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7월 ‘요즘 세상에도 이런 일이 가능할까’ 할 만한 사건이 전해졌다. 전북 부안의 한 여고에서 50대 체육교사가 제자들을 장기간 지속적으로 성추행 해왔다는 내용이었다. 제자들에게 그런 몹쓸 짓을 한 것도 놀랍지만, 더 놀라운 것은 학교 측이 그동안 아무것도 하지 않았다는 것이었다.

JTBC ‘이규연의 스포트라이트’에 따르면 이 문제의 교사는 성추행뿐만 아니라 제자들과 학부모들로부터 정기적으로 금품을 제공받았다고 한다. 또 자신의 ‘애정’을 받는 제자들과 눈 밖에 난 제자들을 구별했고, 이를 토대로 대학 수시모집에 결정적인 역할을 하는 생활기록부도 제 입맛대로 썼다고 한다. 이 때문에 제자들과 학부모들은 항의도 하지 못했다고 한다.

그런데 하루 이틀도 아니고 이 ‘못된 교사’가 마치 ‘제왕’처럼 수년간 군림하며 이런 짓을 자행했는데도 어떻게 학교 측은 몰랐을까. 알고도 ‘쉬쉬’했다는 의혹이 나오는 건 당연하다. 어린 제자들이 몸과 마음에 상처를 받고 있는데도 그 학교의 교사들은 도대체 무엇을 했다는 말인가. 이들은 교사라는 직업의 존재 이유, 혹은 소명에 대해 알고 있는가. 아니, 들어나 보았는가. 고민은 해 보았는가.

전북교육청은 학교에 대해 감사를 벌였고, ‘학급 수 감축’이란 징계를 내렸다. 정작 문제는 교사 개인에 대한 징계는 교육청이 직접 할 수 없고, 권고만 할 수 있다는 데 있다. 이 여고는 사립학교여서 관련법인 사립학교법(사학법)에 따라 재단 이사회에서만 징계가 가능하다.

만일 그 파렴치한 교사에 대해 재단 측이 징계를 내리지 않거나 경징계를 내리면 그만이다. 그럴 일은 있어서는 아니 되겠지만 현재 구속돼 있는 그 교사가 석방돼 다시 교단에 서도 그만이다. 법적으로는 어린 제자들을 또 그의 손에 맡긴다 해도 아무 조치도 할 수 없는 것이다.

사학법 개정은 오래전부터 우리 사회의 화두였다. 지난 2005년 참여정부는 사립학교의 경영 투명성을 담보하기 위해 사학법 개정에 나섰다. 당시 노무현 대통령은 “사학법 개정을 위해 대통령으로서 할 수 있는 모든 것을 하고 싶다”라고 말할 정도로 의지가 강했다. 그만큼 사학의 부정부패와 비민주적 운영이 심각한 상황이었다.

그러나 당시 한나라당의 의원들과 그 당의 박근혜 대표, 이명박 당시 서울시장 등은 ‘촛불시위’를 하며 거센 반대에 나섰다. 말하자면 이들은 사학의 이익을 위해 ‘길거리 투쟁’도 불사한 것이다. 이들은 사학의 투사들이었다. 그도 그럴 것이 이들 대부분이 사학법인의 이사장이거나 사학의 친인척이거나 사학으로부터 정치후원금을 받아 왔던 자들이었기 때문이다. 자신들의 ‘밥그릇’을 건드리려는 어떠한 시도도 용납할 수 없었던 것이다.

이들은 “사학법이 통과되면 전교조에 우리 아이들을 맡기게 되는 것”이라는 등 “노무현 정부와 열린우리당의 목적은 우리 아이들에게 그들이 원하는 ‘반미친북 이념을 주입시키려는 것”이라는 등의 해괴한 ’이념공세‘를 펼쳤다. 개정 법안의 본래 취지를 왜곡, 선동하는 전략을 택한 것이다. 결국 당시 ’여소야대‘ 국면에서 사학법 개정은 이들의 뜻대로 무산됐다.

참여정부 시절 잠시 주춤했던 사학 비리는 이명박 정권이 들어서면서 늘어났는데 특히 2010년에 유난히 많이 발생했다. 학교 돈을 해외로 빼돌리거나, 심지어 장애인 학생에게 가야할 돈이 이사장 사택을 짓는 일에 쓰이거나, 입학 장사로 비자금을 조성하거나, 업체와 짜고 학생들 급식비로 해외여행을 다녀오거나 하는 일들이 비일비재했다.

그런데 더 문제인 것은 이들 사립학교에 나랏돈, 즉 국민의 세금이 수십, 수백억씩 투입된다는 것이다. 각 시도교육청이 보조하는 학교운영비가 그것이다. 사학법인들이 학교 운영을 위해 의무적으로 내야 할 ’법정부담금‘을 내지 않다보니 생긴 일이다. 그러니까 돈은 국민 세금으로 쓰고 학교 운영은 사학들 마음대로 하는 것이다. 전국 사학들 가운데 88%가 법정부담금을 아예 내지 않거나, 20% 미만으로 내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결과적으로 사학법 개정 무산은 사학비리 방조와 무자격 교사 양산, 국민세금 투입이라는 각종 부작용을 양산해 왔다. 여기서 반드시 얻어야 할 교훈이 있다면, 국민 이익이 아닌 제 이익을 위해 왜곡, 선동 투쟁을 벌이는 정치인들이 있다는 사실을 잊지 말아야 한다는 것이다. 이들을 흔히 우리 사회의 기득권 세력이라 부르는데, 사회 개혁이나 정의 실현이 시도될 때마다 이들의 저항은 늘 만만치 않았다. 그리고 대부분의 경우 이들이 승리해 왔다. 왜냐하면 이를 제대로 감시하는 시민들이 없었기 때문이다.

문재인 정부가 부자 증세, 탈 원전, 자주 국방, 소득성장 등의 국가정책 기조를 거론할 때마다 어떻게든 해괴한 명분을 들고 나와 ’딴지‘를 거는 정치언론세력들이 있다. 이들의 저항은 예나 지금이나 똑같다. 다만 이제는 과거와 다르다. 과거의 교훈을 밑거름 삼아 이들을 감시하고, 비판하는 시민들이 있기 때문이다. 사리사욕만 채우려는 ’못된 정치인‘들은 이제 버리자. 국익을 위해 헌신하는 정치인들만 지지하고 응원해도 시간이 모자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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