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장회사들의 주주총회가 특정일에 몰리는 '슈퍼 주총데이' 관행이 바뀔 수 있을까. SK그룹이 재계 최초로 그룹 차원에서 계열사 주총을 분산 개최하기로 했다.

최종구 금융위원장이 지난해 말 "슈퍼 주총데이는 하루빨리 시정해야 할 관행"이라며 분산 방안을 마련하겠다고 밝힌 후 첫 반응이다.

이에 대해 SK그룹은 "글로벌 투자전문 지주회사 도약을 목표로 하는 만큼 글로벌 스탠더드에 맞춰 사회와 주주의 요구에 부응하는 다양한 노력을 기울인다는 차원"이라고 설명했다.

정부의 소액주주 권리 강화 정책에 코드를 맞추는 모습을 보이고자 선(先)대응에 나선 것이다. 무엇보다 섀도보팅이 지난해 말 일몰돼 특정일에 주총을 몰아 하는 것 자체가 이미 부담스러운 상황이다. 

섀도보팅은 주주총회에서 의결정족수를 채우지 못한 상장사가 한국예탁결제원에 안건별로 요청하면 예탁원이 모자라는 정족수만큼의 의결권을 참석한 주주의 찬반투표 비율에 맞춰 행사하는 제도다. 지난해 주총의 경우 전체 상장사 중 33.3%가 섀도보팅을 신청한 바 있다.

최준선 성균관대 명예교수는 "섀도보팅 폐지로 주식이 널리 분산되어 소위 '소유지배구조가 좋다'는 평가를 받는 기업일수록 성원 미달로 주총이 무산될 역설적인 상황에 처해 있다"고 지적했다.

여기에 우리나라의 경우 소액주주들이 주가 차익 실현을 위해 주식을 보유하고 있어 주총 안건에 관심이 없는 경우가 많다는 것도 문제다.

실제로 한국거래소는 세계거래소연맹이 발표한 2016년 주식회전율 순위에서 중국 선전거래소, 중국 상하이거래소, 타이페이 거래소, 이스탄불 거래소에 이어 5위를 차지한 바 있다.

최 교수는 "우리나라는 99%의 개인주주들이 주가 차익을 얻기 위해 3~6개월마다 주식을 매도하고 있다"며 "주총 당일에는 소집통보 시 주주였던 사람들의 상당수가 이미 주주 자격을 잃었고 남은 이도 주총에 관심이 없을 가능성이 높다"고 설명했다.

SK그룹의 결정이 재계로 확산될지도 주목되는 부분이다. 그동안 재계는 의결정족수 문제로 주총결의에 어려움이 발생할 수 있다며 섀도보팅 연장을 주장해 왔다. 국회 정무위원회도 오는 2월 임시국회에서 섀도보팅 연장을 재논의키로 한 상황이다.

하지만, SK그룹의 결정은 섀도보팅 폐지를 염두한 것으로 보여 연장안이 국회를 통과하기는 힘들 것이란 시각이 많은 것으로 풀이된다.

재계에서는 차라리 섀도보팅 폐지에 따른 대안인 의결정족수 완화 관련 상법개정안 통과에 기대를 걸고 있다.

국회에 올라와 있는 상법개정안에는 출석주식수 기준만으로 결의하는 안과 의사정족수를 부활시키고 출석주식수 기준으로 결의하는 차등의결권이 있다.

최준성 교수는 "한국에서 주주총회 안건이 가결되기 위해서는 출석 의결권의 과반수 찬성을 얻는 것과 별개로 그 찬성표가 발행주식총수의 4분의 1을 넘어야 하는데, 이 '1/4 요건'이 실질적으로 의사정족수의 기능을 하고 있다"며 "해외 입법례에 맞추어 이 요건을 삭제하고, 출석한 의결권의 과반수만으로 결의가 이루어질 수 있도록 해야 한다"고 제안했다.

해외의 경우 의사정족수 요건이 주총에 걸림돌이 되는 경우는 거의 없다. 독일은 의사정족수 도입을 회사 자율에 맡기고 있고 중국은 규정 자체가 없다. 영국은 의결권 수를 불문하고 주주 2인 이상이면 충족한 것으로 본다. 프랑스는 최초 소집 시 1/5요건을 규정하고 있지만, 무산 후 재소집 시에는 의사정족수를 요구하지 않는다. 일본은 의사정족수를 의결권의 과반수로 요구하지만 회사가 정관으로 이를 배제할 수 있다. 미국은 주요 주에서 의사정족수를 과반수로 규정하지만, 정관으로 1/3까지 낮출 수 있다.
 
한편 정부는 섀도보팅 폐지 대안으로 모바일 전자투표제를 제시하고 있다. 하지만 전자투표제조차 전체 상장사의 도입률이 57% 수준이고 실시율은 36%다. 기업집단 상장사의 경우 도입률 23.1%, 실시율 21.3%로 실효성 논란이 일고 있다.

저작권자 © 비즈니스플러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