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은 매년 12월이 되면 중앙경제공작회의라는 행사를 개최한다. 개최 시점은 해마다 좀 다른데 대략 12월 중순께다.

이 회의에는 중국 공산당 대표기구인 중앙위원회 위원 376명(중앙위원 204명·중앙후보위원 172명)이 모두 참석한다. 통화정책 컨트롤타워인 저우샤오촨(周小川) 인민은행장도 중앙위원회 의원은 아니지만 당연직 참석자다.

시진핑(習近平) 국가주석이 개막을 알리는 연설을 하고 권력 서열 2위인 리커창(李克强) 총리가 직접 회의를 주재한다. 행사의 위상을 가늠할 수 있는 대목이다.

중앙경제공작회의는 1994년부터 열려 왔는데 중국이 미국과 어깨를 나란히 하는 G2로 부상하면서 세계의 이목이 집중되는 행사가 됐다. 이듬해 중국 경제정책의 방향을 파악할 수 있는 가늠자인 때문이다.

올해는 18~20일 열리는데, 특히 지난 10월 중국 공산당 19차 전국대표대회(당대회)를 통해 시진핑 집권 2기가 시작된 이후 첫 회의라는 상징성이 있다. 비단 내년뿐 아니라 향후 5년간 중국 경제의 큰 흐름을 좌우할 내용들이 집대성된다.

이 회의에서는 미국과 한국, 일본, 유럽연합(EU) 등 주요 무역 파트너에 대한 이슈도 논의된다. 기획재정부와 산업통상자원부 등 유관 부처는 물론 청와대까지 촉각을 곤두세우고 지켜보는 이유다.

중앙경제공작회의 개막 닷새 전인 지난 13일 문재인 대통령이 취임 후 처음으로 중국을 방문했다. 국빈(國賓) 자격으로 3박4일의 일정을 소화했다.

근데 이 방중(訪中)에 뒷말이 많다. 보수 언론은 문 대통령이 중국에서 외교적 홀대를 당했다는 이른바 홀대론으로 여론몰이에 나선 뒤 혼밥론과 기자폭행 논란을 거쳐 외교실패론까지 이어지는 논리를 완성했다.

현실을 도외시한 주장이다. 문 대통령이 왜 중국에 갔나. 한반도 사드 배치로 악화된 한·중 관계를 복원하기 위해서다.

불과 두어달 전까지도 중국에 거주하는 교민들이 지하철과 버스 등 대중교통과 공공장소에서 한국어로 대화를 나누는 데 부담을 느낄 정도로 양국 관계는 최악의 국면이었다.

화가 난 친구를 달래러 가면서 융숭한 대접을 바랐다면 어불성설이다. 사드 레이더의 탐지 범위 논란, 한국의 미국 미사일 방어체계(MD) 편입 및 한·미·일 군사동맹 구축 가능성 등은 중국이 사드에 반대하는 표면적인 이유다.

중국 스스로 망신을 당했다고 여기는 게 더 근원적인 이유일 수 있다. 중국인들은 우리 체면과 비슷한 의미의 '몐즈(面子)'를 가장 중시한다. 사회적 관계도, 국가간 관계도 몐즈를 매개로 형성된다.

박근혜 전 대통령은 중국 측에 사드 배치를 하지 않겠다고 공언한 지 한 달 만에 손바닥 뒤집듯 사드 전격 배치를 결정했다. 대국 외교를 강조하던 시 주석은 뒷통수를 맞았다. 몐즈가 훼손된 것이다. 

이후 중국의 사드 보복 조치 등 대국답지 않은 행보는 논외로 치자. 문 대통령의 방중은 신뢰 회복의 첫걸음이다.

문 대통령과 시 주석의 정상회담을 전후로 의미있는 변화가 나타났다. 한·중 자유무역협정(FTA) 협상 재개, 유커(중국인 관광객)의 한국 단체관광 허용, 중국에 진출한 한국 기업에 대한 규제 완화 등이다.

한·중 관계 복원의 핵심은 경제적 측면일 수밖에 없다. 문 대통령이 사상 최대인 260여명 규모의 경제사절단을 꾸려 중국으로 향한 것도 같은 맥락이다.

문 대통령이 혼밥론을 감수하면서 베이징 서민 식당에서 식사를 한 것도 중국인들이 한국 제품을 선호하고 한류에 열광하고 한국 여행을 즐겼던 사드 갈등 이전의 모습으로 돌아가기를 바라는 마음의 발로라 믿는다.

문 대통령의 방중과 정상회담으로 양국의 경제 협력 관계 정상화를 위한 단초가 마련됐다. 구체적인 내용들은 이어 열리는 중앙경제공작회의에서 최종적으로 추인된다. 사드 보복 철회와 관련된 논의도 물밑에서 이뤄질 것으로 예상된다.

하필 난징대학살 80주년인 그 날에, 베이징에 시 주석도 없고 리 총리도 없던 그 날에 문 대통령이 중국행 비행기에 몸을 실었던 중요한 이유를 알 수 있다.

중앙경제공작회의가 개최되기 전에 갈등을 봉합해 양국 관계 회복에 따른 경제적 이득을 확실히 챙기겠다는 의도다. 문 대통령의 방중 타이밍은 옳았다.

한·중 관계는 25년 전 처음 손을 맞잡으며 웃었던 그때로 영영 돌아갈 수 없을 지도 모른다. 지난 2년간 패인 감정의 골이 깊은 탓이다.

그렇더라도 전 정권이 남긴 난제를 해결하기 위해 동분서주하는 문 대통령에게 기회를 줘야 한다. 한·중 양국이 영원히 등 돌리고 살 수 없는 관계인 것도 사실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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