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 얼굴은 저마다 다르다. 같은 얼굴도 미묘한 감정 변화에 따라 시시각각 달라진다. 본심을 숨긴 '포커페이스'도 있다. 기계가 사람의 얼굴을 읽는다는 건 순간 포착으로 이를 모두 구분하는 걸 의미한다.

애플이 최근 아이폰 10주년 기념작 '아이폰X'를 공개했다. 여기서 가장 돋보이는 게 '페이스ID'라고 하는 얼굴 인식 인증 기능이다. 아이폰이 사용자의 얼굴을 알아보고 홈 화면의 잠금을 풀어준다.

얼굴이 지문이나 홍채 등 다른 생채 인증 데이터와 결정적으로 다른 점은 멀리서도 인식할 수 있다는 점이다. 누구나 스마트폰으로 찍은 상대방의 사진을 얼굴 인증 프로그램에 쓸 수 있다. 한 예로 러시아의 '파인드페이스'(FindFace)라는 앱에 특정인의 사진을 올리면 러시아 대표 SNS(사회관계망서비스)인 브콘탁테에 올라 있는 사진을 검색해 해당 인물을 찾아준다. 정확도가 70%에 이른다고 한다. 얼굴이 곧 '이름표'인 셈이다.

얼굴에는 이름 외에 다른 정보도 많이 들어 있다. 물론 기계도 이를 읽을 수 있다. 얼굴에 드러나는 유전 질환의 특성을 구분해 병을 미리 진단하는가 하면 자폐증 환자의 무표정한 얼굴에서 감정을 읽어내기도 한다. 미국 스탠퍼드대 연구진에 따르면 얼굴 인식 알고리즘은 동성애 남성과 이성애 남성의 사진만으로 각각의 성적 취향을 81%의 정확도로 구분해냈다. 사람 눈의 정확도는 61%로 기계를 못 따라갔다.

얼굴은 지극히 사적인 영역이지만 얼굴 인증 기술은 이를 공적인 것으로 바꿔 버린다. 일부러 얼굴을 가리고 다니지 않는 한 얼굴에 반영된 사적인 정보는 언제든 침해당할 수 있다. 생김새에 대한 편견은 지금도 차별을 부추긴다. 얼굴 인식 기술이 발전하면 차별이 일상화할 수 있다. 동성애를 금지한 나라에서는 국민들의 얼굴 정보를 수집해 소프트웨어로 동성애 혐의자를 걸러낼 수 있다. 폭력적인 성향의 얼굴을 가진 사람이라면 대중시설 출입이 제한될 수 있다. 단지 '그럴 수 있다'는 기계의 판단 때문에 말이다.

기계의 눈이 더 날카로워지면 일상적인 인간관계가 흔들릴 수 있다. 사람들이 원만한 인간관계를 유지할 수 있는 이유 가운데 하나는 상대방의 속마음을 모르기 때문이다. 상대방의 속내를 고스란히 읽을 수 있다면 정상적인 관계가 가능할까.

유럽연합(EU)에서는 이같은 우려로 제3자가 얼굴 이미지를 비롯한 생체인증정보를 사용하려면 본인의 동의가 있어야 한다는 원칙을 마련했다. 얼마든지 만들 수 있는 규제다. 문제는 규제가 기술의 진보 속도를 따라잡기 어렵다는 점이다. 우리의 얼굴 정보를 담을 수 있는 카메라는 이미 도처에 있다.

기술은 우리의 상상을 초월하는 수준에 와 있다. 영국 케임브리지대 연구팀은 위장한 얼굴을 재구성할 수 있는 인공지능(AI) 기술을 입증했다고 한다. 그렇다고 얼굴을 완전히 가리고 다닐 수는 없는 일이다. 외계인을 만났다는 사람들이 증언하는 외계인의 모습이 한결같은 건 더 이상 얼굴을 읽히지 않기 위해 진화한 결과가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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