐 왔던 장면입니다. 조직의 1인자가 법의 심판을 피하기 어려운 상황에 몰렸을 때 2인자 내지 고문 역할을 하는 누군가가 중간 간부인 주인공을 불러 죄를 대신 뒤집어쓰라고 설득하는 모습입니다. 겉모습은 설득이지만 거부할 수 없는 제안이니 사실은 협박과 강요라고 봐야 합니다.

주인공은 보통 어려운 환경 탓에 불가피하게 어둠의 세계로 들어왔고 세상에 기댈 곳 없던 자신을 알아본 1인자를 위해 흔들림 없는 충성을 해온 인물입니다. 

최근 함영주 하나은행장을 보면서 불현듯 이런 장면이 떠올랐습니다. 시중은행 채용비리 의혹을 수사 중인 검찰은 함 행장을 업무방해와 남녀고용평등법 위반 혐의로 구속영장을 청구했습니다.

구체적으로는 사외이사나 계열사 사장 등과 관련된 지원자들에게 사전에 공고되지 않은 전형을 적용하거나 임원면접 점수를 높게 주는 등 입사에 특혜를 줬다는 내용입니다. 남녀 채용비율을 정해 선발하거나 남성을 채용하기 위해 순위를 조작했다는 의혹도 있습니다.

검찰은 이와 관련해 함 행장 뿐 아니라 김정태 하나금융지주 회장과, 하나금융 사장을 지낸 최흥식 전 금융감독원장에 대해서도 피의자 신분으로 조사했습니다. 순리대로라면 김 회장과 최 전 원장에 대해서도 구속영장이 청구될 가능성이 있습니다.

하나금융그룹의 수장인 김 회장이 조폭 영화에서처럼 함 행장에게 모든 죄를 떠넘기려고 하지는 않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럼에도 함 행장의 구속영장 청구를 보면서 조폭영화의 장면이 떠 오른 것은 함 행장과 하나금융의 모습이 영화와 묘하게 닮은 구석이 있어서인 듯합니다.

함 행장은 전기도 들어오지 않는 산골마을에서 태어났고 가정형편도 어려웠습니다. 상고를 나와 은행에 들어온 뒤에야 야간대학을 다녔습니다. 은행에서는 소위 잘나가는 기획부나 해외 근무 경험도 없이 영업만 했으니 변방에만 머물렀다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함 행장 구속영장 실질심사를 앞두고 하나은행이 직원들에게 선처 탄원서를 쓰도록 요구하면서 함 행장의 상징성에 대해 시골 출신, 고졸, 시골촌놈 등을 예시로 들었다는 것만 봐도 함 행장은 금융권에서 누구나 아는 흙수저입니다. 그런 인물이 은행장까지 오르는 데는 김 회장의 의지가 무엇보다 중요했습니다. 

업계에서는 당시 하나은행장 뽑는 과정은 치열한 물밑싸움이 있었는데 판을 장악하게 된 김 회장이 함 행장을 선임했다는 게 정설입니다.

함 행장은 구 하나은행과 외환은행의 구성원들이 화합하는 데 충분한 역할을 했다는 평가를 받습니다. 경영성과도 양호합니다. 자신을 믿어 준 김 회장의 기대에 보답하고 있었던 셈입니다.

카리스마가 있는 김 회장의 성향도 조폭영화의 장면이 떠오르게 한 이유 중 하나가 아닌가 생각합니다. 금융권에서는 거침없고 강한 김 회장의 모습을 보면서 영락없는 보스라고 평가합니다. 하나금융은 다른 금융그룹과 비교해 회장의 리더십이 강하다는 것도 일반적인 시각입니다.

다시 영화 얘기로 돌아오면 영화마다 조금씩 달랐지만 대부분은 조직과 그에 속한 많은 사람들과 자신을 키워준 1인자에 대한 의리를 지키지 위해 죄를 뒤집어쓰고 들어갑니다. 하지만 조직과 1인자는 약속을 지키지 않고 분노한 주인공은 사회로 돌아와 복수극을 펼치다가 모두 비참한 최후를 맡게 됩니다.

#p.s. 함 행장을 보면서 떠오른 장면과는 전혀 다른 맥락으로 나왔던 것이지만 조폭영화를 연상한 탓인지 영화 친구의 유명한 대사가 생각납니다. "고마 해라 마이 묵었다 아이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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