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기식 금융감독원장./사진제공: 연합뉴스.

김정태 하나금융지주 회장과 힘겨루기에서 KO된 최흥식 전 금융감독원장을 대신해 김기식 전 의원이 금감원장으로 오게 됐습니다. 

'국회 정무위 저격수', '금융권 저승사자'로 불리면서 금융당국과 금융회사를 늘 긴장시키던 인물이 금감원장이 됐다는 소식에 금융권은 당혹감을 감추지 못하고 있습니다. 김 원장이 의정활동을 하면서 보여 준 행보와 무게감을 생각하면 당연합니다. 

김 원장은 2012년 비례대표(민주당)로 19대 국회에 입성해 금융위원회와 금감원을 소관하는 정무위원회 위원으로 활동했습니다. 민주당 간사로 정책 조율 역할도 맡았던 김 원장은 대부업 최고 이자율 인하 법안을 대표 발의하고 신규순환출자금지, 금융투자업계 임직원의 거래 제한 등의 입법을 주도했습니다. 

금융회사 대주주 적격성 심사를 제2금융권까지 확대하고 임원추천위원회를 도입하는 등의 금융회사지배구조법도 김 전 의원의 작품입니다. 국회에서 금융당국 관계자의 폐부를 찌르는 날카로운 질의는 트레이드마크였습니다. 보통 힘없는 새내기로 평가받는 비례 초선의원이라고 보기 힘든 활약이었습니다. 1994년 참여연대 창립멤버로 참여연대 사무국장, 정책실장, 사무처장 등을 지내기도 했습니다. 

금융권 출신이 아님에도 금융에 대한 전문적인 식견과 풍부한 경험이 있다는 평가를 받는 이유입니다. 금융권도 금감원 수장으로써의 능력에는 이의를 제기하지 않습니다. 대신 규제가 강해지는 것 아니냐는 불안감을 드러내고 있습니다. 

굳이 따지자면 김 전 의원이 금융회사를 자유롭게 풀어주자는 쪽이 아니니 이런 걱정은 어느 정도 이해가 갑니다. 

하지만 정치인 출신이라 인기영합주의로 가거나 정치 논리로 금융회사를 규제하는 것 아니냐거나 금융회사에 부담을 주는 규제만 많아질 것 같다는 식의 생각에는 동의하기 어렵습니다. 

김 원장이 의정활동을 하면서 내놓은 규제나 법안 중 정치적 계산으로 만들어진 것은 없었던 거로 기억합니다. 금융회사들이 아무것도 못 하도록 규제로 묶어놔야 한다는 입장도 아니었던 것으로 판단합니다. 

차라리 원칙대로 밀고 나갈 것 같은 강한 금감원장이 부담스럽다고 말하는 게 솔직합니다. 김 원장이 공무원 출신도 금융회사 출신도 아니라 연줄을 대고 빈틈을 찾아 아쉬운 소리를 하기가 힘들어질 것 같다고 말입니다. 

누구도 공개적으로 얘기하지 않았지만 금융회사들이 소비자 보호와 금융업의 질적 성장보다 자신들의 편익을 위해 갖은 인연을 동원해 금감원에 비공식적으로 수없이 많은 청탁을 했다는 사실을 부인하기 어렵습니다.

순수한 애로사항 전달 이상으로 말입니다. 금감원 내부에서도 연줄과 눈에 보이는 성과를 따라가는 행태가 만연했던 것도 사실입니다. 2011년 저축은행 사태가 이런 것들이 모여 만들어낸 불행입니다. 저축은행 사태만큼은 아니어도 이런 사례는 수없이 많습니다. 

복잡하게 얽힌 이해관계 탓에 안팎으로 눈치를 보느라 흔들리는 금감원의 원칙, 금감원 내부와 금융회사의 보이지 않는 반칙이 문제였다는 것입니다. 

좋은 약은 입에 쓰다는 말이 있습니다. 김 원장이 좋은 약이라고 단정할 수는 없습니다. 하지만 금융당국과 업계를 포함한 금융권에 이해관계가 없고 금융혁신 과제를 추진력 있게 밀고 나갈 수 있는 인물이란 점에서 좋은 약이 될 가능성은 매우 큽니다. 

금감원장 선임이 지방선거 이후로 밀릴 수 있다는 관측을 깨고 예상보다 일찍 이뤄진 것도 정치 논리나 일정에 얽매지 않고 금감원장으로써 본연의 역할을 할 수 있도록 보장하겠다는 정부의 의지로 봐야 합니다. 

국회의원은 금융당국과 금융회사를 마음껏 질책할 수 있고 입법권이란 막강한 권한도 있습니다. 하지만 직접적이고 즉각적인 방법은 아닙니다. 반대로 금감원장은 문제점에 언제든 직접적이고 즉각적인 방식으로 접근할 수 있습니다. 금융권이 국회의원 김기식보다 금융감독원장 김기식에 더 큰 두려움을 갖는 이유입니다. 

김 원장은 금융감독원장으로 결정된 지난달 30일 저녁 금감원을 찾아 최우선 과제가 금융소비자 보호란 점을 강조했습니다. 소비자 보호를 위한 규제는 강화하되 산업발전을 위해 풀어야 할 규제는 완화해야 한다는 뜻도 밝혔습니다. 금융권 일각에서 제기하는 무조건적 규제 강화는 하지 않겠다는 의지를 드러낸 것으로 읽힙니다. 

김 원장도 본인에게 따라붙는 수식어와 이미지를 잘 알고 있는 만큼 그리고 실질적으로 조직을 운영해야 하는 입장이 된 만큼 신중한 행보를 보일 것으로 예상됩니다. 그렇지만 좌고우면하거나 말랑말랑해졌다는 평가를 받아서는 곤란합니다. 

금융권의 목소리에 항상 귀 기울이되 잘못된 부분이 있다면 핵주먹을 날려야 합니다. 특히 소비자를 기만하는 금융회사의 행태, 소비 보호와 금융산업 발전보다 자신의 입신만을 바라는 금감원 내부의 폐습, 금융업 선진화의 속도를 떨어뜨리는 규제 군더더기를 향한 주먹에 망설임이 있어서는 안 됩니다. 

이런 과정에서 불필요한 잡음이 나오지 않으려면 김 원장 자신에게는 그 누구보다 엄격해야 하는 것도 당연합니다. 만약의 실수가 있다면 지체 없이 바로 잡는 것도 필요합니다. 

김 원장에 대한 금융권의 시선은 기대보다 우려가 큰 것이 사실입니다. 

앞으로 임기 3년 동안 금감원과 금융권은 적지 않은 성장통을 겪겠지만 소비자 보호와 금융산업이 진일보하고 지금의 우려가 기우였음을 김 원장 스스로 증명해주길 바라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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