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근혜 대통령과 최순실 씨의 국정농단 사건을 속 시원히 해결해 달라는 국민적 기대 속에 출범한 박영수 특별검사팀의 수사 일정이 반환점을 돌았다. 

전체 수사 기간 중 절반을 소화한 특검에 어느 정도의 성적을 부여할 수 있을까. 대부분의 사안에 대한 수사가 아직 기소 전 단계인 만큼 섣불리 판단하기는 어렵지만 몇 가지 핵심 쟁점의 경우 호평과 비판이 엇갈리는 상황이다. 

문화계 블랙리스트 의혹 수사는 기대 이상의 성과를 거두고 있다. '법(法)꾸라지'라는 별칭이 붙을 만큼 조사에 어려움을 겪을 것으로 예상된 김기춘 전 청와대 비서실장을 단 한 차례 소환 조사만으로 구속시키는 데 성공했다. 박근혜 정권에서 장관 2번, 청와대 수석비서관 1번 등을 역임하며 '신데렐라'로 불렸던 조윤선 문화체육관광부 장관도 구속했다. 현직 장관이 구속 수감된 것은 헌정 사상 최초의 사례다.

블랙리스트 작성과 집행을 주도한 혐의로 특검이 구속영장을 청구한 6명 중 5명이 구속됐다. 상당한 성공률이다. 유일하게 김상률 전 청와대 교육문화수석만 정무수석실 주도로 작성된 블랙리스트를 문체부에 단순 전달만 했다는 이유로 구속을 피했다. 혐의를 벗은 건 아니다. 불구속 기소될 여지가 남아 있다.

최 씨 딸 정유라 씨 관련 이화여대 입학·학사 비리에 대한 수사도 일사천리다. 김경숙 전 이대 신산업융학대학장과 남궁곤 전 이대 입학처장 외에 2명의 교수가 구속 수감됐다. 특히 김 전 학장과 남궁 전 처장은 국회 청문회에 출석해 거짓 진술로 일관하며 국민들의 분통을 터뜨렸지만 결국 특검의 집요한 수사로 구치소에 갇히게 됐다. 마찬가지로 위증을 거듭하던 최경희 전 이대 총장에 대해서도 구속영장이 청구됐다. 이대 비리 3총사가 같은 구치소에서 만날 날이 머지않았다. 

이 같은 성과에도 특검에 'A' 학점을 부여하는 데 선뜻 동의하기 어려운 이유는 박 대통령을 옭아맬 핵심 의혹인 뇌물수수 혐의에 대한 수사가 지지부진한 탓이다. 특검이 출범 직후부터 수사력을 집중했던 사안은 삼성 등 대기업과 박 대통령, 최씨 등으로 이어지는 3각 뇌물 혐의였다. 

삼성과 미르·K스포츠재단, 코레스포츠(현 비덱스포츠) 관계자들부터 시작해 최지성 삼성 미래전략실 부회장과 장충기 미래전략실 사장, 박상진 삼성전자 대외담당 사장 등으로 수사망을 옥죄어 가는 이른바 '바텀 업(Bottom-up)' 전략은 성공적으로 보였다. 전광석화처럼 전개된 특검 수사는 이내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에까지 이르렀다.

22시간 넘게 진행된 밤샘 조사를 받고 나오는 이 부회장의 표정은 굳어 있었고 특검은 곧바로 구속영장을 청구했다. 이 부회장이 삼성그룹 총수 중 처음으로 구속될 지 여부에 사회적 관심이 집중됐고 결국 법원은 이 부회장의 손을 들어줬다. 

특검이 느낀 당혹스러움은 일선 취재 기자들에게 그대로 전달될 만큼 엄청났다. 특검의 스텝이 꼬이기 시작한 건 이때부터다. 그동안 구축해 놨던 법리가 무너진 것이다. 이재용을 놓친 특검은 박 대통령과 최 씨의 뇌물수수 혐의 입증에 올인하는 모습이다. 다수의 기업과 미르·K스포츠재단이 엮인 제3자 뇌물죄 수사는 일단 뒤로 미루고 박 대통령과 최 씨가 공모해 삼성으로부터 213억원 지원을 약속받은 직접 뇌물죄 수사에 화력을 모으고 있다.

하지만 특검 내부에서도 혐의 입증을 확신하지 못하는 기류가 감지된다. 최씨가 소환에 잇따라 불응하자 특검은 체포영장을 청구하며 강제구인 절차에 돌입했다. 의아한 것은 체포영장 청구 사유로 뇌물죄가 아닌 이대 비리 관련 업무방해 혐의를 제시했다는 점이다. 업무방해로 데려와서 뇌물죄 조사를 하게 되면 별건수사라는 비판을 받을 수 있다. 이 같은 점을 잘 아는 특검이 뇌물죄를 내세우지 못한 것 자신감 부족 때문이라는 지적이 나온다. 

박근혜 대통령

박 대통령에 대한 대면조사를 앞두고 특검이 단호한 행보를 보이지 못하면 대통령이나 최 씨 측이 반격에 나설 수 있다. 기존 법리에서 허점을 발견했다면 지금이라도 새로운 전략 수립에 나설 필요가 있다. 아직도 수사 일정이 절반이나 남아 있다는 것을 잊으면 안 된다. 

결이 좀 다른 얘기일 수도 있지만 국민적 지탄의 대상이 된 우병우 전 청와대 민정수석에 대한 수사가 답보를 거듭하는 것도 점수가 깎이는 요인으로 작용하고 있다. 현재 드러난 정황으로 우 전 수석에게 적용될 혐의는 직무유기나 직권남용 등이 유력하다. 

하지만 우 전 수석은 3년 전 '정윤회 문건' 파동이 벌어진 이후 박 대통령과 최 씨의 국정농단을 묵인하고 방조하고 심지어 지원했다는 의혹을 피할 수 없다. 죄의 경중을 떠나 그의 지난 행태가 한국 사회를 나락으로 떨어뜨린 것이다. 어떤 식으로든 단죄하지 않는다면 특검도 비판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이제부터 특검은 전반전에 확보한 퍼즐들을 후반전에 잘 끼워 맞춰 박 대통령 등 국정농단의 주역들에게 벗어나기 힘든 법망을 씌우는 데 힘써야 한다. 기자가 평가한 특검의 중간 점수는 'B-' 수준이다. 다음달 말 특검 수사 일지를 요약하면서는 고민하지 않고 'A'를 써넣을 수 있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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