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7년 1월 9일 미국 샌프란시스코에서 열린 맥월드 엑스포. 스티브 잡스 당시 애플 CEO(최고경영자)는 '혁명적인 휴대전화'를 소개하겠다며 잠시 뜸을 들인 뒤 아이폰을 선보였다. 그는 MP3 플레이어(아이팟)와 전화, 무선 인터넷을 모두 즐길 수 있는 기기라고 설명했다.

당시만 해도 '스마트폰'이라는 단어는 낯설었다. 미국 경제매체 CNN머니는 같은날 기사에서 "'가전업체' 애플이 아이폰을 아이튠스(애플의 음악 서비스)를 즐기고 웹서핑을 할 수 있는 휴대전화라고 소개했다"고 보도했다.

오는 29일이면 아이폰이 출시 10주년을 맞는다. 그 사이에 숨 가쁘게 진행된 인터넷·모바일 혁명은 아이폰이 주도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세상을 뜬 지 6년이나 지난 잡스가 여전히 '혁신의 아이콘'으로 추앙받는 이유다.

컴퓨터가 손바닥 안으로 들어오면서 사람들의 삶이 바뀌었고 산업지형이 격변을 맞았다. 인터넷과 모바일로 서둘러 무게 중심을 옮기지 않은 기업은 몰락의 길을 걸었다. 한때 휴대전화시장과 필름시장을 호령한 노키아와 코닥이 무너진 게 대표적이다.

IT(정보기술) 전문가들은 잡스가 판 게 제품이 아니라 '꿈'이었다고 평가한다. 아이폰은 혁신가들의 새로운 꿈을 자극하며 인터넷·모바일 혁명에 불을 댕겼다. 

잡스가 세상을 뜨자 업계 안팎에서는 제프 베조스 아마존 CEO를 '제2의 잡스'로 꼽는 데 주저하지 않았다. 베조스도 혁신을 추구하는 자신같은 이들에게 잡스는 스승 같은 존재였다고 회상했다.

베조스와 잡스는 공통점이 많다. 미국 경제·금융 매체 블룸버그의 실리콘밸리 책임자인 브래드 스톤은 2013년에 낸 '아마존, 세상의 모든 것을 팝니다'(The Everything Store)란 책에서 여럿을 꼽았다. 친아버지의 성을 따르지 못한 것부터 독선적인 기질까지 빼닮았다고 한다. 애플만큼이나 혹독한 아마존 내부의 경쟁 문화는 얼마 전 언론의 도마에 오르기도 했다. 

스톤은 여러 공통점 가운데 가장 중요한 건 베조스가 외곬의 비전으로 회사를 키우며 장기적인 베팅을 한다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베조스와 잡스는 서로 다른 점도 적지 않다. 잡스는 제품 자체보다 디자인에 초점을 맞췄고 가격을 낮추는 덴 별로 관심이 없었다. 반면 베조스는 겉모양보다 고객의 편의를 높이고 가격을 최대한 낮추는 데 집중했다. 또 잡스의 애플이 PC로 시작해 모바일기기로 모든 역량을 집중했던 것과 달리 베조스는 인터넷 서점으로 시작한 아마존을 세상의 모든 것을 파는 세계 최대 전자상거래 장터로 탈바꿈했다. 최근엔 자율주행차·우주선 개발도 한창이다. 

아마존은 최근 또다시 큰 변화를 예고했다. 지난 16일 미국 유기농식품 슈퍼마켓체인 홀푸드마켓을 137억달러(약 15조5000억원)에 인수하겠다고 밝히면서다. 파이낸셜타임스(FT) 칼럼니스트인 존 개퍼는 아마존의 행보에 "아마존이라는 회사를 이해했다고 생각했는데  또 한번 놀랐다"고 고백했다. 개퍼는 베조스가 방향성을 잃은 건지, 우리가 그동안 아마존을 잘못 이해한 건지 도통 모르겠다고 했다.

아마존의 온라인 공세에 월마트같은 대형 유통업체들은 수세에 몰린 지 오래다. 아마존이 홀푸드마켓을 인수한 배경을 놓고 수많은 추측이 나오지만 베조스의 묘수를 풀이할 수 있다고 자신 있게 나서는 이는 아직 없다.

그나마 설득력 있는 풀이는 베조스가 홀푸드마켓을 통해 아마존판 '애플스토어'를 구현하려 한다는 분석이다. 미국 IT 전문매체 씨넷은 베조스가 애플 브랜드의 상징인 애플스토어를 부러워한 나머지 홀푸드마켓의 매장을 '아마존스토어'로 삼으려 한다고 분석했다. 고객과 대면할 수 있는 상징적인 공간에서 '아마존 경험'을 선사하는 게 목표라는 것이다.

홀푸드마켓은 이를 위해 필요한 조건을 두루 갖췄다. 홀푸드는 '홀페이체크'(Whole Paycheck)라고 불릴 정도로 상대적으로 고가인 유기농 식품을 판다. 수표를 끊어서 사야할 정도로 비싸다는 말이다. 젊은 고소득자가 주고객층이다. 홀푸드마켓은 애플스토어와 함께 쇼핑가의 간판 상점으로 꼽히기도 한다.

미국 경제전문지 포브스는 아마존이 어떤 이유로 홀푸드마켓을 인수하든 전략적 실수를 저지를 수 있다고 지적했다. 그럼에도 포브스는 베조스의 게임이 주사위 던지기 같은 즉흥성 도박이 아니라 장고가 필요한 체스에 가깝다며 그가 적어도 세 수 앞을 내다본다고 평가했다.

현재로선 베조스의 속뜻을 모르겠다는 얘기지만 '아마존 홀푸드마켓'이 애플의 아이폰만큼이나 큰 변화를 몰고 올 수 있다는 말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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