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 사진제공: 연합뉴스

"무역전쟁은 좋은 것이고 이기기도 쉽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무역전쟁 선전포고에 전 세계가 들썩이고 있다. 수입산 철강과 알루미늄을 표적으로 삼은 미국의 무역 제재 공세가 보복의 악순환을 일으켜 세계를 더 가난하게 만들 것이라는 게 전문가들의 중론이다. 자유무역이 전후 세계 경제의 성장엔진 역할을 했다는 사실을 부정할 수 없기 때문이다.

2차 세계대전 뒤 전 세계가 '관세 및 무역에 관한 일반협정'(GATT·1948년)과 세계무역기구(WTO·1995년) 체제로 자유무역질서의 기초를 놓은 건 1930년대 대공황 속에 보호무역의 부작용을 절감한 탓이다.

1920년대 호황을 누리던 미국 경제는 1929년부터 휘청이기 시작했다. 같은 해 10월 이른바 '검은 목요일', '검은 화요일'로 뉴욕증시가 폭락하면서 대공황이 본격화했다. 당시 허버트 후버 대통령은 안팎의 반대를 무릅쓰고 1930년 '스무트-홀리법'이라는 관세법 제정안에 서명한다. 1920년대 초부터 불황을 겪던 농업을 지키기 위한 것이었지만 지역구 의원들의 압력으로 관세품목이 2만개로 늘었다. 당시 의원들 사이에는 자신의 지역구 산업을 보호하지 않는 법안에 찬성하지 않으려는 분위기가 팽배했다. 트럼프의 무역 제재가 앞으로 더 확대될 것이라는 전망이 나오는 이유다.

스무트-홀리법의 후폭풍은 컸다. 불과 2년 만에 미국의 수입관세율이 평균 60%로 곱절이 됐고 미국의 무역상대국들은 관세와 수입제한 등으로 맞불을 놓았다. 그 사이 세계 무역이 70% 가까이 줄면서 세계 경제 규모가 1929~32년 15% 쪼그라들었다. 미국의 실업률은 8%에서 25%로 치솟았다.

1960년대의 '치킨세'도 "무역전쟁은 좋은 것이고 이기기도 쉽다"는 트럼프의 주장을 무색하게 만든다.

2차 세계대전 뒤 미국에서는 공장식 양계로 닭고기 생산이 급증했다. 내수를 채우고 남은 물량을 수출할 정도가 됐다. 저렴한 미국산 닭고기 수입이 늘면서 유럽 양계농가가 직격탄을 맞았다. 프랑스에 이어 독일(당시 서독)이 1960년대 초 미국산 닭고기에 '치킨세'를 물리게 된 배경이다.

치킨세 때문에 미국산 닭고기 수출에 제동이 걸리자 미국 의회에서는 유럽 주둔군을 철수시켜야 한다는 주장이 빗발쳤다. 린든 존슨 당시 미국 대통령은 1963년 수입산 감자녹말, 브랜디, 소형트럭 등에 25%의 보복관세를 물렸다. 브랜디는 프랑스, 소형트럭은 독일을 표적으로 한 조치였다.

미국 산업계는 쾌재를 불렀다. 특히 독일, 일본의 도전을 받던 자동차업계가 반색했다. 이들은 '닭고기 전쟁'이 일단락된 뒤에도 미국 정부가 치킨세 체제를 고수하도록 의회를 상대로 로비를 펼쳤다.

문제는 일본 자동차 기업들이 치킨세의 구멍을 이미 공략하고 있었다는 점이다. 토요타와 이스즈 같은 기업들은 25%의 관세로 미국에 소형트럭을 수출하는 게 여의치 않자 부품을 수출하기 시작했다. 일본산 부품은 곧 품질과 가격 경쟁력을 인정받았다. 2000년대 초부터는 일본 기업들이 아예 미국에서 직접 차량을 생산하기 시작했다. 치킨세 체제 아래 방만경영을 일삼던 미국 기업들은 국내 생산으로는 일본에 맞설 수 없는 처지가 됐다. GM과 포드, 크라이슬러 등은 생산거점을 해외로 옮겨야 했다. 그 사이 미국인들은 소형트럭에 전보다 훨씬 비싼 가격을 치러야 했다.

1930년 미국 의회가 스무트-홀리법을 승인하자 미국 경제학자 1000여명이 후버 대통령의 서명을 반대하는 청원에 서명했다. 후버 대통령의 비공식 경제고문이던 토머스 러몬트 전 JP모간 회장은 "후버 대통령에게 터무니없는 스무트-홀리법에 거부권을 행사해달라고 거의 무릎을 꿇었다"고 당시를 회상했다.

전문가들은 지금도 트럼프의 무역전쟁을 말리려고 목소리를 높이고 있지만 트럼프는 곧이 듣지 않고 있다. 노벨경제학상 수상자인 폴 크루그먼 미국 뉴욕시립대 교수는 지난 2일 트위터에 "트럼프의 백악관에는 대통령을 구할 '어른'이 없다"고 성토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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