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정감사는 국회가 정부 예산이 올바르게 쓰이고 있는지 정부부처가 제 역할을 하고 있는지 등 국정 전반에 관한 조사를 행사하는 것을 말한다.

하지만 언제부터인지 국감장은 기업인의 '군기'를 잡는 자리가 됐다. 매년 국감마다 경제계가 증인 채택 리스트에 민감해지는 것도 이 때문이다. 국감장에 불려간 회사의 대표는 아무 내용도 없는 질문 세례와 호통, 비난을 받기 일쑤다. 심지어 고령의 기업인을 불러다 놓고 온종일 앉혀놓기만 하다가 돌려보낸 것도 한 두 번이 아니다.

최근 취재 현장에서 만난 한 기업인은 "요즘 국감 증인채택에 모든 신경을 집중하고 있다"며 "별다른 이슈는 없지만, 해묵은 일을 끄집어내서 증인으로 채택하는 경우가 비일비재하다. '코에 걸면 코걸이 귀에 걸면 귀걸이' 아니냐"고 불만을 토로했다. 또 다른 기업인 역시 "대표가 국감장에 증인으로 불려가 면박을 당하는 모습을 보면 힘이 빠진다"며 "이번 증인신청 명단에 대표의 이름이 있다는 소문이 있어 정신이 없다"고 말했다.  

'국회의 갑질'로 불리는 무더기식 국감 증인채택은 올해도 되풀이될 가능성이 높다. 이미 그 조짐은 나타났다. 최근 한 의원실의 국정감사 증인요청 명단이 유출돼 논란이 됐는데, 여기에 정몽구 현대차 회장, 조양호 한진 회장, 최태원 SK그룹 회장, 신동빈 롯데그룹 회장 등 기업 총수가 대거 포함돼 있었다. 실무진 차원의 문서로 실제 증인 신청한 명단은 아니라는 해명이 나왔지만, 국감의 퇴색된 면을 보여주는 일면이라 할 만하다.

국회의 갑질을 의식한 발언도 있었다. 정세균 국회의장은 지난 6일 "이번 국정감사에서는 증인을 과도하게 채택하는 등 갑질을 해서는 안 된다"고 말했다. 묻지마식 증인채택을 되풀이하지 말자는 경고성 발언인데 국회의 기업인 소환이 줄을 있다는 반증이기도 하다.

국회의 기업인 소환은 갈수록 늘고 있다. 지난 17대 국회 때 평균 52명이었던 기업인 증인은 19대 국회에서 124명, 20대 국회에서는 150명으로 급증했다. 올해 정기국회 국정감사는 오는 10월 12일부터 31일까지 30일간 열린다. 각 상임위는 이달 말까지 증인채택을 마칠 예정이다. 이번 국감부터는 대폭 상향된 국회증감법이 적용돼 역대급 증인 신청이 이뤄질 것이란 예측도 나온다.

국감장에서 기업인은 약자다. 약자에게 권력을 휘두르는 행위는 '갑질'이다. 국민을 대변하는 국회라면 유명세를 얻는 장으로 국감을 활용하는 구태에서 벗어나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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