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가 경제에 너무 무능해 감당하지 못하고 있다. 우리라도 나서 미국과의 통상 이슈, 중국의 사드 보복 조치, 일자리와 가계부채 등의 현안에 대비해야 한다."

탄핵 정국이 한창이던 지난 3월 초. 문재인 당시 민주당 대선 후보는 비상경제대책단 출범을 알리며 이같이 강조했다.

경제 각 분야에서 전문가로 인정받던 13명의 대책단 멤버들은 대선 기간 중 '제이(J)노믹스'의 골격을 구축하는데 주력했다. 이후 문재인 후보가 대선에서 승리해 대통령이 되자 대책단은 자연스럽게 해산됐다.

하지만 문 대통령이 취임한 뒤 상황을 지켜보면 대책단의 대응책 마련이 적절했는지 의구심이 든다. 문재인 정부는 자국 우선주의에 매몰된 미국 트럼프 행정부의 압박에 못 이겨 사실상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재협상 수순에 들어갔다.

중국 정부의 사드 보복 조치도 제어되지 않고 있다. 오히려 새로 부임한 노영민 주중 대사가 사드 배치에 따른 후폭풍의 책임을 중국 대신 국내 기업에 떠넘기는 듯한 언급을 해 파장이 일기도 했다.

그리고 정부 출범 후 반년 가까이 흐른 최근 대책단 멤버들이 재조명되고 있다. 주요 공공기관 수장의 물갈이가 본격화하면서부터다.

현역 국회의원인 김정우 의원과 최문열 의원을 제외한 11명의 멤버 중 4명은 집권과 동시에 자리를 잡았다. 이용섭 일자리위원회 부위원장과 김수현 청와대 사회수석, 김현철 청와대 경제보좌관, 이동걸 산업은행 회장 등이다.

나머지 7명 가운데 김성진 전 조달청장과 홍종학 전 의원은 이미 이슈 메이커로 부상했다. 김 전 청장은 김광수 전 금융정보분석원(FIU) 원장의 한국거래소 이사장 취임을 가로막은 인물로 알려졌다.

김 전 원장은 장하성 청와대 정책실장의 지원으로 거래소 이사장 취임이 유력했지만 대선공신 그룹이 반발하며 김 전 청장을 대항마로 내세웠다. 거래소가 이미 마감된 이사장 후보 접수를 추가로 연장하는 사상 초유의 일을 벌일 정도의 암투였다.

결국 부산 출신인 정지원 한국증권금융 사장이 어부지리로 그 자리를 얻었다. 김 전 청장은 거래소 접수에 실패했지만 정권의 신임이 깊어 어떤 식으로든 굵직한 자리를 꿰찰 것이라는 게 중론이다.

대표적인 친문 인사인 홍 전 의원도 정권 출범 초부터 금융위원장 후보로 거론되다가 요즘에는 중기벤처부 장관 하마에 오르내리고 있다. 입각에 실패하더라도 대형 공공기관 수장에 앉았다가 차기 내각 구성 때 기회를 노릴 것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아직 수면 위로 떠오르지 않은 교수 5인방도 주목할 만하다. 대책단에 참여했던 고동원 성균관대 교수는 금융감독원 증권담당 부원장 후보에 이름을 올린 상태다.

최윤재 고려대 명예교수와 황성현 인천대 교수는 한때 경제부총리 후보로 언급됐을 정도로 중량감이 있는 인사들이다. 스스로 자리 욕심을 낸다면 경제·금융 관련 공공기관으로 향하는 낙하산을 얻을 수 있을 것이다.

참여정부 시절 재정경제부 관세국장을 역임한 바 있는 장근호 홍익대 교수와 가계부채 문제를 오래 연구해 온 조훈 카이스트 교수도 다크호스로 꼽힌다.

문재인 정부의 집권 후 첫 국정감사가 끝나면 전 정권 때 임명된 공공기관장 대부분이 자의든 타의든 물러나게 될 공산이 크다.

이미 청와대 민정수석실에서 주요 공기업이나 공공기관 수장들과 면담을 진행 중이라는 전언이다. 거리낄 게 있다면 손 대기 전에 먼저 나가라는 시그널이다. 바야흐로 보은 인사가 횡행하는 시즌이 도래했다.

우리는 박근혜 정부 시절 이뤄진 보은 인사의 추악한 민낯을 확인 중이다. 금융 검찰로 불리며 권도(權刀)를 휘둘러온 금감원은 감사원 감사를 통해 비리 종합세트였다는 게 드러났다. 서태종 수석부원장 등 수뇌부는 채용비리 등으로 수사를 받는 처지가 됐다.

강원랜드, 대한석탄공사 등 다수의 공공기관 역시 검찰 수사망에 걸려 있다. 채용 청탁을 받고 점수를 조작해 입사시킨 곳, 기관장 연봉을 인상하려 실적을 조작한 곳, 공금을 쌈지돈처럼 유용한 곳 등 비리 행태도 천차만별이다.

정권이 바뀔 때마다 반복되는 보은 인사 관행을 바꾸기는 쉽지 않다. 대통령제가 유지되는 한 대선 승리에 기여한 인사들에게 한 자리씩 나눠줄 수밖에 없는 게 현실이다. 전문성과 청렴함만 담보된다면 코드 인사도 반대할 생각이 없다.

다만 전 정권과 전전(前前) 정권 모두 최고 권력자가 측근에 둘러싸여 혜안을 잃은 탓에 무너졌고, 지금 그 대가를 톡톡히 치르고 있음을 간과해서는 안 된다. 이제 첫 발을 뗀 문재인 정부의 부처 및 공공기관, 사회 각계에 걸친 인사권 행사가 정권 신뢰도 하락이라는 부메랑으로 돌아오지 않기를 바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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