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여기 평소 자신이 운영하는 공장 노동자들의 임금을 수시로 떼먹고, 이따금 탈세도 하지만 일요일마다 교회를 나가 꼬박꼬박 십일조를 하는 60대 사장이 있다고 하자. 그가 다니는 신도 4000여명의 대형 교회는 커다란 십자가가 달린 초현대식 건물이다. 

이 교회에는 이 사회의 이른바 유력 인사들과 그 가족들이 주기적으로 안부를 나누고, 친목을 다진다. 아버지들은 아버지들끼리, 어머니들은 어머니들끼리, 아이들은 아이들끼리 교류한다. 나라의 중요한 선거가 다가오면 그 교회에서 존경받는 목사라는 자가 특정 후보를 위해 신도들 앞에서 기도하기도 한다. 

또 어떤 시기에는 신도들이 대절버스를 타고 동원돼 길거리 시위에 나서기도 한다. 앞서 말한 60대 사장은 목사를 끔찍이 모시며 '교회 인맥'을 중요시한다. 그 인맥만 잘 유지하면 자신과 자신의 가족들이 사회적 규범을 어겨도 다칠 일은 별로 없다.

#2)여기에 법 없이도 사는, 이따금 소액의 기부도 하는, 평소 타인에게 배려와 양보의 미덕을 베푸는, 가족들을 지극정성으로 사랑하는 40대 회사원이자 무신론자가 있다고 하자. 그는 이웃들로부터 친절한 사람으로 소문나 있고, 아내에게는 자상한 남편이며, 자식들에게는 세상에 둘도 없는 좋은 아버지다. 

비록 가난하지만, 딱히 인맥이라 부를 인간관계도 없지만 그는 정의와 양심이 무엇인지 잘 알고 있다. 그래서 이따금 입바른 소리를 내다 손해를 보기도 하지만 결코 후회하지 않는 용기도 있다. 무엇보다 그는 자신과 유사한 부류의 사람들을 분별하는 눈을 갖고 있다.

어떠한가. 저 두 사람 중 누구의 삶이 더 우리 사회를 행복하게 만드는가. 아니, 두 사람 중 누가 더 인간적인가. 물론 모든 신앙인들이 60대 사장과 같지 않고, 모든 무신론자들이 40대 회사원과 같지 않다. 그러나 신앙이 있다고 해서 그것이 곧 '선(善)'이 아니며 신앙이 없다 해서 그것이 곧 '악(惡)'이 아님은 분명하다.

지난 2월 프란치스코 교황은 자신의 처소에서 집전한 미사에서 "위선적인 신자보다 무신론자가 낫다"고 말했다. 교황은 "우리는 카톨릭 신자가 무신론자보다 더 훌륭할 것이라는 말을 너무나 자주 듣고 있지만 실상은 그렇지 않다"고 말과 행동이 다른 신자들을 비판했다. 그러면서 그는 '직원들 월급을 제대로 주지 않고 착취하며 더러운 사업을 하고, 돈세탁을 하는 사람들'을 그 대상으로 꼽았다. 

이중적인 삶을 사는 이들에게 신은 외면으로 응답할 것이라고 경고하기도 했다. 아울러 무신론자가 양심을 따르고 살면 신은 자비를 베풀 것이라 했다. 오죽했으면 교황이 이런 말을 했을까. 신앙심이 면죄부를 준 것 마냥 '나쁜 짓을 해도 기도하면 용서받을 것'처럼 행동하거나, 또 '십일조를 내면 된다'며 이를 선동하는 무리들을 우리는 자주 보게 된다.

신앙의 영역은 기본적으로 개인의 영역이다. 신을 믿든 말든 개인의 자유의지의 문제인 것이다. 그러나 지금까지 우리 사회에는 이 영역이 개인을 넘어 '집단적'인 형태로 퇴보해 왔다. 신도들의 숫자가 일정 수준을 넘으면 그것이 성직자의 권력이 되고, 이 권력을 남용하며 악행을 일삼는 일부 성직자들과 신도들을 우리는 많이 목격했다. 

부패한 정치권력과 협잡을 하거나 '친일파식 반공제일주의'에 매몰돼 이 시대 양심들을 매도하거나 신도들의 헌금을 빼돌려 호의호식하거나 교회를 자식에게 물려주려다 내분에 휩싸이는 교회 권력의 사례들은 드문 일이 아니다. 그러니 "종교가 인류에게 준 은혜보다 폐해가 훨씬 크다"는 영국 학자 리처드 도킨스의 말에 고개를 끄덕일 수밖에 없다. 어쩌다 우리 시대 성직자들은 대중들로부터 존경받지 못하는 지경에 이르게 되었는가.

엊그제 개신교 신자인 김진표 더불어민주당 의원을 비롯한 여야 의원들 28명이 종교인 과세를 또다시 유예하는 법안을 발의했다고 한다. 예정대로라면 내년 1월부터 종교인들이 국민들처럼 똑같이 세금을 내게 돼 있었는데 그걸 또 2년 뒤로 미루자는 것이다. 

정부와 세무당국은 종교인 과세에 대한 입장을 분명히 한 바 있다. 지난 6월 김동연 경제부총리는 인사청문회에서 "세정 당국은 내년 시행을 준비하고 있다"고 답했고, 한승희 국세청장도 "종교인 과세는 그간 의견 수렴과 국회 논의를 거쳐 2015년 정기국회에서 소득세법 개정을 통해 결정된 사항으로 알고 있다"며 시행에 문제가 없음을 밝혔다. 통과된 법대로, 그냥 시행만 하면 되는 것이었다.

그런데 김 의원 등은 법안 발의를 하며 "시행을 2년 유예해 과세당국과 종교계 간에 충분한 협의를 걸쳐 철저한 사전준비를 마치고 충분히 홍보해, 처음 시행되는 종교인 과세법이 연착륙되도록 하려는 것"이라고 '제안 이유'를 설명했다. 옹색하기 그지없는 변명에 불과하다. 정부가 최소한 5년 전부터 법을 준비해 만들고, 2년 전에도 한 차례 유예했는데 무슨 사전준비가 또 필요하다는 말인가.

언론 보도에 따르면 이들 의원 28명 가운데 21명이 개신교 신자들로 알려졌다. 이들은 도대체 무엇을 원하고 있는가. 납세는 헌법이 정한 신성한 의무다. 모든 국민은 세금을 낸다. 나도 내고, 너도 낸다, 감히 누가 법 위에 존재하려 하는가. 항간에서는 '종교인들의 표'를 의식한 발의 행위라고 지적하지만 이를 믿고 싶지는 않다.

얼핏 생각해 봐도 존경받는 성직자와 정치인이 되는 일은 어렵지 않다. 개인의 탐욕을 버리고, 국민의 뜻을 따르면 된다. 성경 구절대로 이웃을 사랑하고, 백성을 섬겨라. 이보다 쉬운 일이 어디 있는가. 하늘이 정한 성직자와 정치인의 덕목이 바로 이런 것이 아니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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