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0년대 후반 국내 증시를 뜨겁게 달궜던 '냉각캔' 파동을 기억하시는지.

'미래와 사람'이라는 상호의 한 상장사는 냉장고 없이도 음료수를 차갑게 마실 수 있는 신개념 깡통을 개발했다고 발표했다. 곧이어 캐나다 무역회사와 1억 달러 규모의 제조기술 수출계약을 체결했다는 소식도 들려 왔다. 이때가 1998년 8월이다.

지금도 그렇듯 시장은 제대로 검증도 하지 않고 일단 환호했다. 5000원대였던 주가는 3만원대 후반까지 7배 이상 치솟았다.

하지만 상용화 시점으로 못박았던 1년이 지나도록 실물을 구경할 수 없었다. 결국 1999년 11월 금융감독원은 이 회사 임직원을 검찰에 고발했다. 주가조작 등 혐의였다.

결말은 싱거웠다. 불과 3개월 뒤인 2000년 2월 검찰은 미래와 사람 전 대표를 기소유예 처분하고 주요 임원진도 500만~2000만원씩 약식기소하는 선에서 사건을 덮었다.

검찰은 냉각캔 사업 설명회 때 대량생산을 위한 금형작업이 진행 중이라고 과장 선전한 정도만 인정될 뿐 "사안이 경미하다"고 판단했다. 피해는 상투를 잡았던 개미 투자자들이 고스란히 떠안았다. 이 때문에 정권 실세가 개입했다는 등의 확인 불가능한 루머가 한참을 떠돌았다.

기소 문턱까지 갔다가 기사회생한 당시 미래와 사람 전 대표는 권성문 KTB투자증권 회장이다. 그 후 승승장구하며 벤처 투자의 귀재로 불렸다.

권 회장이 다시 검찰의 수사를 받게 됐다. 회삿돈을 개인적으로 유용했다는 횡령·배임 등 혐의다. 최근 소환조사도 이뤄진 것으로 알려졌다.

권 회장은 지난 2000년 '아이들과 미래'라는 사회복지법인을 설립하는데 참여했다. 검찰 수사를 받으며 악화한 이미지 회복을 위한 시도라는 의견이 많았다. 이 재단은 국내 아동과 청소년에게 다양한 교육과 문화예술 체험 기회를 제공하고 있다.

냉각캔 파동에 휩싸였던 회사와 이후 설립된 재단의 법인명에 모두 '미래'가 담겨 있는 건 공교롭다.

17년 전 권 회장에게 기소유예 처분을 내린 서울중앙지검 특수1부 부장검사는 검사장까지 지낸 뒤 지난해 3월 아이들과 미래 재단 이사장으로 취임했다. 이 정도면 악연이 인연으로 뒤바뀌었다고 봐도 무방할 터다.

검찰은 이 재단의 자금 흐름도 들여다보고 있는 것으로 전해진다. 권 회장 수사를 맡은 서울중앙지검 특수2부는 현재 박근혜 정부 시절 면세점 비리 의혹, 보수단체가 국가정보원의 도움을 받아 대기업 지원을 받은 화이트리스트 사건 등 적폐청산 수사 역시 진행 중이다.

특수2부 부장검사는 기소율이 높기로 유명하다. 권 회장을 둘러싼 인연들이 또다시 악연으로 돌변할지 지켜볼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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