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독일에 모인 G20(주요 20개국) 재무장관·중앙은행 총재들이 공동성명에 "보호무역을 배격한다"는 문구를 담는 데 실패했다. 대신 "무역의 경제 기여도를 강화한다"는 애매모호한 구호에 그쳤다.

'보호무역 배격' 문구가 빠진 건 미국 도널드 트럼프 행정부의 입김이 작용한 결과다. '미국 우선주의'를 내세운 트럼프 행정부는 자국의 이익을 극대화하는 보호무역 공세를 벼르고 있다. 이번 G20 회의는 세계무역기구(WTO)의 산파로서 지난 수십 년간 자유무역질서를 주도한 미국의 변심이 세계무역체제를 결딴내는 게 아니냐는 우려를 고조시켰다.

그러나 현실에서 G20의 보호무역 배격 합의는 사실상 공염불이었다. G20은 글로벌 금융위기가 터진 직후인 2008년 11월에 처음으로 보호무역을 하지 말자고 입을 모았지만 합의가 깨지는 데는 36시간밖에 걸리지 않았다. 러시아가 일방적으로 자동차 관세를 인상하면서다. 곧이어 미국도 공공조달을 자국 기업으로 제한하는 내용의 '바이 아메리카' 정책을 추진해 유럽연합(EU)과 중국의 반발을 샀다. 이런 측면에서 보면 이번 G20 회의 결과를 꼭 비관할 필요는 없다.

중요한 건 앞으로다. 이번 회의에서 미국이 더 극단적인 자세를 취하지 않고 다른 무역상대국들이 성명에서 '보호무역 배격' 문구를 빼는 데 순순히 합의한 것은 트럼프 행정부의 무역정책이 구체적으로 드러나지 않았기 때문으로 볼 수 있다.

미국 백악관에서는 무역정책을 놓고 '내전'을 방불케 하는 갈등을 빚고 있다고 한다. 스티브 배넌 백악관 수석 전략가와 피터 나바로 국가무역위원회(NTC) 위원장 등 보호무역 강경파와 월가(골드만삭스) 출신인 게리 콘 국가경제위원회(NEC) 위원장 등 온건파가 충돌하고 있는데 승기는 온건파가 잡은 것으로 알려졌다. 이들은 궁극적으로 미국 무역정책의 현상유지를 원한다고 한다.

상황이 이러니 G20 회의에서 다른 나라들은 공연히 긁어 부스럼을 만들 필요가 없었다. 미국이 한창 무역정책을 다듬고 있는 과정에서 논쟁을 일으켜 봐야 트럼프 행정부의 눈밖에 날 뿐이다. 파이낸셜타임스(FT)는 트럼프 행정부가 구체적인 무역정책을 제시한 뒤 논쟁에 나서는 게 낫다며 이번 회의에서 미국을 제외한 회원국들이 미국의 요구를 수용한 것은 현명한 결정이었다고 평가했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트럼프 행정부의 무역정책 향방은 다음달 4~6일 미국 플로리다주 마라라고 리조트에서 열리는 트럼프 대통령과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의 첫 정상회담에서 구체화할 공산이 크다. 트럼프 대통령이 대선 때부터 줄곧 중국을 표적으로 반무역 공세를 예고한 만큼 이번 회담에서 무역정책이 핵심의제에서 빠질 수 없다.

다음달에는 미국 재무부의 환율보고서도 나온다. 재무부는 의회에 내는 이 보고서를 통해 환율조작국을 지정할 수 있다. 트럼프는 대선 때부터 자신이 집권하면 중국을 환율조작국으로 지정하겠다고 별렀다. 미국이 중국을 환율조작국으로 지정하는 것은 중국에 대한 무역전쟁 선전포고가 된다. 미국이 중국을 상대로 무역전쟁에 나서면 세계 경제도 파장을 피할 수 없다. 특히 한국, 독일, 일본 등 미국을 상대로 무역흑자를 거둬온 나라들은 미국의 직접적인 타격권에 들 수 있다.

미국과 중국이 끝내 '강(强)대강' 대결로 치달으면 중국의 사드 보복과 북핵 위기 수위가 고조돼 한반도는 격랑에 휩싸일 수밖에 없다. 4월 위기설이 나도는 이유다. 문제는 운이 좋아 4월 위기설이 기우로 판명난다고 해서 한반도의 미래를 둘러싼 불확실성이 해소되는 게 아니라는 점이다. G2(미국·중국) 리스크가 상존하기 때문이다. 시 주석이 올 가을 당대회를 통해 1인 지배체제를 확고히 다지면 G2 리스크는 더 커질 공산이 크다.

대선이 이제 40여일밖에 남지 않았다. 정부와 정치권은 무엇부터 챙겨야 할지, 우리는 누굴 뽑아야 할지 곰곰이 생각해볼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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