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도신당 에마뉘엘 마크롱 후보(왼쪽)와 극우정당 마린 르펜 후보

프랑스 대선은 보통 2차전으로 치른다. 1차 투표에서 과반수 득표자가 나오지 않으면 상위 득표자 2명이 2주 뒤 결선에서 승부를 가린다. 23일 치른 대선 1차 투표에선 예상대로 극우정당 '국민전선'의 마린 르펜 대표와 중도파인 에마뉘엘 마크롱 전 경제장관이 결선 진출권을 따냈다.

프랑스가 번거로운 대선 방식을 고수하는 건 대통령이라면 절대적인 다수의 지지를 받아야 한다는 생각에서다. 표 분할에 따른 유력 정당의 독식을 막자는 의도도 있다. '1차 투표는 가슴으로, 2차 투표는 머리로 한다'는 말도 설득력이 있다. 어찌 됐든 프랑스에선 절대적 다수의 선택을 반영하는 지금의 대선 방식이 가장 민주적이라고 생각하는 모양이다.

미국도 독특한 방식으로 대선을 치른다. 선거인단 제도가 특징이다. 총 538명인 선거인단은 주별로 인구에 비례해 할당된다. 대선에서 후보들은 전체 득표수가 아니라 선거인단수로 승부를 가린다. 과반수인 270명 이상의 선거인단을 확보하면 승자가 된다. 대부분의 주는 한 표라도 더 얻은 후보에게 선거인단을 몰아주는 '승자독식제'를 채택하고 있다. 때문에 총득표수에서 앞서고도 선거인단수에서 밀려 석패하는 일이 다반사다.

지난해 대선도 그랬다. 민주당의 힐러리 클린턴 후보는 공화당의 도널드 트럼프 후보보다 300만표가량의 표를 더 얻었지만 정작 백악관에 입성한 건 트럼프였다. 미국 정치전문지 폴리티코에 따르면 1960년 이후 적어도 5명의 미국 대통령이 경쟁 후보보다 적은 표로 대권을 잡았다. 트럼프와 존 F 케네디(1960년), 리처드 닉슨(1968년), 빌 클린턴(1992·1996년), 조지 W 부시(2000년) 등이다.

의원내각제를 채택한 영국은 대통령제 국가들과는 또 다른 선거제도를 갖고 있다. 의원내각제 국가에선 총선에서 승리한 당이 집권당이 되고 집권당의 대표가 총리를 맡는 게 보통이다. 

영국은 애초 2020년에 총선을 치를 예정이었다. 테리사 메이 영국 총리는 지난해 보수당 새 대표로 선출돼 총리에 취임하면서 의회 임기인 2020년까진 총선을 치르지 않겠다고 했다. 영국에서는 그동안 의회 해산과 조기 총선을 결정하는 게 총리의 일방적인 권한이었다. 2011년 '의회 고정임기법'이 제정되면서 하원의원 3분의 2가 찬성해야 한다는 조건이 붙었다.

메이 총리는 국론 분열 수습을 조기 총선 명분으로 내세웠다. 국론을 모아 영국의 유럽연합(EU) 탈퇴(브렉시트) 협상 추진력을 높여야 한다는 것이다. 의회가 이를 수용하면서 오는 6월 8일 총선을 치르게 됐다. 이에 따라 영국은 불과 6주에 불과한 총선 국면에 돌입하게 됐다. 2020년 미국 차기 대선 유력 주자들이 벌써 초기 경선을 위한 일정을 조율하고 있는 것과 딴판이다.

영국의 이번 총선은 보수당의 압승이 될 전망이다. 보수당이 1991년 이후 처음으로 과반수 이상의 지지를 얻을 것이라는 관측이 나온다. 제1야당인 노동당의 제러미 코빈 대표가 사실상 질 수밖에 없는 게임을 받아들인 셈이다. 노동당이 6주 만에 전세를 역전시키는 건 불가능하다는 게 전문가들의 중론이다.

미국의 저명한 정치 분석가인 제프 그린필드는 최근 폴리티코에 미국이 프랑스나 영국처럼 대선을 치렀다면 역사가 크게 바뀌었을 것이라고 지적했다. 지난해 대선이 프랑스식이었다면 클린턴이 이겼을 게 뻔하고 1960년에도 케네디가 닉슨을 꺾었으리라 장담할 수 없다는 것이다. 또한 조지 H W 부시(아버지 부시) 전 대통령이 1991년 '사막의 폭풍' 작전에 따른 걸프전 승리 직후 영국처럼 조기 대선을 치렀다면 재선에 성공했을 공산이 크다. 

대선이 끝나면 아무개가 왜 이겼는지에 대한 분석이 잇따른다. 특히 누가 표를 줬는지에 관심이 쏠린다. 그린필드는 그러나 어쩌면 선거에서 사람보다 더 중요한 게 '게임의 규칙'이라고 지적했다. 게임의 규칙에 따라 승패는 얼마든지 뒤바뀔 수 있다는 것이다. 

그린필드는 게임의 규칙이 결정한 대통령이라면 승리를 뽐내며 권한을 내세우기 전에 제 주장이 타당한지 주의를 기울여야 한다고 강조했다. 트럼프의 막무가내식 행보를 꼬집은 듯하지만 '장미대선' 국면에서 연일 목소리를 높이고 있는 우리 대권주자들도 곱씹어볼 대목이다. 한국이 프랑스식 대선을 치르면 대선판은 어떻게 바뀔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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