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 주요 외신들은 최근 글로벌 금융위기 10년을 되돌아보는 기사를 연일 쏟아내고 있다. 우리 언론이 별로 반응하지 않는 건 시간 셈법이 다르기 때문이다. 우리는 보통 미국 투자은행 리먼브라더스가 파산한 2008년 9월 15일을 금융위기의 시작점으로 본다. 

얼마 전까지 외국도 다르지 않았다. 리먼사태를 글로벌 금융위기의 원점으로 생각했다. 미국 월가를 호령하던 거대 은행의 붕괴쯤 돼야 금융위기의 명분이 될 만했다.

외신들이 최근 금융위기 10년을 돌아보는 건 2007년 8월 9일을 기준점으로 보기 때문이다. 이날은 프랑스 투자은행 BNP파리바가 미국 서브프라임 모기지(비우량 주택담보대출) 채권에 투자한 펀드 3개의 환매를 중단한 날이다. 미국 부동산시장 호황에 대한 과신에서 비롯된 모기지 부실 사태가 대서양을 넘어 유럽까지 확산됐음을 방증하는 사건이었다.

당시 대충 흘려들은 뉴스가 글로벌 금융위기의 원점으로 부상한 건 위기에서 교훈을 얻으려는 노력에서 비롯됐다고 볼 수 있다. 금융위기의 원인을 되짚다 보니 BNP파리바의 환매 중단 사태가 결정적인 사건이었음을 깨달은 것이다. 전문가들은 그러나 그 이전에도 위기의 전조가 여럿 있었다고 지적한다.

문제는 모두가 위험 신호를 무시했다는 점이다. 파이낸셜타임스(FT)는 2007년 4월에 이미 미국 서브프라임 모기지가 전적으로 상환 불능 상태였음에도 불구하고 신용시장에서는 가격을 매겼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투자자들은 2007년 여름에야 디폴트(채무불이행) 위험이 절정에 달했음을 깨달았다고 떠올렸다. 물론 신용시장은 이내 붕괴했다.

외신들이 돌아보는 금융위기 10년 기사는 대개 경고 일색이다. 뼈저린 고생을 하고도 달라진 게 없다는 것이다. 대표적인 방증으로 주식을 비롯한 위험자산시장의 과열을 들 수 있다. 글로벌 증시는 리먼사태 이듬해인 2009년 3월 저점에서 줄곧 반등한 미국 증시를 따라 강세 행진을 해왔다.

블룸버그에 따르면 2007년 8월 9일 이후 10년간 가장 높은 수익률을 기록한 자산은 '정크본드'였다. 유럽 정크본드의 지난 10년 수익률이 100%로 주요 자산 가운데 가장 높았다. 투기(투자부적격) 등급 기업이 발행하는 정크본드는 서브프라임 모기지 채권과 다를 바 없다. 

상품(원자재), 유로화, 유럽 주식, 신흥시장 주식 등 일부 자산을 뺀 다른 주요 자산도 지난 10년간 투자자들에게 상당한 수익을 안겨줬다. 전문가들은 금융위기를 촉발하는 데 일조한 자산까지 큰 수익을 낸 건 대단한 아이러니라고 지적한다. 수익률이 높다는 건 자산 가격이 그만큼 뛰었다는 뜻이자 수요가 뒷받침됐다는 의미다.

우리가 금융위기에서 교훈을 얻지 못한 건 진정한 단죄가 없어서였는지 모른다. 

FT에 따르면 미국 대형은행 본거지이지 금융위기 진원지인 월가에서 금융위기와 관련해 기소된 이는 지금까지 단 1명도 없다. 미국 당국은 증거 부족 등을 이유로 월가 대형은행에 금융위기를 초래한 대가로 1500억달러(약 171조원)의 벌금과 피해보상금을 물렸을 뿐이다. 면죄부를 판 거다.

대신 지역 중소은행, 모기지업체, 부동산중개인이 속한 메인스트리트에서는 324명을 기소했다. 월가에서 시작된 금융위기 도화선의 끄트머리에 있던 이들에게만 죄를 물은 셈이다.

세계 경제와 금융시장이 금융위기로 처참하게 무너진 지 10년이 지났는데 바뀐 게 없다는 건 섬뜩한 일이다. 우리의 미래를 아무도 장담하지 못하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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