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 / 사진제공: 연합뉴스

박근혜 전 대통령과 최순실씨에게 총 433억원 규모의 뇌물을 건넨 혐의로 기소된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의 1심 재판에서 징역 5년이 선고됐다.

국내 최대 기업인 삼성그룹 총수가 첫 실형을 받은 사례다. 전 세계 이목이 집중돼 '세기의 재판'으로 불리기도 했다.

당초 이 부회장을 기소한 박영수 특별검사팀이 징역 12년을 구형했던 만큼 형량이 너무 낮은 것 아니냐는 비판과 함께 대통령의 강요에 못 이겨 돈을 갖다 바친 기업인에게 실형을 선고한 것은 과하다는 지적이 공존한다.

징역 5년은 어떻게 산출된 것일까. 결론부터 말하면 재판부가 선고할 수 있는 형량 중 하한선이라고 보면 된다.

이 부회장에게 적용된 혐의는 총 5가지다. 핵심인 뇌물공여의 경우 징역 1개월 이상 5년 이하다. 다른 혐의가 뇌물공여로부터 파생된 것을 감안하면 양형이 높지 않다.

특정경제범죄가중처벌법 위반 혐의로는 횡령과 재산국외도피가 적용됐다. 횡령액 50억원 이상이면 징역 5년 이상 30년 이하다. 재판부가 판단한 이 부회장의 횡령액은 80억원이다.

가장 논란이 되는 것이 재산국외도피죄다. 도피액이 50억원 이상이면 10년 이상 징역 또는 무기징역이다. 특검은 삼성이 최씨 딸 정유라씨의 승마지원을 위해 지급한 78억원을 도피액으로 산정하고 징역 12년을 구형했다. 승마지원이 이뤄진 곳이 독일인 만큼 해당 금액을 불법적인 수단을 동원해 빼돌렸다는 논리다.

도피액이 그대로 인정됐으면 중형이 불가피했지만 재판부는 삼성이 최씨 소유의 코어스포츠에 지급한 282만 유로(약 37억원)만 도피액으로 봤다. 삼성이 독일 하나은행 지점에 개설한 계좌로 보낸 40억원 가량은 제외했다.

삼성은 송금 목적을 승마지원이라고 적었는데 이 돈은 독일에서 정씨가 탄 말 구입비로 쓰였다. 이제는 승마 문외한에게도 익숙한 이름이 된 '살시도', '비타나', '라우싱' 등의 마필을 구매했다.

재판부는 삼성이 자신의 돈을 자신 명의의 해외 계좌로 보낸 뒤 어떻게 사용했는지에 대해 위법성을 가릴 수는 없다고 판결했다.

이 부회장에게 적용된 재산국외도피 혐의는 도피액이 50억원 미만이라 징역 5년 이상 30년 이하다.

나머지 범죄수익은닉과 국회 위증 등은 형량이 낮아 거론할 필요가 없을 듯하다. 횡령과 재산국외도피 혐의의 양형 기준에서 가장 낮은 5년을 선고한 것이다.

여기서부터 재판부의 법리적 혹은 보는 관점에 따라 정치적일 수 있는 판단이 개입된다. 우선 경합범 가중 처벌 규정이다. 경합범은 여러 혐의가 동시에 적용된 피고인을 의미하는데 이 부회장은 앞서 언급한 것처럼 5가지 혐의를 받고 있다.

경합범에 대해서는 가장 무거운 죄의 형량에 2분의 1을 가중할 수 있다. 횡령과 재산국외도피죄의 양형 하한이 징역 5년이니 가중하면 7년 정도 선고할 수 있다는 얘기다.

다음으로는 작량감경이다. 정상을 참작할 만한 사유가 있을 때 법관이 형을 감경할 수 있는 권한인데 최대 절반까지 줄일 수 있다.

이 부회장과 같이 재판을 받은 황성수 전 삼성전자 전무는 징역 2년 6개월, 집행유예 4년을 선고받았다. 최대한의 작량감경을 적용한 결과다. 징역 4년이 선고된 최지성 전 삼성전자 미래전략실장과 장충기 미래전략실 차장도 일부 감경된 사례다.

이 부회장에 대해서는 경합범 가중도 작량감경도 하지 않았다. 재판장인 김진동 부장판사가 25일 열린 선고공판에서 그 이유를 간접적으로 설명했다. 김 부장은 "이 사건의 본질은 정치권력과 자본권력의 부도덕한 밀착"이라며 "정경유착이 과거사가 아닌 현실에서 일어났다는 상실감을 국민들께 안겼다"고 질타했다.

하지만 "박 전 대통령과 최씨가 적극적으로 뇌물을 요구했고 이 부회장 등은 소극적으로 응했다"고 결론지었다.

이 부회장이 자신의 경영권 승계에 도움이 되지 않을까 하는 암묵적인 기대(묵시적 청탁)를 갖고 돈을 건넸지만, 기업인이 대통령의 요구를 뿌리치기는 현실적으로 어렵다는 점도 감안했다는 것이다.

1심 재판부는 이같은 사정을 보고 처벌 수위를 더 높이거나 줄이지 않고 법에 정해진대로 징역 5년을 선고했다. 이 부회장이 향후 이어질 2심과 3심에서 감형 판결을 받아내기 어렵다고 보이는 이유다.

그럼에도 이 부회장 측 수십명의 변호사는 감형을 목표로 항소심에 임할 것이다. 가능성은 두 가지다. 1심 재판부가 유죄로 판결한 혐의 중 일부를 무죄로 바꾸면 형량이 줄어들 수 있다. 문제는 5가지 혐의가 피라미드를 이루고 있고 그 정점에 뇌물공여 혐의가 있다는 것이다.

이 부회장이 경영권 승계 과정에서 지원을 받기 위해 박 전 대통령과 최씨에게 뇌물을 건넸다는 핵심 얼개를 깨지 못하면 다른 혐의에서 무죄를 이끌어내기가 사실상 불가능하다.

1심 재판부가 포기한 작량감경을 받아내는 것도 한 방법이 될 수 있다. 한국을 대표하는 기업인 삼성이 총수 부재로 정상적인 경영이 어려워져 국가 경제에도 악영향을 미칠 것이라는 논리를 펼칠 것으로 전망된다.

이 논리가 먹히려면 재판부의 판단보다 청와대의 판단이 중요할 것 같다. 경제를 위해 이 부회장에 대한 처벌 수위를 좀 낮출 필요가 있다는 사회적 컨센서스가 형성돼야 재판부도 결단을 내릴 수 있기 때문이다. 문재인 대통령이 과거에 관행처럼 되풀이돼 온 이 논리를 받아들일 지는 미지수다.

이제 '세기의 재판'은 2라운드로 접어들었다. 이 부회장 측 변호인과 특검 모두 이번주 내로 항소장을 제출할 예정이다. 벼랑 끝에 서게 된 이 부회장이 한 발 뒤로 물러설 수 있는 운신의 폭을 확보할 지 지켜볼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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