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외 가상화폐 결제 차단 이어 소액결제 수수료 인하까지

카드업계에 대한 금융당국의 규제 수위가 높아지고 있다. 정부는 국내 거래소뿐만 아니라 해외 거래소 카드결제도 차단하기 시작했다. 영세상인들의 부담을 줄인다는 명목 하에 소액결제업종에 대한 수수료를 인하한다는 방침도 밝혔다. 카드사들은 당국의 행보에 보조를 맞추면서도 고객들의 반발을 살까 걱정이 이만저만이 아니다. 수익성 악화까지 심해져 부가서비스 축소와 구조조정 카드 또한 만지작거리는 분위기다.

◇ 가상화폐 투자자 집단 반발 우려..카드사 ‘전전긍긍’

카드업계는 현재 정부의 가상화폐 투기 근절 방침에 따라 해외 가상화폐 거래소에 대한 결제 차단에 나섰다. 국내 거래소에 이어 해외 거래소에서도 카드결제를 통한 가상화폐 구입이 불가능해지는 것이다. 앞서 일부 카드사들은 국내 거래소에서 카드로 가상화폐를 살 수 있도록 했지만 정부가 ‘카드깡’으로 악용될 수 있다고 지적해 지난해 9월 관련 서비스를 전면 중단한 바 있다.

23일 관련 업계에 따르면 지난 18일 우리카드를 시작으로 롯데·신한카드 등은 해외 가상화폐 거래소 20곳에서의 신용·체크카드 결제 차단에 들어갔다. 국민카드 등 나머지 카드사들도 이번주 중 차단을 완료할 계획이다.

카드사들은 금융당국의 강력한 규제 방침에 보조를 맞추고는 있지만 300만명에 달하는 투자자들의 반발을 살까 노심초사다. 해외 거래소 결제 금지에 대한 명확한 법적 근거가 없어 만에 하나 고객이 소송을 제기할 경우 법적 분쟁으로까지 이어질 수 있는 탓이다.

현행 여신전문금융업법은 주식 등 금융투자상품과 예금, 적금 등에 대한 신용카드 결제를 금지하고 있다. 카드사와 가맹점이 맺는 약관에도 불법적인 행위를 한 경우 해당 가맹점의 결제 승인을 거부하는 조항 등이 존재한다. 하지만 가상화폐를 금융투자상품에 포함할 수 있는지에 대한 해석은 아직 불분명하다.

카드사의 한 관계자는 “아직 그런 사례는 없지만, 만약 고객이 가상화폐 거래소에 대한 카드사용 차단이 부당하다고 소송을 제기할 경우 어떻게 될지는 장담할 수 없다”고 말했다. 실제 앞서 신한은행이 가상화폐 관련 실명확인계좌 개설을 연기한다고 하자 투자자들이 반발해 신한카드 해지 움직임을 보이는 등 실체적인 위험도 확인된 상황이다.

또한 페이팔 등 해외 간편결제 시스템을 통한 우회 결제가 가능해 해외 거래소 이용을 완전히 차단하기 어려워 실효성 논란도 인다. 다른 카드사 관계자는 “페이팔과 같은 간편결제 서비스의 경우 해당 회사가 가상화폐 거래소에 대한 결제 서비스를 중단해야 하는데, 이는 현실적으로 불가능한 일”이라고 언급했다.

◇ 카드업계 “소액결제 수수료 인하, 소형·대형가맹점 모두에게 빈축”

금융당국의 카드사 압박은 가상화폐 규제에 그치지 않는다. 최종구 금융위원장은 지난 22일 소액결제업종 카드수수료 경감 방안을 밝혔다. 슈퍼나 제과점, 편의점 등 소액결제가 많은 업종에서 신용카드 가맹점 수수료를 인하한다는 계획이다. 이를 위해 7월부터 카드수수료 원가 중 한 부분인 밴 수수료를 정액제에서 정률제로 바꾸기로 했다.

현재 가맹점 수수료율은 영세 가맹점 0.8%, 중소 가맹점 1.3%, 일반 가맹점 2.0% 내외다. 소액결제업종은 통상 2.2~2.5%다. 금융위는 이번 제도 개선으로 소액결제업종 약 10만개 가맹점 카드 수수료율을 평균 0.3%포인트 낮출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이는 연간 약 200만∼300만원 상당의 가맹점 수수료 경감 효과를 낸다.

카드업계에서는 볼멘소리가 나온다. 소액결제업종은 이미 카드수수료 수익이 원가 이하라고 주장한다. 카드사 관계자는 “소액결제가 잦은 업종이 슈퍼, 제과점, 편의점 등이라는데 ‘등’에 정확히 무엇이 들어가는 지도 파악하기 어렵다”다고 꼬집었다. 그는 “단일 결제액 5만원 이하라는데 기본 서비스나 재화 단가가 높아 단일 결제금은 5만원을 초과하지만 한달 수익은 영세한 가맹점에 대한 해결책도 없다”고 비판했다.

