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원갑 KB국민은행 부동산수석전문위원

요즘 주택시장에 전월세 상한제 논란이 한창이다. 이번 대선에서도 많은 후보들이 전월세 상한제를 공약으로 내걸었다. 가령 지역에 관계없이 세입자에게 1회에 한해 계약 갱신 청구권을 주고 재계약할 때 5% 이상 임대료를 못 올리도록 하자는 것이다. 한편에서는 전월세 상승률이 물가상승률의 2~3배 웃도는 지역에만 이 제도를 제한적으로 실시하자는 의견도 나온다. 하지만 정부가 정책을 어설프게 사용할 경우 당초 기대와는 달리 시장이 엉뚱한 방향으로 튈 수 있다.

뉴욕처럼 주택임대료를 통제하면 기존 세입자는 좋을지 모른다. 하지만 시장 전체로는 주택공급 축소, 품질 저하, 이중계약 성행 등 부작용을 낳게 된다. 스웨덴 경제학자 아사르 린드베크는 “폭격을 제외하면 임대료 통제는 도시를 파괴하는 가장 효율적인 기술”이라고 말했다.

이보다 심각한 것은 전 세계에서 우리나라에만 존재하는 전세제도에 상한제를 도입했을 때다. 전세시장의 가장 큰 특성은 변동성이나 불안정성이다. 전세는 작은 수급의 불균형만으로도 가격이 출렁이는 특성을 안고 있다. 극단적으로는 아파트 입주단지에서는 전세가격이 많게는 주변시세의 반 토막 수준으로 급락하는 경우도 있다. 그러나 2~3년이 지나면 다시 원상태로 회복하면서 롤러코스터 장세를 연출한다.

이런 곳에서 전세가격을 5% 이상 못 올리게 하면 어찌 될까. 세입자는 주거비용을 시장가격 이하로 낮출 수 있어 즐거워하겠지만 집주인인 분양계약자로서는 괴로울 수밖에 없을 것이다. 우리나라에서 전세는 개인과 개인 간 거래가 대부분이다. 자기 집을 전세로 놓고 타지에서 전세로 살고 있는 가구가 적지 않다. 교육이나 직장 문제로 타지에서 전세로 살다가 2년 뒤 원래 살던 집으로 되돌아가려고 하는데 세입자가 계약 갱신 청구권을 행사한다면 어찌할 것인가. 전월세 상한제는 극약처방인 만큼 단기적인 고통도 그만큼 큰 것이다.

요즘 유행하고 있는 ‘전세종말 시대’는 전세가 월세로 대체되는 것, 즉 전세 공급의 종말을 의미한다. 세입자는 여전히 전세를 선호하기 때문에 전세 수요의 종말은 아니다. 전월세 상한제는 공급자의 가격을 인위적으로 통제하겠다는 것이다. 공급 가격을 통제하면 공급이 줄어드는 것은 많은 정책에서 검증되어 이제는 삼척동자도 다 아는 사실이다.

가뜩이나 전세 공급이 줄어드는 시대에 공급을 더 줄이도록 상한제를 도입하는 것은 주택시장에 치명적이다. 섣부른 포퓰리즘으로 제도를 도입했다가는 감당하지 못할 희생을 치를 것이다. 현재 전세시장에서는 집주인이 우월적 지위를 갖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집주인들은 자신에게 불리한 상황이 전개되면 법 시행 이전에 자구책을 마련할 것이다. 전세가격을 한꺼번에 올리거나 월세로 전환하는 부메랑이 나타날 것이다.

경제적 약자인 세입자의 딱한 사정을 생각하면 전월세 상한제의 취지를 이해하지 못할 바는 아니다. 그러나 서민 주거안정이라는 당위성에 급급해 인위적으로 민간부문을 규제할 경우 더 큰 화를 부를 수 있다. 경제는 당위나 정의, 도덕으로 움직이는 것이 아니다. 임대료를 통제하는 전월세 상한제는 시행하지 않는 게 상책이다. 굳이 도입하려면 공공기관이 짓는 공공임대주택에서 먼저 시행해보자. 민간에 대해서는 법인형 임대사업자 육성, 임대주택 등록 의무화 등 제도적 기반 마련 후 천천히 시행여부를 결정해도 늦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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