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자란 무엇인가'라는 다소 형이상학적인 제목의 저서가 논란이 됐을 때는 그럭저럭 넘길 만했다. 비뚤어진 여성관을 가진 일부 남성들의 부조리를 꼬집기 위한 거친 표현 정도로 이해하려 노력했다. 

인구에 회자됐던 대목을 보자. 한 부장판사의 성매매 관련 사건과 관련해 "문제 된 법관의 연령이라면 대개 결혼한지 15년 내지 20년이다. 아내는 한국의 어머니가 대부분 그러하듯이 자녀교육에 몰입한 나머지 남편의 잠자리 보살핌에는 관심이 없다"고 적고 있다. 

다음 문장은 대부분의 언론 보도에서 언급되지 않았다. "이런 답답한 사정이 위법과 탈선의 변명이 될 리는 없다. 다만 남자의 성욕이란 때로는 어이없이 악마의 유혹에 굴복한다. 이는 사내의 치명적 약점이다"라는 내용이다. 

첫 문장만 보면 여성을 '잠자리 보살핌'이나 제공하는 존재로 여기는 듯 하지만 뒷 문장을 이어붙이면 성매매는 엄연히 위법이라는 지적과 함께 이를 초래한 사회적 구조에 대한 비판도 제기한다. 물론 정제되지 않은 표현이라는 데 동의한다.

아들이 같은 학년 여학생을 기숙사로 끌어들여 퇴학 조치될 뻔했다는 의혹에는 조금 더 화가 났지만 치명적인 결격 사유로 보지는 않았다. 어쨌든 당사자가 아닌 아들의 일이다. 선처를 바라고 학교에 낸 탄원서는 피해 여학생에 대한 배려도 엿보였다. 사회적 지위를 활용해 학교에 압력을 행사한 것 아니냐는 의구심도 있지만 사실관계가 명확하게 드러나지 않은 상황이었다. 

치명타는 그의 첫 번째 결혼 스토리였다. 20대 때 교제하던 여성이 결혼이나 약혼을 머뭇거리자 그녀의 도장을 위조해 몰래 혼인신고를 했다가 법원에서 혼인무효 판결을 받은 어처구니 없는 사실이 드러난 것이다. 막장 드라마에나 등장할 법한 스토리다. 

그럼에도 그는 버텼다. 기자간담회를 자청한 뒤 40년 전 일을 고개 숙여 사과하며 마지막 기회를 달라고 읍소했다. 하지만 여론은 싸늘하게 돌아섰고 반나절 뒤 안경환 법무부 장관 후보자는 결국 자진 사퇴했다. 

첨언하면 '몰래 혼인신고' 파문 때문에 장관직을 포기한 것 같지는 않다. 기자간담회 직후 언론에서 아들의 서울대 입학 비리 의혹을 제기했고 세번째 결혼 상대인 현재 부인과 관계된 과거 스토리까지 공개할 태세였다. 고희(古稀)를 바라보는 노(老) 법학자가 가족과 장관직을 맞바꾸는 용기를 내기란 어려웠을 것이다. 그의 사퇴와 함께 전직 국가인권위원장이라는 명예도 증발했다. 

당장 청와대가 난감해졌다. 문재인 정부 출범 직후부터 조국 민정수석 임명, 국정농단 사건 추가수사 및 '돈 봉투 만찬' 의혹 감찰 지시, 윤석열 서울중앙지검장 임명, 이영렬·안태근 면직 처분, 우병우 사단 정리 작업 등 숨가쁘게 이어져 온 검찰개혁 작업에 제동이 걸린 셈이다. 

비(非) 검찰 출신이자 서울대 교수 듀오인 조국·안경환 라인업으로 개혁에 더욱 박차를 가하려 했던 계획도 무산됐다. 인권이나 개혁이라는 상징성에 매몰돼 검증에 소홀했던 게 패착이라고 본다.

안경환 낙마 이후 청와대와 여권의 대응도 불만스럽다. 혼인무효 소송 결정문이 유출된 경위를 문제 삼거나  음모론에 가까운 검찰 개입설을 들먹이는 것은 박근혜 정부가 '정윤회 문건 파동'에 대처한 방식과 다를 바 없다. 안경환 후보자는 그냥 장관감이 아니었던 거다.

안타깝게도 대체재가 마땅치 않다. 청와대는 갑작스레 우윤근 전 의원 카드를 만지작거리고 있다. 민주당 소속의 우 전 의원은 18대 국회 법제사법위원장을 지냈고 현재 국회 사무총장을 맡고 있다. 3선 의원으로 야당 반발을 최소화할 수 있고 개혁 대상인 검찰 내에서도 합리적이라는 호평을 받는 게 강점이다. '초록은 동색' 논리로 전·현직 의원이 인사 청문회를 무난히 통과했던 전례에 기대려는 심산이다. 

정작 우 전 의원은 법무장관보다 전남지사에 더 관심을 갖고 있다는 전언이다. 이 때문에 여당 중진들이 우 전 의원의 'OK' 사인을 받아내기 위해 동분서주하는 중이다. 

다른 후보가 없는 건 아니다. 판사 출신의 박범계 의원과 19대 국회 법사위원장을 지낸 박영선 의원 등이 하마평에 오르내리지만 각각 대전시장과 서울시장 선거 출마를 원한다. 국무위원 인사 청문회가 워낙 혹독하게 진행되다보니 현직 의원들도 정무직은 손사레를 치고 선출직에 목을 메고 있다는 얘기가 들린다.

현 정부와 성향이 비슷한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 모임(민변) 출신 인사들도 거론되지만 당사자들은 정중히 고사하고 있다. 섣불리 입각할 경우 민변의 정체성에 타격이 될 수 있다는 우려 때문이다. 

이쯤 되면 '급할수록 돌아가라'는 속담을 되뇌일 때다. 법무장관으로 일하는 데 필요한 기본 소양만 갖췄다면 누구든 기용할 수 있다는 마음가짐으로 여유 있게 인재를 수소문하자. 

기실 검찰개혁 과정에서 법무장관의 재량권은 크지 않을 수 있다. 인사든, 조직 개편이든 청와대와의 교감 속에 이뤄질 것 아닌가. 안경환이 하면 개혁이고 다른 누가 하면 적폐의 답습인 것은 아니다. 

문재인 대통령이 제1공약으로 내세운 검찰개혁은 사람이 아닌 제도로 완성돼야 한다. 무소불위의 검찰권력을 제어할 장치가 마련되고 원활히 작동한다면 민정수석과 법무장관 인선에 연연할 필요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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