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프리카 초원에서 코뿔소를 맞닥뜨리면 기분이 어떨까. 당장 숨고 싶겠지만 초원에는 딱히 몸을 숨길 데가 없다. 그렇다고 도망칠 수도 없다. 코뿔소는 몸무게가 최대 4톤에 달하지만 달리기 솜씨가 수준급이다. '인간 탄환' 우사인 볼트가 순간 최고 시속 45km를 낸다고 하는데 코뿔소는 시속 50km로 달릴 수 있다.

코뿔소를 만났을 때 인간이 할 수 있는 일은 결국 없다는 얘기다. 코뿔소가 모른 체하고 지나가 주길 바랄 뿐이다.

예상하기 어려운 돌발악재를 흔히 '검은 백조'(black swan)라고 한다. 금융전문가인 나심 탈레브가 2007년에 낸 베스트셀러 제목에서 유래했다. 호주에서 발견된 검은 백조는 '백조는 하얗다'는 고정관념을 뒤흔들었다. 전혀 예상하지 못한 충격적인 사건이 언제든 일어날 수 있다는 게 검은 백조의 교훈이다. 2008년 전 세계 금융시장과 경제를 초토화한 글로벌 금융위기가 대표적인 '검은 백조 이벤트'로 꼽힌다. 

'회색 코뿔소'(grey rhino)는 '검은 백조'와 달리 누구나 예상할 수 있는, 빤히 보이는 위험을 말한다. 저돌적으로 달려오는 코뿔소는 무시무시한 위험이지만 사람들은 어쩔 도리가 없다. '검은 백조'가 모르고 당하는 낭패라면 '회색 코뿔소'는 알고도 피하지 못하는 위험이다.

중국 공산당 기관지 인민일보가 지난 17일자 1면 논평에서 '회색 코뿔소' 경계론을 제기했다. 신문은 중국 정부가 금융 리스크를 통제하려면 '회색 코뿔소'를 면밀히 감시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인민일보는 '검은 백조' 위험도 함께 경고했다.

인민일보의 보도가 나온 뒤 불과 몇 시간 만에 중국 국가통계국은 지난 2분기 성장률을 발표했다. 2분기 성장률은 1분기와 같은 6.9%(전년대비)로 시장 전망치인 6.8%를 웃돌았다. 이 추세라면 중국은 올해 정부 목표치(6.5%)는 물론 지난해의 6.7%를 넘는 성장세를 기록할 전망이다. 중국의 성장률이 연간 기준으로 반등하는 건 2010년 이후 처음이 된다.

긍정적인 지표 발표를 앞두고 인민일보가 '회색 코끼리'와 '검은 백조'의 위험을 경고한 건 시사하는 바가 크다. 중국 지도부가 경제 성장 이면에 있는 위험 요인을 잘 알고 있다는 의미다.

전문가들은 중국 경제를 위협하는 '회색 코뿔소'로 막대한 부채를 꼽는다. 중국의 부채는 코뿔소만큼 거대하고 코뿔소만큼 빠르게 늘었다. 국제금융협회(IIF)에 따르면 중국의 부채는 이미 GDP(국내총생산)의 300%를 돌파했다. 경제 규모보다 3배나 큰 부채를 떠안고 있다는 얘기다. 부채가 급격히 느는 동안 중국에서는 제조업계의 과잉생산, 부동산시장의 과열, 통제받지 않는 그림자금융(섀도뱅킹)의 성행 등 연쇄적인 부작용이 일어났다. 부작용은 현재진행형이다.

중국이 부채 사슬을 끊으려면 단호하고 과감한 조치를 해야 하지만 여의치가 않다. 대출 고삐를 죄는 통화긴축이 절실하지만 성장둔화 우려가 커 결단이 쉽지 않다. 중국 정부는 부채에 의존한 성장을 지양하겠다며 경제성장 엔진을 제조업과 투자에서 서비스업과 내수로 전환하는 경제구조개혁을 추진한다고 하지만 2분기에 이 나라의 성장을 주도한 건 제조업이었다.

더욱이 중국이 올 가을 공산당 제19차 전국대표대회(19차 당대회)를 치를 예정이라 코뿔소 사냥을 본격화하긴 더 어려워 보인다. 중국 당국이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의 지배력을 강화하는 큰 행사를 앞두고 성장둔화를 용인할 리 없다. 회색 코뿔소가 점점 더 가까워지는 셈이다.

중국이 부채 중독에서 비롯된 금융 리스크라는 '회색 코뿔소'와 마주하고 있다면 세계 경제는 중국 경제의 경착륙이라는 코뿔소의 위협을 받고 있다. 이는 세계 경제 주체 모두가 경계해온 위협이지만 중국 당국 말고는 아무도 손을 쓸 수 없는 그야말로 더 거대한 회색 코뿔소다. 중국이라는 코뿔소에 받힌 세계 경제가 어떻게 될지는 아무도 모른다. '검은 백조' 리스크가 도사리고 있는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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