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은, 금융안정상황 점검회의..고위험가구·자영업자 부채 '빨간불'

미국 연방준비제도(Fed)의 금리 인상으로 국내 금융권의 대출금리 인상 속도가 빨라지면서 급증한 가계부채에 대한 우려가 커지고 있다. 여러 금융회사에서 대출을 받은 다중채무자나 저신용·저소득 취약차주, 자영업자, 한계기업 등이 어려움에 처해 금융시스템 위기의 '뇌관'이 될 수 있다는 전망이 나온다.

한국은행은 24일 발표한 '금융안정상황' 자료에서 "우리 금융시스템의 충격 감내 능력은 전반적으로 양호한 상태지만 시장금리 상승 속에 가계신용의 급증세 지속, 취약업종 대기업의 잠재리스크 등으로 금융시스템의 리스크는 다소 커졌다"고 진단했다.

◇ 소득·자산 모두 부족한 고위험가구 빚 62조

한은은 금융과 실물 측면을 모두 고려한 고위험가구의 부채 비중이 지난해 전체 가계부채의 7.0%(62조원)로 추정된다고 밝혔다. 이는 2015년 5.7%(46조4000억원)와 비교해 1년 만에 1.3%포인트 높아진 수치다. 금액 기준으로는 무려 33.6%(15조6000억원)나 급증했다.

고위험가구는 원리금 상환비율(DSR)이 40%를 넘고 부채 규모가 자산평가액을 초과한 가구를 가리킨다. 고위험가구는 처분가능소득의 상당 부분을 빚 갚는 데 쓰고 있고, 부동산 등 자산을 모두 합쳐도 빚을 상환할 수 없는 경우다.

한은이 100만명의 가계부채 데이터를 분석한 결과, 금융기관 3곳 이상에서 대출을 받으면서 저신용(신용 7∼10등급)이나 저소득(하위 30%)으로 분류되는 취약차주의 대출액이 작년 말 78조6000억원에 달했다. 전체 가계대출의 6.2%에 해당한다.

한국은행의 가계신용 통계를 보면 작년 말 가계가 진 빚은 1344조3000억원으로 1년 사이 141조2000억원(11.7%) 늘면서 연간 증가액이 사상 최대를 기록했다. 특히 저신용·저소득층이 많이 찾는 상호저축은행, 신용협동조합 등 비은행 예금취급기관 증가율은 17.1%로 훨씬 높았다. 상호금융권의 주택담보대출은 연간 증가액이 2015년 1조7000억원에서 2016년 14조1000억원(17.0%)으로 8배를 넘는 급증세를 보였다.

◇ 생계형 자영업자·업황부진 한계기업도 '위태'

작년 말 기준 자영업자가 은행 등 금융기관에서 받은 대출 규모는 480조2000억원으로 추산됐다. 1년 전인 2015년 말(422조5000억원)보다 57조7000억원(13.7%) 증가했다.

통계청의 가계금융복지조사를 보면 작년 3월 기준으로 전체 자영업자 가구의 평균 부채 규모는 1억1300만원으로, 상용근로자 가구(7700만원)의 약 1.5배 수준이다. 자영업자 가구의 소득 대비 금융부채 비율(LTI)는 181.9%로, 상용근로자(119.5%)보다 62.4%포인트 높았다.

또 자영업자 가구의 처분가능소득 대비 원리금상환액 비율(DSR)은 41.9%로, 상용근로자 가구(30.5%)를 훨씬 웃돈다. 자영업자 가구 중 1년간 30일 이상 빚을 연체한 가구 비중도 4.9%로, 상용근로자(1.7%)의 두 배를 넘는다.

자영업자 중 소득이 하위 40%(1·2분위)에 속하는 '생계형 가구'는 작년 3월 말 기준 69만6000가구(23.8%)다. 이들의 대출금은 42조8000억원(전체 자영업자 대출의 9.9%)으로 추정됐다. 생계형 가구의 대부분인 62만4000가구는 유급 고용원이 없는 영세 자영업자다. 생계형 자영업자의 평균 금융부채는 4700만원으로 상대적으로 적지만, LTI 비율이 220.9%나 되고 연체 경험 가구의 비중도 9.8%나 됐다.

기업들은 이자상승 때 비교적 대응 여력이 있는 것으로 나타났지만 중소기업과 철강·조선업 등 일부 업황이 부진한 업종은 어려움이 커지는 것으로 조사됐다. 기업의 연평균 차입금리가 0.5∼1.50%포인트 상승하는 시나리오에서 중소기업은 이자보상배율이 1 미만인 기업 비중이 1.7∼5.0%포인트 올랐다. 또 취약업종 중에서는 철강업(2.7∼8.6%포인트)과 조선업(3.6∼8.9%포인트)의 상승 폭이 큰 것으로 추정됐다.

허진호 한은 부총재보는 "앞으로 시장금리 상승의 영향으로 대출금리가 계속 오르면 자영업자들이 곤란해질 수 있다"며 "특히 소매업과 음식업은 생계형 창업이 많아 빚을 안정적으로 상환하는 데 어려움을 겪을 수 있다"고 우려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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