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 경제의 미스터리 가운데 하나가 고용시장은 호황인데 임금이 도통 오르지 않는다는 것이다. 미국, 독일, 영국, 일본 등 주요국은 사실상 완전고용을 달성했지만 임금은 수년째 제자리에 머물러 있다.

대표적인 나라가 일본이다. 일본의 실업률은 2.8%(4월 기준)로 1994년 이후 가장 낮다. 구직자 1인당 일자리수를 나타내는 유효구인배율은 1.48배나 된다. 일본의 마지막 경기호황이 정점에 달한 1990년보다 높은 43년 만에 최고치다. 

일자리가 넘치면 웃돈을 줘서라도 필요한 사람을 데려다 쓰는 게 일반적이다. 급격한 고령화와 낮은 출산율이 사회문제가 된 지 오래인 일본은 안 그래도 일손이 부족하다.

그럼에도 일본의 월평균 임금은 4월에 30만8070엔(약 315만원)으로 1970년 이후 평균치인 32만570엔을 한참 밑돌았다. 실업률과 임금상승률이 거꾸로 움직인다는 '필립스곡선'의 이론을 거스르는 것이다.

필립스곡선이 깨지기는 다른 주요국도 마찬가지다. 미국은 실업률이 지난달 4.3%로 16년 만에 최저치를 기록했지만 물가상승률을 제한 임금상승률은 사실상 제로 수준이다.

전문가들이 임금에 주목하는 건 임금이 늘어야 소비를 자극해 경기회복을 가속화할 수 있기 때문이다. 아베 신조  일본 총리가 2012년 말 취임하자마자 재계에 임금인상을 촉구한 것도 경기선순환을 유도하기 위한 것이었다.

문제는 기업들이 임금인상에 소극적이라는 점이다. 경기가 되살아나고 있지만 글로벌 금융위기에 따른 학습효과와 저성장에 대한 우려로 돈을 쓰는 데 인색하다. 글로벌 기업들은 만약의 사태에 대비해 현금을 쌓아둘 뿐 임금인상에 돈을 쓰려 하지 않는다. 

영국 경제전문지 이코노미스트의 편집장을 지낸 빌 에모트 '웨이크업 재단' 회장이 제시한 해법을 눈여겨볼 만하다. 그는 최근 '프로젝트신디케이트'에 기고한 글에서 주요국이 저성장의 굴레에서 벗어나려면 각국 정부가 임금협상에 직접 개입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에모트는 일본이 지난 15년간 저성장과 가계, 특히 저소득층의 수요둔화, 불평등 및 빈곤의 확대로 고전해왔는데 미국, 독일, 영국에서도 비슷한 조짐이 보인다고 지적했다. 이에 따른 불만이 미국에서는 도널드 트럼프의 대선 승리로, 영국에선 유럽연합(EU) 탈퇴(브렉시트) 결정으로 분출됐다는 설명이다.

에모트는 급격한 임금인상, 특히 법정 최저임금이 인상되지 않으면 트럼프의 대선 승리와 영국의 브렉시트를 주도한 포퓰리즘이 계속 성행하고 저성장이 지속될 것이라고 경고했다.

실제로 아베 총리 취임 이후 일본에서는 많은 일자리가 창출됐지만 대개 여성과 고령자, 외국인들의 저임금·임시직이었다. 이들은 정규직과 임금격차를 키우며 임금인상을 막는 장애물로 작용했다. 

물론 정부가 주도하는 최저임금 인상의 역효과도 만만치 않다. 에모트는 최저임금을 급격히 올리면 자동화를 자극해 오히려 비숙련 노동자의 일자리가 사라질 수 있고 1970년대의 초인플레이션 등 정부 개입의 실패 사례도 있다고 지적했다.

그럼에도 그는 정부가 정작 최저임금 인상에 소극적인 건 저렴한 노동력으로 경쟁력을 높여야 한다고 주장하는 기업들의 로비와 자기이익 때문이라고 꼬집었다. 공공부문 역시 최저임금 노동자를 대거 고용하고 있다는 것이다.

에모트는 재정정책과 통화정책이 한계에 도달한 만큼 임금인상이 사실상 유일한 경기부양 해법일 수 있다며 정부가 용기를 내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는 이미 막대한 부채를 짊어진 각국 정부가 감세나 공공지출 확대를 비롯한 재정부양책을 쓰기가 여의치 않고 인플레이션 압력이 커지면서 중앙은행이 돈을 푸는 통화부양 여지도 바닥났다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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