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무일 검찰총장 / 사진제공: 연합뉴스

"자신에게는 가을 서릿발처럼 엄격하되, 타인에게는 봄바람처럼 따뜻하게 대하라(임기추상 대인춘풍·臨己秋霜 對人春風)."

박정희 전 대통령의 좌우명으로 널리 회자되는 격언이다. 최고 권력자가 꼭 갖춰야 할 덕목이다.

남에겐 불필요할 정도로 엄격하고 자신에게는 한없이 관대한 권력만큼 무서운 게 없기 때문이다. 우리는 그 무서움을 박 전 대통령의 딸인 박근혜 전 대통령을 통해 목도했다.

한국 사회에서 무소불위의 권력을 휘둘러 온 검찰 수뇌부도 스스로 손에 쥔 힘의 크기를 의식한 듯 이 격언을 즐겨 인용했다.

지난 25일 공식 취임한 문무일 신임 검찰총장 역시 자신의 좌우명이라고 소개했다. 범죄를 수사하고 범인을 재판에 넘기는 권한을 가진 검사라면 꼭 마음에 새겨야 한다고 부연했다.

문 총장이 '임기추상'한지는 모르겠다. 하지만 취임 전후 그의 언행을 살피면 '대인춘풍'과 더불어 '대검춘풍(對檢春風)'하다는 인상을 지우기 어렵다.

검찰개혁이라는 국민적 요구가 비등한 상황과 달리 조직에 지나치게 관대한 것 아니냐는 의구심이 든다는 의미다. 문재인 정부가 추진하는 검찰개혁의 핵심 3요소는 고위공직자 비리수사처 설치, 검·경 수사권 조정, 독점적 영장청구권 개선이다.

한국 검찰은 경찰 수사를 지휘하고, 스스로도 수사하고, 법원에 사법적 판단을 요구하는 기소권까지 보유하고 있다. 이 과정에서 압수·수색·체포 등 강제력을 동원할 수 있는데 영장 청구권은 검사만 갖고 있다. 헌법에 명시된 내용이다.

이 엄청난 권한을 분산하는 게 검찰개혁안의 골자다. 하지만 문 총장은 모든 사안에 대해 유보적 입장으로 일관하고 있다. 공수처 설치의 경우 "기본권 제한이 가능한 공수처가 입법·행정·사법에 속하지 않는 것은 위헌 소지가 있으며 (기존 검찰 조직의) 옥상옥이 될 수도 있다"고 밝혔다.

수사권 조정에 대해서는 "기관 간의 권한 배분 문제로 봐서는 안 되고 범죄로부터 국민을 지켜낼 수 있는 시스템을 개선하는 방향으로 생각해야 한다"고 애매한 태도를 취했다. "수사는 검사가 주재하는 것이 형사소송법상 원칙"이라는 소신도 곁들였다.

영장 청구권을 경찰에 개방해야 한다는 주장에는 "헌법상 검사 영장청구 조항은 국민 인권침해 방지를 위한 안전장치"라며 "이 조항이 삭제된다면 국민 기본권 보장이 소홀해질 수 있다"고 반대 입장을 분명히 했다.

그러면서 취임사에서는 검찰의 정치적 중립성과 독립성을 지키는 방패가 되겠다고 강조했다. 개혁 의지가 약한 것 아니냐는 비판이 제기될 수 있는 상황이다.

그렇다고 조직 감싸기에만 열을 올린다고 섣불리 판단하기 어려운 행보도 병행하고 있다. 문 총장은 취임 후 대검찰청 범죄정보기획관실 업무 중단을 지시했다. 범정기획관은 일반인에게 다소 생소한 조직일 수 있는데 법조계에서는 '검찰총장 친위대'로 불린다.

검찰총장의 권력은 3가지 방식으로 실현 가능하다. 정치권과 재계 등 '거악(巨惡)'을 상대로 한 수사권, 각계의 범죄정보 및 첩보 수집력 그리고 인사권이다.

중수부 폐지로 대검은 수사권을 상실했다. 현 시점에서 검찰 내 최고 수사력을 갖춘 곳은 대검이 아닌 서울중앙지검이다. 대검이 수집한 정보를 바탕으로 일선 검찰청에 수사 지시를 내리는 관행도 범정기획관 폐쇄로 사라지게 됐다.

수사권과 정보력이 없는 검찰총장은 당연히 인사권도 제약을 받는다. 문 총장 입장에서는 권위를 지킬 수 있는 소중한 카드를 스스로 포기한 셈이다. 결단이라고 표현할 만하다.

지난 28일에는 직접 경찰청을 방문해 이철성 경찰청장과 상견례를 했다. 검찰총장이 경찰청을 찾은 첫 사례다. 검찰과 경찰 간에 암묵적인 상하관계가 형성돼 있는 점을 감안하면 파격적인 탈권위 행보다.

국민들이 체감할 수 있는 정책 변화도 추진되고 있다. 형사부를 확대하고 검사들을 추가 배치키로 한 것이 대표적이다. 유력 정치인과 재벌 총수 등을 수사하는 특수부와 대공 수사 및 선거 사범 수사를 하는 공안부 등은 검찰 내 주류로 통하지만 국민들과 동떨어진 조직이다.

반면 사회 전반에 걸쳐 크고 작은 사건을 처리하는 형사부는 국민과의 접점이 넓다. 형사부 규모가 커지고 인력이 늘어 검사들의 업무 강도가 합리적인 수준으로 조정된다면 국민들도 더 세밀하고 공정한 수사를 받게 될 가능성이 높아진다.

문 총장의 이중적인 모습에 정부는 물론 언론도 헷갈리는 것 같다. 취임 일주일째인 검찰총장을 평가할 생각은 없다. 개혁에 저항한 반동(反動)으로 평가받을 지, 변화를 선도한 아이콘으로 기억될 지도 예단하기 어렵다.

다만 오는 2019년 7월 문 총장이 2년 임기를 마치고 퇴임할 때 국민의 박수를 받으며 떠날 수 있기를 진심으로 기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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