게임을 과외받는다고?

오늘은 필자 또래의 남성분들이 주로 관심을 가질만한 소재를 꺼내보려 한다. 바로 ‘게임’이다. 현재 20, 30대 젊은 남성들에게 컴퓨터 게임은 오랜 친구와도 같다. PC방은 많은 젊은 남성들에게는 추억의 장소이자 혹은 갈등과 대립의 현장이기도 했다. 필자가 중학교에 다녔던 2000년대 초반만 해도 ‘스타크래프트’를 할 줄 모른다는 것은 친구들과 어울리지 못한다는 의미와 같았다.

어느덧 성인으로 자라난 그 시절 중학생들에게도 게임은 여전히 쉽게 접할 수 있는 취미 활동 중 하나다. 부모님께 천 원, 이천 원을 받아 PC방을 가던 중학생들은 이제 구매력을 가진 어엿한 사회인으로 성장해 적극적으로 취미 활동에 투자한다. 물론 여성 게이머들의 비중이 높아진 현시점에서, 게임을 더이상 남성들의 전유물이라 할 수는 없다. 그러나 아직까지 젊은 남성들은 게임 시장의 주요한 소비층으로 올라서 있다.

그런데 얼마 전부터 20, 30대 남성들 사이에서 이른바 ‘게임 과외’가 성행하고 있다는 기사를 접했다. 게임 실력을 높이기 위해 기꺼이 비용을 내고, 부족한 점을 보완하고 있다고 했다. 게임을 잘하려고 과외까지 받는다니, 언뜻 들어서는 잘 이해가 가지 않았다.

‘거기’에서까지 욕먹고 싶진 않다

 필자는 게임을 자주 즐기는 편은 아니지만 게임 안에서 어떤 일이 벌어지고 있는지는 익히 알고 있다. 사실 게임은 또 다른 ‘경쟁의 장’이다. 현재 인기를 구가하고 있는 게임들은 다른 사람들과 조를 이루고 상대 조와 싸워 승리하는 방식들이다. 대개 온라인으로 실행되는 대다수 게임들은 이런 진행방식을 가지며, 예나 지금이나 크게 변하지 않았다.

필자는 게임을 시작하면 일단 채팅창부터 끈다. 그 채팅창에는 번번이 보기 싫은 욕설과 비난이 넘쳐난다. 다른 이들과 협동하고 작전을 세워 진행하는 방식이기에, 자칫 실수라도 하게 되면 온갖 패륜적인 욕설이 난무한다. 오죽하면 ‘그래도 우리 부모님 안부를 물어봐 주는 사람들은 그 게임에서밖에 없다’는 조소 섞인 말이 등장했을까.

‘게임 과외’의 표면적인 목적은 돈을 들여서라도 실력을 높이고, 더 상위의 등급으로 올라가겠다는 것이다. 하지만 그 이면에는 이러한 몰상식한 비난을 피하고 싶은 심리가 내재되어 있다. 스트레스를 풀기 위해 하는 게임에서까지 욕을 먹고 싶지는 않다는 것이다. 이름도, 얼굴도 모르는 사람들에게 ‘너 때문에 졌다’는 힐난을 받는 것은 오히려 스트레스를 가중시킬 뿐이다.

현실과 게임을 넘나드는 경쟁과 질책

요즘의 젊은이들에게 경쟁은 일상화되었다. 그리고 경쟁에서 이기지 못한 데에서 오는 질책과 자괴감도 적지 않게 찾아온다. 어찌 보면 게임과 현실은 별반 다르지 않은 것 같다. 게임에서처럼 현실에서도 동료들과 한 팀이 되어 다른 팀들과 실적에 대한 경쟁을 벌이는 경우가 왕왕 있다. 그리고 우리는 팀에 폐를 끼치지 않기 위해, 또한 상사의 눈에 거치적거리지 않으려고 기를 쓰며 일한다. 항상 맡은 바를 훌륭히 완수한다면 좋겠지만, 그것은 어려운 일이다. 때로는 질책을 받고 눈치를 보면서 사회생활을 이어나간다.

그런 힘든 현실을 버티고 돌아와 한숨 돌리려 게임에 접속했는데, 또다시 경쟁하고 비난받아야 하는 것은 누군가에겐 고역일 수도 있다. 혹자는 ‘무슨 게임을 잘하려고 돈을 들여 과외까지 받느냐’고 눈을 흘길지 모른다. 하지만 그것은 그저 즐기고자 하는 게임에서라도 스트레스를 안 받고 싶다는 적극적인 몸부림일 테다.

어쩐지 씁쓸한 ‘게임 과외’

그렇게까지 해서 게임을 해야 하나 싶겠지만, 사실 시간적, 정신적으로 여유가 없는 직장인들이 마땅히 찾을 만한 취미 생활이 없다. 그런 면에서 게임은 딱히 시작하는 데 시간을 들일 필요가 없는 손쉬운 취미 중 하나다. 게다가 게임을 잘하려고 자기 돈으로 사교육을 받겠다는 것은 하등 아무런 문제가 없다. 그러나 ‘게임 과외’의 성행이 젊은이들이 느끼는 경쟁과 질책의 과부하에서 비롯되었다는 감은 지우기 힘들다. ‘게임 과외’가 아무래도 씁쓸한 우리 사회의 단면으로 생각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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