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흥식 금융감독원장이 11일 취임식에서 '과전불납리(瓜田不納履)'라는 고사성어를 언급했다. 참외밭에서 신발 끈을 매지 말라는 의미다.

최근 하나금융지주가 '최순실 게이트' 관련 불법대출 의혹으로 금감원 조사를 받는 것과 관련해 기자들이 공정성 문제를 제기하자 최 원장이 이에 답하는 과정에서 튀어나왔다. 과거 최 원장이 하나금융 사장을 지낸 인연으로 봐주기 조사가 이뤄질 것이라는 우려를 사전에 차단한 것이다. 그는 "철두철미하게 조사하겠다"고 다시 한번 못박았다.

사실 이같은 우려는 최 원장이 하나금융을 떠난 2014년 상황을 복기하면 기우에 그칠 가능성이 높다. 2012년 하나금융 사장으로 취임한 최 원장은 2014년 조직 내 사장직이 폐지되면서 옷을 벗었다.

당시 김정태 하나금융 회장은 김승유 전 회장 체제의 그림자를 걷어내는 작업에 나섰는데 그 과정에서 최 원장과 윤용로 전 외환은행장 등이 퇴사했다. 이후 서울시립교향악단 대표로 자리를 옮겼다가 문재인 정부 들어 금감원장으로 영전했다. 금융권에서는 최 원장과 김정태 회장이 소원한 관계라는 얘기가 돈다.

최 원장이 금감원장 자리에 앉는 데 장하성 청와대 정책실장의 입김이 작용했다는 게 중론이다. 두 사람은 경기고 동문으로 최 원장이 한 기수 위다. 여기에 김승유 전 회장까지 세 명이 절친한 관계로 알려져 있다.

하나금융은 국정농단에 연루됐다는 의심과 정권 실세를 등에 업은 금융감독당국 수장의 삐딱한 시선을 동시에 감내해야 할 처지가 됐다.

최 원장 인선에 대해 문재인 정부의 금융권 장악이 본격화했다는 분석이 나온다. 현 정부 경제·금융 분야의 컨트롤타워인 장하성 정책실장은 최종구 금융위원장에 이어 금감원장까지 자기 사람을 심는 데 성공했다.

하마평이 무성했던 이동걸 산업은행 회장과 은성수 수출입은행장은 결국 그 자리를 꿰찼다. 이 회장은 김대중 정부 시절 청와대 행정관을 지냈고 참여정부 때는 금융위 부위원장을 역임했다. 은 행장도 참여정부 당시 청와대에서 근무했다.

금융당국과 주요 금융공기업 수장으로 현 정부 실세와 이래저래 연을 쌓은 인물들이 대거 낙점되는 낙하산 작전이 시작된 것이다.

이제 시선은 민간 영역으로 향한다. 71세 고령의 김지완 전 하나금융 부회장이 BNK금융 회장으로 추천됐다. 고(故) 노무현 대통령과 부산상고 동문이며 2012년 대선 때 문재인 캠프에서 경제고문 역할을 자임한 바 있다.

국내 최대 금융그룹 중 한 곳인 KB금융 회장 인선 과정에도 묘한 분위기가 감지된다. 지난 8일 윤종규 회장을 포함해 7명의 후보군을 추렸는데 베일에 싸인 3명의 외부 인사가 포함됐다. 사측은 그 면면을 공개하지 않았다.

내부에서 윤 회장의 대항마가 눈에 띄지 않는 가운데 현 정권과 학연·지연 등으로 묶인 전직 KB금융 인사들이 외부에서 도전장을 던졌다는 전언이다. 만약 '외부자'가 윤 회장을 누르는 결과가 나온다면 낙하산 논란이 불거질 가능성이 있다.

임기가 1년 반가량 남은 이광구 우리은행장도 뜬금없이 교체설에 시달리고 있다. 박근혜 전 대통령의 동문인 서강대 출신 금융인 모임 '서금회' 출신이라는 게 그 배경이다. 이 행장이 자리를 지키고 있는 한 우리은행의 금융지주사 전환은 불가할 것이라는 근거가 불투명한 풍문까지 떠돌고 있다.

이명박 정부 시절 김승유 전 회장과 어윤대 전 KB금융 회장 등은 'MB맨'이라는 타이틀을 달고 금융계를 풍미했다. 박근혜 정부 시절 암약한 서금회도 배경이 확실했다.

문재인 정부 초기. 참여정부 인맥과 문 대통령과의 인연, 정권 실세와의 친분에 더해 적폐청산 대상이라는 변수까지 금융권 인사에 작용하는 모습이다. 오히려 더 다중적이고 복잡해졌다.

정권이 바뀔 때마다 금융권도 '복마전' 인사에 휘말렸던 적폐가 촛불 민심으로 탄생한 문재인 정부에서도 이어질 것인가. 변화의 조짐을 엿볼 수 있기를 희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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