플러싱 한인타운 거리. 역에서 한 블록 옆에 있는 이곳도 점차 중국화되고 있다.

◇ 중국판이 되어가는 뉴욕 플러싱 번화가

요즘 뉴욕에 중국인들이 눈에 띄게 많아졌다. 맨해튼 한복판 지하철 구내에서 중국인들이 그렇게 많이 보였던 적이 없었다. 10년 전에 비해 훨씬 많아진 건 틀림없다.

이미 로어 맨해튼 차이나타운은 포화상태다. 이웃 지역인 노리타, 이스트빌리지, 리틀이탈리아 거리에 중국 간판들이 걸리기 시작했다. 물감이 번지듯 주변지역이 중국화되어 가고 있다.

특히 이스트빌리지는 저소득층이 사는 지역으로 맨해튼에서 그간 개발이 안 된 곳 중에 하나다. 이 곳은 차이나타운과 그리 멀지 않다. 지금 이곳은 차이나타운 연장선으로 점차 중국화되어 가고 있다.

맨해튼 부동산가격이 만만치 않자 이제는 이스트 리버 건너 브루클린과 퀸즈 쪽으로도 이주민들이 꽤 들어오고 있다. 브루클린이 흑인이 많이 산다고 하는 말은 옛말이 되어가는 추이다. 강 건너 바로 가까운 브루클린 남부 일부 지역은 지역 주민중 중국인이 최대 인구로 부상하는 곳도 있다.

우리 교포들이 많이 살고 있는 퀸즈 쪽에도 대거 입주했다. 실례로 한인들이 뉴욕에서 가장 많이 살고 있는 플러싱에 가보면 금세 알 수 있다. 플러싱 메인스트리트 사거리 전철역이자 번화가는 온통 중국 간판이다. 중국의 어느 작은 도시에 와 있는 느낌이다. 이곳에 있으면 미국 뉴욕이라는 분위기를 전혀 느끼지 못한다. '미국도시 속의 또 다른 나라의 도시', 별천지다.

이 곳은 20~30여년 전엔 대부분 한인들이 주 상권을 거머쥐고 있었다. 얼마 전부터는 중국인들이 한인상가를 하나씩 매입하기 시작, 대형 마트까지 매입해 버렸다. 차이나타운화의 결정판이다. 수십 개의 한인 상가가 들어있던 중심지 대형 몰이었다. 한인들은 중국인의 높은 가격 매도요구에 바로 계약을 체결했다. 입주한 상가들은 갑작스러운 계약으로 상가를 준비없이 비워줘야 했다. 다른 곳 상가를 찾아볼 겨를도 없이 나와버렸다.

그렇게 한인들은 플러싱 번화가에서 한두 블록씩 뒤로 처지면서 한적한 곳으로 이동해 나가고 있다. 중국인들의 현금 능력과 단합력에 한인들의 세력은 힘을 쓰지 못하는 형국이다. 이제 뉴욕 7번 전철 종점 플러싱은 완전 중국판이다.

물론 100년 전엔 유대인들이 이곳 번화가를 차지했고, 독일인 이탈리아인들이 그다음 바통을 이었다. 50여년 전엔 한인이 바통을 이어받았고, 이제 중국인에게 주었다 치면 이해 못 할 것도 없다. 헌데 바통을 주고 다음 다른 곳으로 간 곳이 한적한 아웃사이드인 점이 못내 아쉽다. 부동산 투자적 관점에서 보면 그리 훌륭한 판단이 아니다. 부동산의 기본 요소는 로케이션(입지)이다.

이스트빌리지 거리. 이미 기존 차이나타운 옆 동네인 이 곳도 이미 중국화 물결이 거대하게 들어오고 있는 모습이다.

◇ 중심에서 한 번 멀어지면 다시 돌아오지 못하는 법

맨해튼이 그렇게 비싸도 가격이 내려가지 않고 고공행진을 유지하는 이유 중 하나가 바로 이 때문이다. 서울에서도 강남 살다 강북이나 수도권으로 이사가면 다시 들어오기 어렵다. 핵심권에서 한번 벗어나면 다시 그 핵심으로 복귀는 처음보다 훨씬 힘든 것이다.

맨해튼에도 32번가 한인타운이 있다. 고군분투하는 한인 개인 비즈니스들이 100여 군데 존재한다. 규모는 그런대로 유지하는 편이다. 허나 자세히 살펴보면 상가들이 1층에서 2층으로 올라갔고, 핵심도로에서 이면도로로 옮겨가는 모습을 심심치 않게 볼 수 있다. 양적인 비즈니스 규모는 예나 지금이나 엇비슷하다. 그러나 질적인 면에서 보면 결코 유쾌하지 못하다. 렌트비가 오르고 자체 경쟁이 심하다 보니 나타나는 자연스러운 상황이다. 물론 단순하게 맨해튼 차이나타운과의 단순 비교는 어렵다.

양적으로 밀고 들어오는 인해전술적인 중국인 유입과 그들만의 커뮤니티는 결코 바람직하지 않다. 새로운 세계의 접합과 융합이라는 면에서 봤을 때 차이나타운의 그런 면은 하나의 이민자 모델이라기 보기는 좀 어렵다. 오로지 그들만의 살기 위한 집단 거주 형태의 모습에 지나지 않기 때문이다.

그러나 중요한 점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거주 공간이 맨해튼 핵심지역에서 떨어져 나가지 않고 오히려 점차 넓어져 가고 있다는 사실이다. 차이나타운을 바라볼 때 간과하지 말아야 할 점이 바로 그 점이다. 그들은 맨해튼 한복판에서 터전을 접고 외곽으로 밀려 나가지 않았다는 것이다.

플러싱 번화가 거리. 전철역 주변 사거리는 온통 중국 간판이다.

90년대 이후 한인 이민자들의 숫자가 큰 폭으로 줄었다. 신규 유입이 적어 한인타운의 경제도 축소일변도다. 아마 20년 후엔 뉴욕 플러싱 등의 한인사회는 없어질지도 모른다.

양적인 규모면에서는 차이를 극복할 수 있는 방법 중 하나가 질적 변화다. 개별 비즈니스가 주인 한인들의 생활은 현지인 속으로 들어가야 한다.

한인타운 32번가는 차이나타운보다 훨씬 중심지다. 그곳에서 확장해 나가지는 못할지라도 밀려나지는 말아야 한다. 더욱 철저한 현지화 노력이 필요한 시점이다. 일부 젊음 감각의 한인 레스토랑에는 한국인 손님보다 현지 외국인 손님이 더 많다. 입장을 기다리는 아쉬움 속에 한인타운의 미래에 희망을 가져본다.

미국 뉴욕 맨해튼 대형 부동산 중개회사 Nest Seekers International 한국지사장 / 헨리 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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