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5.5% “정부 부동산정책 잘못”」

2006년 11월16일자 조선일보 1면 톱기사 제목이다. 전국 성인 605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여론조사를 인용한 이 기사에는 「62.6% “11·15 대책 집값 못 잡을 것”」이라는 부제도 곁들여 있다. 2면 관련 기사에는 「“지금이라도 집 산다” 39% “집값 계속 오를 것” 21%」란 제목을 달았다. 바로 전날 정부에서 발표한 9번째 부동산 대책에 대한 이 신문의 반응이었다. 3면에는 친절하게도 이번 대책의 약발이 2010년은 돼야 나타날 것이란 전망 기사도 실었다.

부동산은 심리다. 집값이 오를 것이라는 강한 예감이 들면 어떻게든 사고 싶은 것이 인간의 보편적인 정신상태다. 이 기사 제목들을 보면 어떠한가. 빚을 내서라도 집을 사고 싶지 아니한가. 참여정부 5년 내내 이 신문을 비롯한 거의 모든 언론사들의 보도 행태는 이러했다. 마치 조롱이라도 하듯 정부 정책의 신뢰를 갉아먹는 기사로 일관했다. 그 집요하고 끈질긴 ‘정책 불신 유도’ 효과는 실로 놀라운 것이어서 당시 국민들 사이에서는 “지금 집을 사지 않으면 손해”라는 인식이 팽배했다. 너도 나도 돈을 빌려 시장에 뛰어들었다. 그러니 정부가 아무리 대책을 내놓아도 집값 잡기란 하늘의 별 따기였다.

당시 이명박 서울시장의 뉴타운 정책이 집값 상승에 한몫했음도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다. 뉴타운 정책은 해당 지역뿐만 아니라 그 주변부의 집값도 부추겼다. 그러나 이런 점을 지적하는 언론 보도를 찾아보기는 어려웠다. 그러니까 어떤 ‘의도’가 없이 이런 보도 행태를 보였다고 보기에는 석연치 않은 점이 한 두 가지가 아니었던 것이다. 종국에는 이들 언론이 집값 안정이 아니라 오히려 집값 부양에 관심을 갖고 있다는 결론에 이를 수밖에 없었다.

보수언론과 ‘부동산 부양세력’과의 결속은 그다지 새삼스러운 이야기가 아니다. 여기에 ‘노무현이 하는 것은 다 싫다’라는 이들 언론의 정서가 더해져 참여정부의 부동산 정책은 실패로 돌아갔다. 이는 이들에게는 곧 ‘성공’을 의미한다. 이들은 ‘부동산시장 게임’에서 명백한 승리를 가져갔다. 이들은 그 자체로 ‘부동산 권력’이다.

참여정부의 부동산정책에 아무런 잘못이 없다고 말하려는 것이 아니다. 당시 정부는 분명 수요-공급의 균형감을 놓쳤다. 부동산시장의 전후 맥락을 읽는데 실패한 것이다. 그러나 대책이 나올 때마다 발목을 잡고, ‘지금이 집을 사야할 때’라고 부추기는 언론이 없었다면 어땠을까. 집값이 그렇게 올랐을까.

오죽 했으면 당시 부동산과 언론 전문가들 사이에서 “조·중·동은 정부의 부동산 대책을 무력화시키고 시장불안을 야기한 일등공신”이라거나 “요즘 ‘부동산의 5적(敵)’이란 말이 나도는데 그 중 하나가 조·중·동”이라거나 “조선일보가 대표적으로 ‘세금폭탄’ 같은 용어를 만들어내며 정부의 정책을 흔들고 있다”고 말했을까. 박근혜 정권에서도 집값이 참여정부 당시와 맞먹을 만큼 올랐지만 이른바 ‘조중동’에서 정색하고 이를 비판하는 기사를 찾아보기란 어려웠다는 점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참여정부 당시 언론이 즐겨 썼던 단어 가운데 하나는 ‘세금폭탄’이었다. 종합부동산세와 양도소득세 등을 두고 이 단어를 앵무새처럼 반복했다. 이는 마치 박정희 정권 시절 ‘국민교육헌장’과도 같은 주입식 효과를 낳았다. 실상은 세금 적용 대상이 전 국민의 1%도 되지 않았지만 이 강력하고 견고한 프레임의 효과는 실로 엄청났다. 종합부동산세 적용대상이 아님에도 불구하고 국민들 상당수가 대상인 것으로 ‘착각’했다. 생계를 위한 거주용 주택을 가지고 있던 국민들은 “소득은 늘어나지 않는데 세금만 더 내게 생겼네”라고 오해했다. 이는 곧 노무현 정권에 대한 정치적 부담을 의미했으며 결국 지지율 하락으로 이어졌다.

‘부동산 정책에 대한 신뢰도 깎기’ ‘경마식 집값 중계’ ‘증세 공포 심어주기’ 등의 세뇌와 암시전략은 집값 급등으로 이어졌고, 그 악순환은 되풀이됐다. 언론이 독자를 상대로 두려움과 조바심을 부추기면 어떤 결과를 낳는지를 보여준 극명한 사례다.

최근 ‘부자증세’가 화두다. 이를 다루는 일부 언론(또는 언론을 빙자한 세력)과 정치인들의 행태는 10여 년 전과 다를 게 없다. 증세 적용 대상이 전 국민의 0.08%에 불과하다고 하는데도 또 다시 ‘세금폭탄’을 들먹인다. 증세의 필요성을 인정하는 것과는 다른 차원의 이야기다.

하지만 참여정부 당시 상황과 완벽히 다른 것이 있다. 다름 아닌 국민들이다. 국민의 80% 이상이 부자증세에 찬성한다. 10여 년 전 탐욕을 조장하는 시대에 휘둘렸던 국민들이 체험과 체감을 통해 달라진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경계를 늦춰서는 아니 된다. 이 사회, 아니 이 세계에는 분명 모든 수단을 동원해 대중의 ‘착각’과 ‘오해’를 불러오게 만드는 세력이 존재한다. 이 세력은 정치권력, 자본권력, 그리고 이에 종속된 언론권력의 종합체이다. 그 역사는 상상 이상으로 길며, 결코 무너지지 않는 공고한 성(城)과 같다. 결코 자신들이 가진 것들, 권력이든 돈이든 쉽게 내어주지 않는다. 이 세력은 세상을 움직이는 시스템을 구축하고 이를 운영한다고 믿는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촛불혁명’이 일어나기 전까지만 해도 이 시스템은 무너지지 않을 것으로 여겼다. 그리고 지금도 자신들이 만들어 놓은 시스템이 쉽사리 붕괴되지 않을 것이라 판단하고 있다. 그러니 문재인 정부가 부자증세를 건드리는 것은 자신들의 시스템을 건드리는 것과 같다고 보고 있다.

답은 하나다. 속지 말라. 이들이 만들어 놓은 함정과 덫에 걸리지 말라. 굳건한 자유의지를 가갖고 성숙하게 생각하고 행동하라. 그럼으로 해서 국민들을 개나 돼지, 레밍으로 여기는 이들에게 어떠한 자유도 허락하지 않도록 하라. 이제 세상을 움직이는 시스템은 당신에게 달려 있다.

저작권자 © 비즈니스플러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