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원갑 KB국민은행 부동산수석전문위원

인구는 한 나라 경제의 펀더멘털이다. 인구는 유효수요를 측정하는 가장 신뢰도 높은 도구이다. 인구는 거부할 수 없는 도도한 물결처럼 경제를 움직이는 강력한 기제로 작용한다. 인구가 늘어나지 않고서는 장기적으로 집값도, 땅값도 계속 오를 수 없다. 인구구조의 변화는 국내 부동산시장의 지형도를 바꿀 것이다. 인구는 향해 선박을 인도하는 등대처럼 부동산시장의 향후 방향을 제시한다. 인구의 흐름을 읽어야 부동산시장의 중장기 트렌드도 내다볼 수 있을 것이다.

인구가 부동산시장에 절대적으로 영향을 미친다는 점은 누구도 부정하지 않을 것이다. 고령화·저출산에서 촉발될 인구쇼크는 미래 우리경제를 짓누르는 중대한 위협이다. 다만, 인구쇼크가 현실화하는 ‘시점(time)’과 ‘강도(strength)’에 대해서는 좀 더 깊은 논의가 필요하다. 부동산시장에서 거론되는 인구쇼크의 2가지 오류를 지적하고 싶다.

먼저 인구의 큰 흐름을 받아들이는 것은 좋지만, 너무 깊게 빠지면 또 다른 위험을 부른다. 인구는 먼 미래를 바라보는 망원경이다. 망원경을 꺼내 돋보기로 사용해보라. 바로 앞의 사물을 보려고 하면 초점이 흐릿해서 잘 보이지 않을 것이다. 그래서 자신이 보고 싶은 대로 해석하는 함정에 빠질 수 있다.

특히 지금 당장 일어나고 있는 부동산 문제를 모두 인구 잣대로만 바라보면 안 된다. 단기적으로는 인구보다는 정책이나 금리 등 다른 변수가 더 크게 작용할 수 있기 때문이다. 우리는 집값이 떨어진다는 신문기사만 봐도 혹시 국내 부동산시장이 일본 버블붕괴 방식으로 무너지지 않을까 걱정이 앞선다. 호떡집 불난 듯 호들갑을 떨지는 마라. 20~30년 뒤에 일어날지 모르는 일을 2~3년 뒤에 곧 닥칠 것처럼 조급증에 빠지는 것은 정신건강에도 좋지 않다.

그리고 인구위기론의 또 다른 맹점은 지나친 공포를 유발한다는 점이다. 고령화·저출산의 위기는 언젠가는 우리 앞에 닥칠 것이다. 그러나 인구위기는 새벽안개처럼 스멀스멀 다가온다. 새벽안개에 오랫동안 노출돼 있으면 옷이 젖는 것처럼 고령화·저출산의 위기는 우리나라 경제를 서서히 옥죌 것이다. 그런데도 많은 사람들이 인구위기를 단기간에 확 쏟아지는 한여름의 소낙비로 잘못 생각한다. 그래서 인구 얘기만 꺼내도 세상이 금세 끝날 것처럼 종말론적인 우울증세를 보인다.

요즘 전문가들까지도 아직 찾아오지도 않은 ‘인구감소 시대’를 벌써부터 꺼낸다. 우리나라 총인구는 앞으로도 2031년까지, 가구는 그 이후까지 각각 늘어난다. 물론 생산가능인구(만 15∼64세)는 2017년부터 줄어든다. 한창 일할 사람들이 줄어들면 경제 체력은 떨어질 것이다.

하지만 총인구와 가구가 늘어나는 한, 부동산가격이 인구요인에 의해서 갑자기 붕괴되지 않을 것이다. 우리나라보다 훨씬 빨리 고령사회에 도달한 스웨덴 등 일부 유럽 국가에서 최근 집값이 크게 올랐다. 인구요인보다 마이너스 금리 효과 때문이다. 인구는 부동산가격을 결정하는 유일한 요인이 아니라 중요한 요인일 뿐이다. 그런데도 많은 사람들이 인구에 너무 집착하는 오류를 범한다. 고령국가인 일본이라는 나라가 지리적으로 너무 가까운 탓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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