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원갑 KB국민은행 부동산수석전문위원

미당 서정주(1915~2000)는 '자화상'에서 "스물세 해 동안 나를 키운 건 8할이 바람이다"라고 했다. 성장기의 자신을 대부분 바람이 지배했다는 것이다. 8할(80%)은 100%의 겸손한 표현인지도 모른다.

2017년 부동산시장의 변수를 얘기할 때 이 '8할'이 떠오른다. 바로 8할이 악재라는 것이다. 금리는 오르고, 입주물량은 쏟아지고, 대출규제는 높아지고. 아무리 주위를 둘러봐도 호재라고는 없다. 탄핵 소추 등으로 국내정치까지 뒤숭숭하고 대선도 앞두고 있어 부동산시장은 당분간 겨울잠에서 빠져나오기는 어려울 듯하다. 이미 주택시장은 정점을 지나 위축기로 접어들었다.

최근 몇 년간 부동산시장을 달군 것은 바로 저금리 때문이다. 일종의 유동성 장세이다. 금리가 낮아지면서 투자자금이 부동산시장으로 대거 유입되면서 재건축과 분양시장을 중심으로 부풀림 현상을 만들어냈다.

하지만 최근 미국이 기준금리를 올리면서 국내 시장금리도 꿈틀거리고 있다. 국내 대출금리는 글로벌 채권시장의 영향을 받을 수밖에 없다. 글로벌 채권금리가 오르면 적어도 단기적으로는 국내 채권 금리도 뛸 것이다.

다만 일각에서는 2017년 한국은행이 미국의 금리 인상을 고려해 기준금리를 올려야 한다는 주장이 나온다. 이런 점을 감안할 때 급격한 금리상승은 쉽지 않겠지만 미국의 금리인상에 따라 국내 시장금리의 불안은 계속될 수밖에 없을 것이다. 금리 민감도가 높은 재건축아파트를 비롯한 투자상품은 금리가 인상될 경우 부정적 영향을 더 받을 것이다.

2017년 주택거래량은 거래가 많이 줄어들 것 같다. 2015년 주택거래량이 119만건에 달했으나 2016년에는 103만건(예상)에서 2017년에는 95만 건 안팎으로 낮아질 것으로 보인다. 거래량이 감소한다는 것은 부동산시장에 수요가 줄어든다는 뜻이다. 거래량은 가격을 선행한다. 거래량이 줄어드는 만큼 가격도 크게 오르기 힘들 것이다. 아마도 일부 입주물량이 많은 지방에선 가격이 약세를 보이는 곳도 적지 않을 것이다.

2017년 부동산시장은 전반적으로 위축되는 가운데서도 지역에 따라 편차가 심할 수 있다. '각자도생'이 될 수 있는 것이다. 다만 2017년 부동산시장에서 금리나 대출, 정부정책 같은 시장위험이 크게 작용할 전망이어서 특별히 호황을 누리는 곳은 많지 않을 것 같다. 서울을 제외한 나머지 지역은 주로 입주물량 변수, 서울은 정책변수에 의해 가격이 결정되는 구조가 될 것이다.

2017년에는 시장이 위축된다고 하더라도 금리가 급등하지 않는 한 가격이 급락하지는 않을 것으로 보인다. 물론 가격조정은 불가피하다. 하우스푸어와 깡통주택 속출 같은 극단적인 상황은 주택시장의 소화불량과 동맥경화증을 앓은 한 참 뒤에 나타난다. 따라서 대외쇼크가 터지지 않는 한 ‘입주물량이 넘치는 그해 집값이 폭락할 것’이라고 섣불리 예단하는 것은 단선적 사고로 위험하다.

올해는 공급과잉의 원년이다. 만약 급락한다면 올해가 아니라 2~3년 더 지켜봐야 할 것이다. 이런 상황일수록 일희일비하기보다는 냉정함을 잃지 말아야 한다. 단기적인 시각보다는 중장기적으로 바라보는 안목도 필요하다. 말하자면 돋보기보다는 망원경이 필요하다는 얘기다.

자, 이럴 경우 수요자들은 어떻게 할 것인가. 집을 사는 적기는 며느리도 모른다고 한다. 전문가들도 미래를 쉽게 예측하지만 맞추는 경우는 드물다. 더욱이 샐러리맨들은 부동산 재테크에서는 초보자다. 이런 상황에서 위험을 줄이기 위해서는 항상 여러 가능성을 대비해 보수적인 생각, 무리하지 않는 생각을 하는 게 좋을 것이다. 시장은 멀리 볼 때 어느 정도 윤곽을 잡을 수 있다. 그동안 부동산가격이 저금리와 규제완화책에 힘입어 많이 오른 데다 입주물량도 많아지므로 조심스럽게 접근하는 게 좋다는 것이다.

다만 시장 상황에 탄력적으로 접근하는 것도 좋다. 부동산 시장이 경색돼 가격이 많이 하락할 경우 바닥권에서 급매물을 공략하는 전략은 무난하다. 그 시기가 2017년이 될 수도 있고, 그 이후가 될 수 있다. 필자는 '작두를 타는 사람'이 아니기 때문에 정확한 시기를 알 수 없다. 다만 2016년 말 시점에서 봤을 때 매입 시기는 적어도 2017년 상반기는 넘긴다는 생각을 하는 게 좋을 것 같다. 투자목적이라면 굳이 서둘러 집을 사지 않고 관망해도 좋다. 적어도 2~3년은 기다려도 늦지 않다.

또 금리 인상기에는 대출레버지리를 활용한 '빚테크'는 최소화하는 것이 필요하다. 가급적 자기자본의 비율을 높이고 저점 매수하는 전략이 필요할 것이다. 무엇보다 부동산은 투자보다는 필요에 의한 구매가 중요하다. 전반적으로 대출규제의 벽이 크게 높아진 만큼 최대한 자금계획을 철저히 짜야 뒤탈이 없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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