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87년 10월 19일 월요일. 미국 뉴욕증시가 폭락했다. 이른바 '블랙먼데이'다. 당시 외신들은 '월가가 패닉에 빠졌다'고 대서특필했다. / 사진: 구글 이미지 검색 결과 캡처

"월가가 패닉에 빠졌다."

패닉(panic)은 극심한 공포를 뜻한다. 논리적인 사고를 멈춰 세울 만큼 갑작스럽고 강도가 센 충격이다. 패닉에 빠지면 위기의 해법은 물론 원인조차 되짚어볼 겨를이 없다.

30년 전 세계 금융중심지 월가가 그야말로 패닉에 빠졌다. 뉴욕증시의 미국 대표기업 지수인 다우존스가 하루 만에 508포인트, 무려 23% 추락했다. S&P500지수도 20% 넘게 주저앉았다. 최근 다우존스 기준으로는 낙폭이 5200포인트에 이르는 셈이다. 세계 주요 매체들은 당시 '월가가 패닉에 빠졌다'고 긴급 타전했다. 글로벌 증시 최악의 참사 가운데 하나로 꼽히는 1987년 10월 19일 '블랙먼데이' 얘기다.

블랙먼데이 30주년이 임박했지만 월가의 분위기는 전혀 딴판이라고 한다. 일본 니혼게이자이신문은 '블랙먼데이 30주년'이 월가에서 거의 화제에 오르지 않을 정도라고 전했다. 그도 그럴 게 뉴욕증시 주요 지수는 연일 사상 최고치 경신 행진 중이고 글로벌 증시도 덕분에 한껏 고무돼 있다.

글로벌 증시의 랠리를 떠받치는 낙관론의 근거는 충분하다. 거시경제 지표들이 미국을 비롯한 주요국의 경기회복세가 탄탄해지고 있음을 방증하고 있다. 기업 실적도 투자심리를 떠받친다. 미국 기업들은 한동안 분기 순이익이 감소하는 실적침체로 고전했지만 최근 회복세를 띠고 있다. 금융정보업체 톰슨로이터는 미국 기업들의 3분기 순이익이 지난해 같은 기간에 비해 평균 4%가량 증가할 것으로 예상했다.

늘 그렇지만 비관론도 만만치 않다. 글로벌 증시의 거침 없는 랠리에도 블랙먼데이가 되풀이될 수 있다는 경고가 끊이지 않는다. 낙관론만큼 비관론의 근거도 그럴듯하다.

우선 금융시장을 장악한 신기술을 둘러싼 우려가 크다. 1980년대 말 컴퓨터 보급으로 초창기 프로그램 매매가 확산된 게 증시 폭락의 원인이 됐다는 분석이 많다. 요즘은 고성능 컴퓨터의 자동주문거래 프로그램을 통한 초단타매매를 넘어 인공지능(AI)을 갖춘 로봇거래가 투자자들의 탐욕을 부추긴다. 니혼게이자이신문은 이런 첨단 기법을 운용하는 헤지펀드의 운용자산이 약 9000억달러(약 1018조원)로 지난 10년간 2배 늘었다고 지적했다.

미국 연방준비제도이사회(FRB)의 수장이 교체되는 시점이라는 점도 30년 전의 블랙먼데이를 떠올리게 한다. 30년 전 블랙먼데이는 FRB 의장이 폴 볼커에서 앨런 그린스펀으로 바뀐 직후 일어났다. 그린스펀은 1987년 8월부터 2006년 1월까지 무려 20년 가까이 미국의 경제대통령으로 군림했지만 30년 전 시장에서는 1979년부터 FRB를 이끈 폴 볼커의 부재를 둘러싼 불확실성을 더 우려했다.

재닛 옐런 FRB 의장의 임기는 내년 2월에 끝난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최근 차기 FRB 의장 인선 행보에 속도를 내는 분위기다. 트럼프 대통령은 옐런 의장의 재지명 가능성도 염두에 두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지만 시장에서는 트럼프의 인선 실패와 FRB의 정책 실수 가능성을 경계하고 있다.

1987년은 FRB가 기준금리 인상을 본격화한 통화긴축 시기와도 겹친다. FRB는 1987년 9월 80년대 들어 세 번째 긴축에 나섰고 S&P500지수는 같은 해 8월부터 12월까지 33.5% 추락했다. FRB는 오는 12월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5번째 금리인상을 단행할 전망이다. 전문가들은 FRB가 주도하는 주요국 중앙은행의 통화긴축 경쟁이 금융위기 이후 '싼 돈'에 길들여진 글로벌 증시에 직격탄이 될 수 있다고 경고한다.

블랙먼데이는 세계 금융시장을 패닉에 빠뜨렸다. 충격이 워낙 컸던 탓인지 블랙먼데이의 원인을 둘러싼 논란은 현재진행형이다. 글로벌 증시의 고공행진을 마냥 반길 수 없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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