실제 소상공인업계에서도 불만의 목소리가 터져 나온다. 소상공인연합회 관계자는 “정부 정책은 제품이나 서비스의 가격이 높아 객단가 자체가 높은 카센터나 미장원 등에서 돈을 걷어 편의점, 커피전문점 등에 나눠주겠다는 것”이라며 “정부 정책 변경으로 인해 부담이 커지는 업종에서 반발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카드업계는 수수료 인상으로 대형가맹점과 소형가맹점의 상생을 노린다는 방안도 납득이 가지 않는다고 지적한다. 금융당국은 정률제에 따라 5만원 이상 결제가 잦은 대형가맹점의 수수료가 오르면 수수료 인하로 인한 수익 악화를 보전할 수 있다는 주장이다. 하지만 카드사들은 이미 갑을관계가 형성된 대형가맹점과의 수수료 인상안을 나서서 논의하기는 껄끄럽다는 반응이다.

업계 관계자는 “대형사 수수료를 올리는 상쇄방안이 실효적으로 가능하겠느냐”며 “전체 수수료를 내리는 기조에 대형 가맹점에만 수수료를 올려달라고 요구하기가 쉽지 않다. 결국 소형 가맹점과 대형 가맹점 모두에게 빈축을 사는 꼴”이라고 푸념했다.

◇ 잇단 정부 규제 우려 목소리..“시장경제에 맡겨야”

카드사는 지난해 수수료율 우대 가맹점 대상 확대로 이미 3500억원 안팎의 손실을 본 상황. 이번 수수료율 인하에 이어 하반기엔 가맹점 수수료율이 재산정돼 수수료 추가 인하 가능성도 높다. 계속되는 수익성 악화에 카드사로서는 부가서비스 축소나 구조조정 등을 고심하는 분위기다. 이는 결국 소비자들의 피해로 이어지고 정부의 일자리 창출 정책에 역행하는 결과를 초래할 수도 있다.

카드사들은 그동안 신용카드 가맹점 수수료 인하 등의 여파로 회원에게 제공하는 부가서비스를 줄여왔다. 국회 정무위원회 소속 자유한국당 김성원 의원에 따르면 2013년부터 지난해 6월까지 BC카드를 포함한 국내 8개 카드사에서 축소한 부가서비스는 총 372건, 해당 카드는 4047종에 달했다. 결과적으로 카드사 부가서비스를 받기 위한 문턱도 높아졌다.

이처럼 부가서비스가 축소된 데는 가맹점 수수료 인하가 크게 작용했다. 국내 8개 카드사들의 지난해 3분기(7∼9월) 당기순이익을 보면 4196억원으로 전년 대비 20% 감소했다. 롯데카드는 적자로 돌아섰다. 정부가 신용카드 가맹점 수수료 인하를 8월부터 시행하면서 카드사들의 가맹점 수수료 수익이 줄었기 때문이다. 실제 이 기간 매출액 기준 2억~3억원 가맹점의 신용카드 수수료율은 1.3%에서 0.8%로, 3억~5억원 가맹점은 2~2.5%에서 1.3%로 각각 낮아졌다.

현재 카드업계에서는 수익성 악화로 인해 인원 감축 추이도 보이고 있다. 신한카드는 10년 이상 정규직을 대상으로 희망퇴직 신청을 받았으며, KB국민카드도 노사가 10년 이상 직원들을 대상으로 희망퇴직을 시행하는 방안을 추진 중이다.

6.13 지방선거를 앞두고 선심성 공약으로 카드 수수료가 도마 위에 오르고 있는 가운데, 정부의 잇따른 시장 가격 개입에 대한 우려의 목소리도 나온다. 절차적 정당성과 시장 논리가 우선돼야 한다는 지적이다. 이에 가맹점 수수료율을 고정요율로 정할 것이 아니라 시장 경쟁에 맡겨 가맹점 선택권을 확보해야 한다는 주장도 있다.

김상봉 한성대 경제학 교수는 “가맹점한테 선택권이 있다. 가맹점은 수수료가 낮은 카드사와 제휴하면 되니 카드사는 가맹점 선택을 받기 위해 수수료를 낮출 것”이라고 말했다. 한 카드사 관계자는 “(금융당국의) 거듭된 규제 정책과 수수료율 인하로 이익이 나지 않는 상황인데 고객들로부터 평판만 나빠지고 있다”면서 “금융당국이 지방선거를 앞두고 이런 정책을 내놓는 것은 바람직해 보이지 않는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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